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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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라, 그건 참으로 우습고도 현실적인 농담이지

-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암 선고를 받고 마지막 생일 파티를 앞두고 있는데 100세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일주일 전에 돌아가셨지만, 빅 엔젤의 생일 파티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공지된 사항이었기에 빅 엔젤은 어머니의 장례식과 본인의 생일 파티를 한꺼번에 치르고자 어머니 장례식 일정을 미루었다. 미국 각지에서 가족들이 장례식과 생일파티에 참여하기 위해 모였다.

암 선고를 받은 70세 노인이 100세 어머니의 장례식을 챙기는 조금 모습이 낯설었다. 소설의 첫 부분에는 빅 엔젤의 성격이 잘 드러나있는데 일반적인 멕시코 사람들과는 다르게 시간약속을 철저히 지키고 회사에서도 똑부러진 모습으로 일을 하는 모습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어느 날 암 선고를 받게 되었고 그에게 남은 기간은 3주, 그런데 그 와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다.

가족들을 부양하고 회사 생활을 열심히 하던 빅 엔젤에게 어느날 갑자기 찾아 온 암이라는 존재, 그리고 죽음.
나라면 이런 상황에 큰 충격을 받고 좌절해서 아무것도 못할 것 만 같은데 소설 속 빅 엔젤은 그런 것에 아랑곳 하지 않고
천하무적 처럼 죽음에 맞서 싸운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 덤덤함을 넘어 너무나 태연한 모습에 놀라기도 했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이런 덤덤함이 마음이 아팠다.






빅 엔젤은 이제 곧 일흔이 될 참이었다.
일흔이라니, 참 늙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 젊은 것 같기도 했다.
이렇게 빨리 사람들을 두고 떠날 마음은 없었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죽음에 대해 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기 하지만 사실 아무렇지 않다는 걸 너무나 극명하게 보여주는 구절들이 많다.
이 부분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매일매일 하루를 열심히 살면서 죽음에 대해서는 아직 머나먼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아직 나이가 어린 탓인지, 아니면 운이 좋은 탓인지, 아직 내 주변에서 죽음을 떠올릴 만한 일들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인지 하루하루에 연연하면서 열심히 살기에만 벅찼지,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내가 빅 엔젤만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아니, 빅 엔젤 나이보다 더 먼저 찾아 올지도 모르지 그 순간이. 막연히 먼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는데, 늘 가까이 있었다. 빅 엔젤도 죽음에 대해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지만, 죽음은 이미 너무 가까이 왔고 가족들에게 의지해서 살아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내가 괜히 슬퍼졌다.

빅 엔젤 어머니의 장례식부터 빅 엔젤의 생일파티까지 사람들이 모이면서 그동안에 있었던 이야기들이 빠르게 전개되는데 어쩜 하나같이 사연들이 구구절절, 각양각색인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도 낯설어서 내용을 이해하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어투도 거칠다. 정말 멕시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책을 읽다가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다. 거칠 것이 없는 말투와 시원 시원한 직설 화법에 여러번 웃기도하고 놀라기도 했다. 그렇지만 소설 중간 중간에 가슴 찡한 구절도 많이 담겨 있다.



“얘야.”

˝아빠, 왜요?”

“날 용서해주겠니?”

“뭘요?”

그는 허공에 손을 저었다.

“미안하다.”

“그러니까 뭐가요, 아빠?”

“다 미안해.”

그는 눈을 뜨고 딸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네가 아기였을 적에, 내가 널 씻겨주었는데.”

미니는 눈이 따갑지 않은 베이비 샴푸를 짜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네 아버지였어. 그런데 지금은 네 아기가 되었구나.”

빅 엔젤은 훌쩍였다. 물론 딱 한 번뿐이었다.

미니는 눈을 빠르게 깜박이고는 손바닥에 샴푸를 짰다.



“괜찮아요. 모두 다 괜찮다고요.”



그는 눈을 감고 딸의 손에 머리카락을 맡겼다.



와 이 부분을 읽다가 정말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빅 엔젤이라 불리며 가장으로 가족들을 책임지고 이끌어 나가던 아버지가 죽음을 앞두고 나약해져버린 모습이 너무 슬프고 가슴이 아팠다. 딸이 아픈 아버지를 보살피는데 아버지는 저런 생각을 할 수도 있구나. 소설 속에서 빅 엔젤은 암 때문에 거동도 제대로 못하고 죽음이 가까워지면서 불안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지만 그의 가족들과 함께 소소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 두려움 없이 죽음을 맞이한 것 같다.
소설의 마지막에도 빅 엔젤의 죽음을 명확하게 나타내지는 않았지만 분명 그는 행복하게 후회없는 죽음을 맞이 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마지막 부분에 아내와 함께 나눈 대화는 정말 실제 이야기 같은 느낌이 들었고, 나 또한 그런 시간을 보내며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정말 인생에 후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는 내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울다 웃고 놀라기도 여러번 했지만 책읽는 내내 너무 뜻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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