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 - 21세기 분배의 상상력
김만권 지음 / 여문책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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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 (김만원, 여문책, 20190104)


AI시대에는 산업사회에서나 적합했던 노동 중심적 분배정책과 복지정책이 한계를 맞이하였고, 이에 따라 국가는 ‘자본과 노동’을 만나게 해주는 역할을 넘어서 ‘상품과 소비자’, ‘자본과 소비자’를 만나게 해주는 역할로 전환해야 하며, 이를 위한 정치경제적 해법이 ‘기본소득’과 ‘기초자본’이라는 것인데, 이 책은 ‘기본소득’과 ‘기초자본’의 개념과 역사적 유래, 근거, 타당성 등을 아주 쉽고 명료하게 서술하고 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이 확산되는 현재의 소비사회에서 열심히 일한다는 것과 충분한 소득이 생긴다는 것 사이에 상관관계가 전혀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하며, 오히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더 가난해지는 사람들이 많다’는 절망적인 현실은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기본소득’과 ‘기초자본’을 모색하고자 한다는 작가의 저술 동기는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본다. 기존 자본주의의 기본논리인 시장질서와 사유재산을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옹호하면서도 자본가들이 이 개념을 옹호하는 이유와 실행해야 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고, 새로운 분배주의자들은 ‘노동’을 요구조건으로 내걸지도 않고, 오히려 이들은 새로운 분배가 인간이 소유한 자유를 실질적으로 향유할 수 있게 만드는 기반이라는 것을 주장한다.


기본소득이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를 산업사회와 달리 지금의 탈산업사회에서는 일하고 싶어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데, 노동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프레임을 씌워서 분배가 가장 절실한 사람들을 정당한 분배 밖으로 내모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비베스가 최소소득을 주장(108p)하면서 왜 빈민을 구제해야 하는지에 대해 “궁핍이 미친 혹은 사악한 행동을 야기하기 전에, 궁핍해 보이는 얼굴이 수치심으로 붉게 물들기 전에 --- 괴로워서 감사하기도 어려운 요청을 하기 전에 기부하는 것이 훨씬 더 기분 좋고 더욱 고마워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라는 문구는 한국 사회에서 뜨겁게 논의되었던 초등학교 무상급식 문제를 돌아보게끔 한다. 자산조사에 입각해서 가난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를 선별해 제공하는 복지는 국민을 주는 자와 받는 자로 분열시키고 주는 자는 박탈감을, 받는 자는 열등감을 느끼게 만든다고 보기 때문이며, 특히 노동하지 않는 사람을 2류 시민으로 취급한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주의자들은 복지국가라는 발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조건 없는 사회배당을 주장하는 조지 D.H.콜은 “현재 생산력은 사실상 현재의 노력과 사회적 유산이 결합된 결과물이다. 이런 사회적 유산은 모든 시민의 공동유산이기 때문에 여기서 나오는 성과물을 다 공유해야 한다. 이러한 배분 이후 남은 생산물만 현재 우리가 나누어 갖는 형식으로 분배하자” 는 기본소득의 유래를 짐작케 한다.


