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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니락입니다. 오랜만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간 <심판>을 보았어요.
초창기 개미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제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은 보통 장편 시리즈가 연상되곤 하는데, 이번에 소개드릴 책은 딱 한권으로 되어 있고, 희곡 형식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느낌이에요. 책 소개에 잘 나와있지만 다시한번 먼저 가볍게 둘러보고 갈께요~
이 책 심판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2번째 희곡이에요. 현실 세계에서 판사를 하던 주인공 아나톨이 수술 중 사망해서 천국의 법정에서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을 받는 과정을 그린 내용이랍니다. 전 첨에 희곡이라니, 아차 책을 잘 못 고른것 아닌지 걱정했는데. 읽어보니 오히려 더 술술 쉽게 읽히는 장점이 있네요. ^^
총 3막으로 되어 있고, 제1막은 천국 도착, 2막은 지난 생의 대차 대조표, 제3막은 다음 생을 위한 준비로 되어 있죠 희곡 형태의 책이라 책을 읽으면서 연극 무대를 떠올리게 되서 입체적인 독서가 되네요^^. 조금만 인용해보면... "커튼 두 개가 무대를 세 구역으로 나누고 있다. 무대 가운데에는 검은 배경에 흰 스크린이 있고 앞에는 법정 가로대가 뒤로는 다이빙대가 보인다..." 같은 묘사 형식...
마치 친절한 누군가가 책 곳곳에서 말풍선을 그려놓고 하나하나 생생하게 설명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천국의 법정의 모습을 묘사한 장면인데, 생각보다는 조촐한 법정으로 그려지고 있어요^^ 아! 무대 가운대 뒤로 다이빙대가 보인다고 쓰여 있는데, 첨에 책을 볼 때는 왜 무대 위에 다이빙 대가 있는지 미처 생각을 못했어요. 그냥 가끔 판사들이 천국에서는 다이빙을 하면서 여가를 즐기는가보다 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어요. 그런데!!! 책을 다 읽고나니 왜 무대의 배경에 다이빙대가 있는지 드디어 이해하게 되었네요. 제가 리뷰 끝에 힌트를 드릴테니, 꼬옥 맞춰보시길 바래요~~
첫장은 천국 도착. 이라는 장이에요.
사회에서 잘나가던 판사 아나톨이 폐암수술 중 사망해서 천국에 도착하는 장면이에요. 주호민님 원작 웹툰 신과함께 영화에서 주인공이 화재현장에서 순직하고 귀인이 되어 저승으로 가능 그 장면이 오버랩되네요. 보통 사후세계를 묘사하거나 임사체험을 하신 분들의 기록에는 마치 빛으로 된 터널을 통과하듯 지나간다고 되어 있어요. 아나톨은 보통 우리들처럼 의심이 많아서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해요. 모든 것이 마치 트루먼쇼처럼 설정을 해놓았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죠... 그런 그가 조금씩 조금씩 자신이 정말 죽어서 천국에 와있다는 것을 느끼고 받아들여가는 과정이 바로 첫 장의 모습이라고 보시면 되요.
소설이 넘 심플해서 주된 등장인물은 총 4명이면 끝나요. 주인공인 아나톨, 수호천사이자 변호인 카롤린, 냉혹한 검사 베르트랑, 천국의 판사 가브리엘요. 아나톨이 자기 옆에 딱 붙어있는 카롤린을 보며 누군지 질문을 던지다가 수호천사라는 말을 듣게되는 장면이에요.
이 대목은 정말 이 소설에서 가장 격정적인 대목이에요. 그리고 그냥 재미있다는 생각만 주던 앞의 내용에서 갑자기 많은 생각과 고민에 빠지게 하는 부분이랍니다. 바로 검사 베르트랑이 피고인 아나톨이 왜 죄인인가 하고 공격을 하는 중에 최고조에 이르는 장면이에요. 사실 아나톨은 대학 때부터 연극에 심취했고 역할에 잘 빠져드는 꽤 재능있는 예술인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연극의 길을 포기하고 판사의 길로 접어 들게 되었죠. 검사 베르트랑은 그 부분을 집중 공격해요. 자신의 재능을 낭비한 죄!!! 이 죄가 가장 크다는 것을요..
