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 가공선 손안의 클래식 3
고바야시 다키지 지음, 전설 옮김 / 잇북(Itbook)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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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가공선 (고바야시 다키지, 잇북, 20180428)

가난에 내몰린 소작농, 노동자, 광부, 학생들이 돈을 벌게 해준다는 사탕발림에 대부분 속아서 게 가공선에 들어오지만, 생지옥을 방불케 하는 열악한 노동환경과 자본가들의 착취를 리얼하게 그린 일본에서 1929년에 출간된 노동소설이다. 돼지우리만도 못한 숙소, 추위와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으로 지쳐서 곯아떨어지고 개별적으로 살았던 굴종밖에 몰랐던 노동자들이 감독관들의 횡포가 극에 달하자 뜻하지 않게 등 뒤에서 엄청난 힘으로 밀어서 처음에 갈피를 잡지 못했지만 그것이 미처 몰랐던 자기 자신들의 힘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최고 걸작이라고 할 만큼 읽을수록 가슴 저 밑바닥에서 솟아오른 뜨거운 공분 때문에 책을 덮고 눈을 감아야 하는 것이 반복되며, 너무나 많은 은유적인 표현들이 문학성의 가치를 높이지만 직설적인 표현보다도 더 사실적으로 자본가들의 노동자들에 대한 짐승보다 못한 수탈과 착취를 잘 묘사하고 있고, 제국주의 첨병으로서 군대와 관료가 어떻게 노동자를 탄압하고 각종 선전선동으로 갈취하며, 또한 자본가들에게 협력하는지도 잘 보여주고 있다. “자본주의가 늘 정해진 곳에서만 이윤을 내면 머지않아 막다른 지경에 몰리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금리가 내려가서 돈이 남아돌게 되면 말 그대로 무슨 일이든 하려고 하고, 아무리 곤란한 상황에서도 필사적으로 활로를 찾아낸다. 게다가 배 한 척에 수십 만 엔이 쉽게 들어오는 게 가공선, 그들이 미친 듯이 매달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게 가공선은 ‘공장선’이지 ‘선박’이 아니기 때문에 항해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20년 동안이나 목숨만 부지해가며 운행한 터라 침몰시킬 수밖에 없는, 비틀거리는 ‘매독환자’ 같은 배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곁에만 진한 화장을 한 채 하코다테로 흘러 들어왔다. 게다가 게 가공선은 온전한 ‘공장’이었지만 공장법의 적용도 받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이보다 안성맞춤인,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은 달리 없었다.” (44~45P)

또한 제국주의의 유지는 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도식으로 잘 설명하고 있고, 이것의 확장이 곧 한국과 대만 등에 대한 식민지 수탈인 것도 잘 보여준다. 미조직된 노동자들이 결국 어떻게 조직화되는지의 과정과 방법, 그리고 단체행동을 하는 단계인 태업-파업의 단계에서 어떤 전술로 진행해야 하는지도 아주 자연스럽게 소설 속에 녹여서 잘 설명되어 있고, 심지어 노동자들을 규합하기 위한 연락책과 구호 등도 잘 묘사되어 있다고 본다. “사람들은 해가 뜨기 전부터 일터로 내몰렸다. 그리고 곡괭이 끝이 희끗희끗 달빛을 받아 푸르스름하게 빛나고 주위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일했다. 근처 감옥에서 일하는 죄수들이 오히려 부러울 지경이었다. 특히 조선은 십장들은 물론 같은 동료 인부들로부터도 ‘짓밟히는’ 대우를 받았다. 홋가이도에서는 말 그대로 어떤 철도의 침목도 그 하나하나가 그대로 노동자의 푸르뎅뎅한 ‘시체’였다. 항구를 축조하는 매립 공사장에서는 각기병에 걸린 인부가 ‘인간 말뚝’처럼 산 채로 묻혔다. 그런 노동자를 ‘문어’라고 부른다. 문어는 자기가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다리를 먹어버린다. 노동자의 처지와 정말로 똑같지 않은가. 그곳에선 누구라도 거리낌 없이 ‘원시적인’ 착취를 할 수 있었다. ‘돈’을 벌고자 하는 욕심에 모든 것이 남김없이 파헤쳐졌다. 더구나 그 일을 교묘하게 ‘국가적’ 재원개발이라는 것과 결부시켜서 감쪽같이 합리화했다. 빈틈이 없었다. 국가를 위해 노동자는 배를 곪고 맞아죽었다.” (85~86P)

자본가들의 수탈이 좀 더 교묘해졌고, 노동자들의 의식도 옅어져서 이젠 민주화되었다고 착각하고, 먹고살만하다는 빚으로 만든 허위허식과 성공신화에 절어서 얼치기 과잉소비자들이 넘쳐나는 현실이 여전히 그 때의 게 가공선의 실상과 크게는 다르지 않다고 보여 진다. 다만 정의는 모르겠지만 역사의 진보는 아주 느리지만 진행되고 있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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