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
J. D. 샐린저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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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늪

호밀밭의 파수꾼

J.D. 샐린저/이덕형 옮김

문예출판사

 

 

번역이 좋다는 말에 다시 한 번 읽고 싶었던 책이었다. 너무나 유명한 소설이었기에 전에 감흥 없이 지나갔다는 점에 의문이 들었기도 했다. 많은 이들의 선택이 무조건 올바르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시대를 올라가면서도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분명 있을 터였다.

문제아로 보이는 주인공의 격정적인 감정의 시간들이 겨우 며칠에 걸쳐 일어나는 소설은 쉽게쉽게 넘어가는 페이지 수만큼 가볍지 못했다. 전에 너무 유치하게 보였던 주인공의 심경들이 이번엔 한층 다르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가 느끼는 분노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주인공 홀든 홀든은 벌써 네 번째 고등학교에서조차 퇴학을 면할 수 없었다. 그에게 공부란 그저 따분한 정도가 아닐뿐더러 이해할 수 없는 구조의 모습이었다. 소위 명문이라고 소문난 그의 학교는 홀든의 눈 속에 그저 허영과 가식의 선생들과 바보같은 아이들을 한데 모은 곳일 뿐이었다. 그들을 향해 욕설을 뱉고 무력을 행사하고 싶은 감정이 폭풍처럼 몰아치지만 자신의 나약함이 그렇게 할 수 없음을 스스로 탓하면서 홀든은 학업 따윈 무시해 버린다. 그가 유일하게 잘하는 작문조차 어이없는 방식의 수업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 못마땅하다. 퇴학처분이 내려지고 집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던 홀든은 결국 참지 못하고 집이 있는 뉴욕으로 출발한다. 제법 많은 돈이 자신의 수중에 있는 것을 믿고 멋진 꿈을 꾸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게 진행되지 못한다. 홀든의 눈으로 보이는 속물의 세상, 그 분노의 끝에 매달려 있는 알 수 없는 외로움 속에서 그는 거리를 헤매기 시작한다.

책을 읽는 동안 나의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누구나 다 그런 감정 속에서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도 불의한 세상이 보기 싫었던 시절이 있었다. 타인을 향한 분노의 감정의 이유가 단지 부조리하게 보이는 것들이었기에 학교를 자퇴한다고 난리를 치기도 했었고 걸핏하면 학교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 홀든처럼 학교 수업에 낙제를 받을 것처럼 공부에 관심을 갖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격정의 분노같은 시간이 나에게도 존재했다는 사실을 오래 만에 떠올렸다. 그러나 지금 나는 작은 부조리의 실들이 촘촘히 만들어낸 거미줄같은 세상에서 그것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스스로 인식을 하려고도, 또 하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인간이 되었다.

홀든의 존재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 것인가? 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해결되지 못한 가정의 불안이 그에게도 전가되어 있다. 아니 어쩌면 그 스스로만 여전히 추억의 늪 속에서 헤엄을 치고 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허무주의에 빠진 것 같은 주인공의 모습이라기보다 이전의 기억들에 갇힌 존재다. 역겹지만 돌이켜보면 너무나 그리운 생활들이 홀든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다. 뉴욕으로 돌아온 홀든은 예전 사람들을 만남을 통해 그들이 더 이상 예전의 과거를 같이 나누길 꿈꾸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홀든에겐 ‘그땐 어렸을 뿐이잖아?’ 혹은 ‘넌 언제쯤 철들래?’라는 식의 뉘앙스를 가진 말만 돌아온다.

홀든의 예민한 감수성이, 그가 시시때때로 느끼는 불안감에 대한 분노로 비춰지는 뉴욕의 우울한 배경이 주는 극적 효과는 읽는 독자로 하여금 상황의 몰입을 높여준다. 홀든이 동생 피비에게 말했던 것처럼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어주고 싶다는 말이 바로 홀든이 진정으로 필요했던 것은 아닌가한다? 낭떠러지 옆에 서 있으면서 아이들을 지켜주는 파수꾼의 모습. “행운을 빌어요”나 “타락의 길로 빠지고 있다”는 충고보다 그저 방향을 잃은 아이들의 길을 관심과 진정으로 이끌어주는 어른. 홀든이 바라는 파수꾼은 너무도 이상적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청소년문제의 심각성은 더 안 좋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늦은 시간 길거리를 방황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저 치미는 분노의 감정만 품는 내 자신을 생각해본다. 이 세대에 수많은 홀든을 위한 파수꾼의 모습으로 세상을 볼 수는 없는 것일까? 진심어린 관심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다. 그들의 존재가 깊숙이 가라앉는 늪이 아니라는 것을, 숨 쉬고 살아가는 인간으로 태어난 자체가 빛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임을 알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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