잠시 멍한 생각으로 눈을 감고 생각해보았어요. 그래. 꼭 남을 때리고 괴롭히고 돈과 재물을 빼았는 것이 죄가 아니라 자신을 더 사랑하지 않은 것, 자신의 잠재능력을 믿고 펼치지 않은 것, 게으르게 시간을 보낸 것. 이런 것이 정말 더 큰 죄가 아닐까 하는 생각...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 부분을 날카롭게 짚고 넘어가고 있어요.^^
여기서 살짝 전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사실 아나톨은 전생에 팜므파탈의 여자 무용수였다고요. 윤회를 통해 남자로 태어났고 전생의 끼가 남아있어서 연극을 사랑하고 애정하게 되었다구요... 만일 그렇다면 대학로에 계신 배우님들이나 연출가님들은 전생에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발레단이나 연극무대에 서던 대배우님들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네요^^ 이 책의 백미는 이런 비틀림인것 같아요. 전생과 후생이 연결되면서 성별이 바뀌게 되고, 직업이 바뀌게 되고...
요 대목에선 많이 뜨끔했어요. 검사의 공격! "지나치게 평온하고 틀에 박힌 삶을 선택하고,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등한시하고, 운명적 사랑에 실패함으로서 스스로에게 배신했다. 그는 전생의 자신의 꿈을 배신하고, 결국 자기 자신을 배신한 죄가 있다"... 자기 자신을 배신한 죄. 자신의 꿈을 배신한 죄.. 뭔가 생각할 수록 맘이 아프기까지 했어요.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남기는 것도 먼가를 하고자 하는 그런 의지인것도 같고, 묘한 아픔이 느껴졌어요.
검사의 말..."연기라는 직업적 소명을 외면하고, 재능을 등한시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위대한 러브 스토리 역시 용기를 내지 않아 역시 이루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자신의 재능을 배신하지 않고 자신의 사랑을 배신하지 않고 살아오셨는지요? 이 대목에서 한참 눈길을 뗄 수가 없더군요. 지금 하고 있는 일.. 재능.. 사랑.. 자신의 선택들을 다시금 바라보게 해주는 장면이에요.. 연극으로 보았으면 더 생생할 것 같아요!
이제 드디어 3막이에요. 마지막 장이죠.
다음 생을 위한 준비에 대한 내용이에요. 참.. 혹시 궁금하시진 않나요? 왜 천국에서 재판을 하는지? 그냥 재판해서 무죄면 천국으로 가고 유죄면 지옥으로 보내는 거 아니냐구요? 노노!
이 책의 심판은 그런 천국, 지옥의 심판이 아니에요. 오히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고통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바로 형벌이고 유죄판결을 받게되면 얻게될 불이익이죠. 즉, 다시 태어날 것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심판이에요. 다시 태어나면 좋은 것 아니냐구요? 글쎄요. 뭐가 좋은지는 겪어보지 않아서 저도 뭐라 말씀드릴 는 없겠네요. ^^
피고 아나톨의 수호천사이자 변호인인 카롤린은 사실 검사 베르트랑에 비해 논리적인 공격이나 답변이 좀 떨어지게 그려지고 있어서 검사와의 맞대결에서 밀릴 때가 더 많았어요. 그런데 이 장면에서 드디어 멋지게 반격합니다! 어쩜 이렇게 신박한 내용인지. 아나톨은 연극무대에 서지 않았지만, 바로 그 연극의 재능을 발휘해서 방청객(관객)이 있는 무대(법정)에서 법복을 걸치고 생과 사를 결정짓는 화려한 연기를 펼쳤다구요. 즉 그는 자신의 재능을 낭비한 것이 아니라 더욱 세련되게 발전시킨 사람이라고요!
이제 제가 제일 위에서 소개드린 무대 위 장치들 중 설명이 되지 않았던 "다이빙대"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대목이에요. 결국 아나톨은 어떻게 될까요? 유죄? 무죄? 과연 다시 태어나게 되는 윤회의 바다에 다시 빠지게 될까요? 점점 흥미진진해지고 마치 생사부에 사람마다 언제 어디서 태어나서 어떻게 살다가 언제 어떤 이유로 죽게된다는 것이 다 쓰여있다고 믿는 전설처럼, 내생에 어디서 어떻게 어떤 부모 밑에서 자라서 어떤 일을 하게될지를 미리 정하는 내용이 나와서 흥미진진해요.
책은 끝나지만, 새로운 생명의 시작으로 이어집니다.^^
어찌보면 그간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들보다 좀 심플하고 가볍게 읽히는 톡톡튀는 느낌의 책이에요. 글을 읽고 묘사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대학로의 소극장에 앉아서 4명의 주연배우들의 불꽃튀는 연기와 대사의 흐름에 푹 빠진 것처럼 흥미진진한 무대 속으로 들어가데 되는 것 같아요. 희곡 형태의 소설이 주는 매력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자신의 삶에 대해 다시 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지금 당신은 자신의 꿈에 응답하고 있나요? 자신의 진정한 마음의 소리를 듣고 있나요? 그 소리에 따라 행복하고 삶을 그려나가고 있나요? 이런 많은 질문들이 떠오르는 저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