기본소득은 사람들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필요를 채워줄 뿐만 아니라, 사회정의의 실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람들을 세상에, 그리고 권력에 길들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자기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머리에 새겨두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하는 것, 스스로 자기 삶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기본소득이 ‘아니오’라고 말함으로써 자기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그 첫걸음을 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나아가 당신에게 보장된 자유를 실현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그리고 그 자유의 실현이 사회정의 실현으로 이어질 것이다. 자유와 정의가 만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또한 선진국에서 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함께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면서 소비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측면에서 모든 개인에게 현금을 지급해서 개인이 직접 시장에서 상품을 구매하도록 만드는 기본소득제도는 자본이 추구하는 이익과 맞아떨어질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중에서 “역사적으로 경제성장률이 낮아질수록 자본수익률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또한 그 이익이 자식 세대에게 세습되면서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현상”은 기초자본 도입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있고, 기초자본의 목표는 ‘ 한 정치공동체 혹은 국가에 속한 구성원들이 출발선상의 평등을 최소한이라도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페인은 1797년 토지분배의 정의에서 이미 “이 지상의 모든 것이 애초에 공유물이었다면, 언제 태어나든 모든 인류가 하느님이 주신 자산을 공유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 그런 권리가 박탈된 후대들에게 보상해주자는 제안”을 했다는 주장은 신선한 충격이며, 1999년 브루스 에커먼과 앤 알스톳은 [지분소유자 사회]에서 “모든 젊은이가 일정 연령에 이르렀을 때 국가가, 사회가 상속을 해주자. 이 상속이 우리 젊은이들에게 기회의 평등을, 실질적 자유를 줄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방식으로 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 라고 실질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기초자본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부가 시장을 통해 분배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시장은 국가의 제도 아래서 작동하는 것이다. 작동하고 있는 모든 시장은 국가가 만들어낸 제도적 산물이다. 그 사장에서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면 그 근본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국가의 제도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불평등은 잘못된 법적 질서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더욱 악화되고 있는 소득과 부가 불평등하게 분배되면 자연스럽게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지게 되고 앞으로 누가 권력을 잡는다 해도 지금보다 고용지표가 크게 개선되지 않을 것이고, 산업구조 자체가 변해가는 현실을 생각해본다면 지금 수준을 잘 유지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거라고 보며 아니 지금 수준을 유지하는 것도 큰 도전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는 작가의 주장에도 공감하며, 녹색당이 주장하는 기본소득과 정의당이 내세운 기초자본은 ‘소득과 부의 이전과 확산’이라는 면에서 보자면 본질적인 측면에서 서로 어긋나지 않다. ‘노동에 대한 요구가 없다’는 점에서, ‘자유를 실질적으로 활용할 기회를 주려 한다’는 점에서 이 두 제안은 사실상 같은 토대를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두 제안이 제시하는 삶의 비전 자체는 상당히 다르다. 우선 기본소득은 모든 시민에게 꾸준히 소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자는 것이기에 이 제안의 이름처럼 ‘소득’의 이전과 확산이 주요 목표인 거죠. 사실상 ‘지속 가능한 소비’가 목표인 것이며, 반면 기초자본은 개인이 꿈꿀 수 있는 기회를 주려 하기 때문에 특히 기초자본주의자들은 인생 초기에 나타난 불평등이 평생을 지속하기 때문에 출발점의 불평등을 완화해야 진짜 교정효과가 나타난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그 누구라도, 단 한 차례라도 실질적으로 자기 인생을 설계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 한다는 것이며 다시 말해 ‘인생설계 기회의 확산’이 목표라는 것이다.(229~230p)

 

“정의는 원칙이지만 불의는 현실입니다. 정의는 인간이 만드는 게 아니라 제도가 만든다. 정의로운 제도 아래 정의를 이해하는 세대가 자라난다. 혐오와 차별이 놀이가 되었다면 그 이유는 권력이 누군가를 혐오하고 차별하고, 제도가 그 혐오와 차별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라는 작가의 언급은 가슴쓰리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야말로 이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불평등은 누군가가 가난해진 뒤 교정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최소한의 자산과 인적 자본을 보장해서 해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대다수의 불평등이 유년기부터 시작된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며, 만약 우리가 이를 근본적으로 교정하고자 한다면 끝이 아니라 시작, 다시 말해 나이 들어서가 아니라 어린 시절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많은 교육, 더 많은 자본이 더 많은 기회의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근본 원인이라면, 소수를 위한 상속을 넘어 인생의 출발점에 선 청년 모두를 위한 상속이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게 제 이론적 신념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소득의 집중은 경기를 탈 수도 있다고 하지만, 부의 과도한 집중은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제도가 만들어낸 부정의의 산물이라고 작가의 믿음은 곧 독자들의 믿음과 일치하는 것 같다. 하위 인구 50%가 차지하고 있는 부의 전체 양은 ‘10년에 2.3%,’13년에 1.7%, ‘18년에는 몇 %일지 자료를 찾아봐도 아직 드러나지 않지만 확신하는데 더 열악해졌을 것이다. 기본소득과 기초자본이 전격적으로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여유로운 삶과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서 가중되는 스트레스로 힘들어도 여전히 열심히 직장에서 일할 것이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행복해지고 여유로워지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왜냐하면 우리 아이들에게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었다는 안도감이 더 크게 자리잡을 테니까. 모처럼 읽고 나서 청량감과 기분 좋음이 지속되게 만들고 가슴 뛰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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