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르카 시 선집 을유세계문학전집 15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지음, 민용태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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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

로르카 시 선집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민용태 옮김

을유세계문학전집

  

시는 한(恨)이다. 즐거움과 유희 속에서, 산산이 조각나는 이야기 속에서, 시대의 흐름 속에서 마치 붕괴되어지는 문학들 틈에서도 자생력 강한 한 줄기 잡풀처럼 자라난다. 갈라진 돌 틈에 뿌리내려 언제 왔다 사라지는지 모르는 그런 이야기들이 떠돌 듯 훑고 지나간다. 시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나의 호흡에서 자생되는 글자와 글자들이 허공에 맴돌았다. 어둔 새벽 연습장에 쉬 없이 휘갈기던 이야기들이 미명을 깨우는 참새들의 지저귐 소리에 하루살이처럼 호흡을 멈췄다. 내겐 분노는 존재했지만 한은 없었다. 운율보다 이야기가 그리웠다. 여러 권의 시집을 넘기며 보내던 시간들이 너무 아득하게 멀리 있는 것 같다. 파블로 네루다의 유명한 시 몇 개를 읽다가 금세 흥미를 잃어버리고는 백석같은 시인들의 시 전집을 떠들던 하루들.

휴가를 받고 의정부로 나와 인천행 지하철을 타고 가는 두 시간 남짓의 시간동안 서점에서 손에 잡힌 시집을 사들고 읽는다. 인기 많은 중년의 소설가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마치 소설은 쓰는 자신은 순수의 영역인 시를 쓸 수 없다고 이야기꾼이기 때문에 안 될 거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시집 한 권을 출간했다.

술이 위장을 휩쓸고 지났던 밤들, 시에 재능을 보이는 선배들을 따라 술잔을 기울인다. 곧 시간이 지나면 진짜 손에 들던 술잔이 기울어진다. 희미해지는 정신에 울분이 글에 생명을 준다고 했다. “……아마 나는 안 될 거야.” 밤보다 더 밝은 네온사인을 뒤로하며 새벽길을 걷는 나는 나직이 중얼거린다.



시가 오랜만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에게 시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문학이 주는, 죽지 않기 위해 쓸 수밖에 없는 뼛속까지 글쟁이들인 사람들의 고백에 아마 나는 글쟁이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글이 더 이상 감성이 주는 유희가 아님을, 분석과 만들어지는, 다듬어지는 허구의 이야기임을 점점 알아가면서 나는 시를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로르카의 시 선집』을 손에 들고 반쯤은 한숨이 나온다. 겉으로는 아니다. 속으로 깊게 내쉰 것이다. 백년이 가까운 시간 전에 스페인출신의 인기 작가의 것이다. 시인이자 연극 연출도 했다. 자유로운 영혼, 아나키스트적인 성향을 가진 작가는 자유와 영혼, 사랑과 죽음을 노래한다. 그 당시의 시인들, 작가들이 그렇듯 대부분 높은 학력을 자랑하는 로르카는 뉴욕을 돈다. 자본주의 속에서 그가 받은 영감들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다. 잡풀이 넓게 펼쳐진 길을 떠도는 집시들, 그들 속에 간직했던 주술적인 힘의 미신들처럼, 안달루시아- 한(恨)의 신이 그의 시들 안에 들어있다.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에 사람들은 감탄에 빠진다. 소통의 장애. 무엇이든 명확하게 파악해야 하는 것이 나의 임무였던가! 나의 호흡은 가빠졌다. 더 이상 페이지를 넘기는 손은 무의미했다.

누구에겐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겐 백 원짜리 동전보다 가치 없을 때가 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의 소중함을 그들에게 강요하지 않았던 것일까? 문화의 틀이 압박이 되어 박수를 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을 만들고는 있지 않았던가? 나는 스스로에게 그것들에 저항하면서, 고귀한 척하면서 말이다.

이 글은 <로르카 시 전집>과 전혀 관련이 없는 리뷰다. 시의 대가가 무엇을 노래했던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설에서 이야기해준 로르카의 모습을 볼 때 그는 스스로가 광대의 모습으로 세워지는 것이 너무 싫었던 것 같다. 그것은 일종의 자만일수도 있지만 어느 기준의 잣대에서 벗어나려는 그의 철부지같은, 동심(童心)의 오만함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시인의 시조차 이해 못하면서 나는 로르카의 마음을 알 것 같은 착각을 한다. 백여 년 전에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스페인에서 살았던 그 남자를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착각이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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