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를 ‘자유주의‘나 ‘파시즘‘보다는 ‘친족‘이나 ‘종교‘와 같은 부류로 취급하면 난점은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인류학적인 정신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민족을 정의할 것을 제안한다. 민족은 상상된 정치적 공동체로서, 본성적으로 제한적이며 주권을 지닌 것으로 상상된다. 민족은 상상되었다.
가장 작은 민족의 일원들조차도 같은 겨레를 이루는 이들 절대 다수를 알거나 만나보지 못한다. 그들에 대한 얘기를 들어볼 일조차도 거의 없으리라. 그럼에도 각자의 가슴속에는 그들의 교감(communion)에 대한 심상이 살아 숨쉬고 있다. 25p.
일단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 특히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진보는 인쇄물에게 한 세기 전에는 없었던 동맹군을 선사했다. 다언어 방송은 문맹과 모어가 다른 인구 집단들에게 상상된 공동체를 소환해 낼 수 있다. ... 무엇보다 ‘민족‘이라는바로 그 관념이 이제 사실상 모든 활자어에 확고히 둥지를 틀고 있으며, 민족됨을 정치적 의식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203p.
민족을 이루는 것은 외부의 관찰자들이 판단하여 정하는 기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민족 구성원들의 수평적인 동지애 위에 세워진, 주권을 가진 정치공동체를 향한 ‘상상‘ 이라는 정치적 행위라고 이 책은 주장한다. (해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