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는 자신이 겪은 부당한 일에 분노를 느끼고, 그 분노를뛰어넘어 가해자에게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하는 절실한 물음과대면한다. 바로 이것이 용서가 필요한 정황이다. 상처나 부당한대우를 아무렇지도 않게 넘겨버리거나 부당성을 외면하는 행위는용서라 할 수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기억상실이 용서와 같다고 할 수 없다. "용서의 전제조건은 단순히 분노를 포기하는 것"이라는 주장에는,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인간이 가져야 할 ‘윤리적 반응‘으로서의 분노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거나 사소하게 본다는 한계가 있다. 분노가 파괴적 복수의 감정으로 전이되지 않는한, 버틀러의 주장처럼 정당한 분노의 감정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이 가능하다. 용서는 분노의 감정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도덕적 의무이자 윤리적 반응이어야 하며,가해자인 타자에 대한 연민의 감정으로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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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나는 ‘없어도 되는 사람‘이라는 수식에 묶여 계속 버둥거렸다. 그렇지 않은 사람임을 계속해서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다르다. 나는가능한 한 미래를 계획하지 않으려고 한다.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면서 살고 싶다.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하게 될까. 이렇게 여러 일을 지속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지만 그런 질문은 미뤄놓기로 했다.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일들도 계획과 성과로 달성된 일이 아니다. 그저 좋아하니까 해봤고, 해보니까 또 좋았을 뿐. 기본적으로 나는 나를 신뢰하지 못한다. 그래도 나에 대한 한 가지 믿음은 있다. 앞으로 내가 어디로 향하든, 그 가운데에서무엇을 선택하든 아마도 그 일이 내게 가장 자연스러우리라는 확신 말이다. 그저 눈앞의 하루를 제멋대로 살아가는 게 다인 삶이지만, 쌓은 게 없는 대신나는 듯이 뛸 수 있지 않겠는가. 등에는 배낭, 발에는 운동화 그리고 내 몸에 딱 맞는 후드티 한 벌, 이정도면 충분하니까.
- P147

모두가 정답을 한 목소리로 외쳐야 한다는 부담없이 그저 서로 원하는 목소리를 내보면서 여러 가지를 실험해볼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가 달리는 건 100미터 코스가 아니니까. 힘들면 쉬어가고, 지치면 바통을 서로에게 맡기면서, 갈 수 있는 만큼 조금씩 이어 달리고싶다. 무엇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어달리기에 후드티는, 정말이지 너무 좋은 동료가 아닌가.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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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좀 할머니 같은 말이지만, 나는 어린이들이 좋은대접을 받아 봐야 계속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안하무인으로 굴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정중한 대접을 받는 어린이는 점잖게 행동한다.
또 그런 어린이라면 더욱 정중한 대접을 받게 된다. 어린이가 이런 데 익숙해진다면 점잖음과 정중함을 관계의 기본적인 태도와 양식으로 여길 것이다. 점잖게 행동하고, 남에게정중하게 대하는 것. 그래서 부당한 대접을 받았을 때는 ‘이상하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사실 내가 진짜 바라는 것은 그것이다.
- P41

어린이를 만드는 건 어린이 자신이다. 그리고 자신 안에는 즐거운 추억과 성취뿐 아니라 상처와 흉터도 들어간다.
장점뿐 아니라 단점도 어린이의 것이다. 남과 다른 점뿐 아니라 남과 비슷한 점도, 심지어 남과 똑같은 점도 어린이 고유의 것이다. 개성을 고유성‘으로 바꾸어 생각하면서 나는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매 순간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 간다고 할 때, 다양하다‘는 사실상 ‘무한하다‘에 가깝다고도 할수 있다.
- P91

어떤 어린이는 여전히 TV로 세상을 배운다. 주로 외로운어린이들이 그럴 것이다. 어린이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가장 외로운 어린이를 기준으로 만들어지면 좋겠다.
성실하고 착한 사람들이 이기는 모습을, 함께 노는 즐거움을, 다양한 가족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가족이 아니어도 튼튼한 관계를, 강아지와 고양이를, 세상의 호의를 보여 주면좋겠다. 세상이 멋진 집이라고 어린이를 안심시키면 좋겠다.
- P102

어린이는 이성으로 가르친다! 이것이 나 자신의 사훈社訓이다. 어린이 한 명 한 명을 존중하고, 그들의 지적 정서적성장을 돕고, 좋을 때 좋게 헤어지는 것. 직업 윤리와 진실한자세만 있다면, 굳이 사랑으로 가르치지 않고도 성과가 있다고 믿는다. 나는 어린이를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를생각하지 않는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생각하지 않으려고노력한다. ‘사랑‘ 이란 내가 다루기에 너무 크고 어렵고 조심스러운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마음이 드러날지도 모르니 늘 조심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 P151

다섯 살 어린이에게는 삶이나 죽음을 선택할 기회가 없었다. 그 어린이는 다른 사람의 의지로 인해 죽었다. 나는 삶을선택할 수 있었다. 문제 해결은 여전히 요원하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날마다 살기로 선택하고 있는 셈이다. 나처럼 선택의 순간을 가졌든 아니든 간에,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은 삶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사람은 무엇이든 어떻게든 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삶을 선택한다는 건 나아가겠다고 선택하는 것이니까. 나아가려면 외면할 수 없으니까. 나아가려면 맞서야 하니까. 삶을 선택한다는 건 그런 것이니까.
- P164

엄마가 된 친구와 나는 각자의 속도와 방향으로 살아간다. 부모가 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나는 끝까지 제대로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친구 역시 아이 없이 나이 들어가는나의 삶을 그저 짐작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는우리 자리가 떨어져 있다는 것이 예전처럼 서운하지 않다.
언제든지 손 내밀 수 있는 자리에, 잘 보이는 곳에 내가 가있겠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내가 어른이 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친구가 있다 해도 상관없다. 어른은 그런 데 신경 쓰지 않는 법이다.
- P181

부끄럽지만 인정해야 하는 사실이 한 가지 더 있었다. 그동안 나는 불편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격차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 세상에 그런 영역이 얼마나많을까? 어린이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등 여러 소수자들에 대해 내가 얼마나 무지하고 둔감했는지 깨닫게 된다. 어린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기 때문에 소수자라기보다는 과도기에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런데 나 자신을 노인이 될 과도기에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지않는 것처럼, 어린이도 미래가 아니라 현재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이 맞다. 또 어린이가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는 사이에 늘 새로운 어린이가 온다. 달리 표현하면 세상에는 늘 어린이가 있다. 어린이 문제는 한때 지나가는 이슈가 아니다. 오히려 누구나 거쳐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하는 일이다. - P202

사회가, 국가가 부당한 말을 할 때 우리는 반대말을 찾으면 안 된다. 옳은 말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사회에 할 수 있는 말, 해야 하는 말은 여성을 도구로 보지 말라는 것이고,
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세상을 만들라는 것이다. 우리 각자의 성별이나 자녀가 있고 없고가 기준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어린이를 위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린이 스스로 그렇게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약자에게 안전한 세상은 결국모두에게 안전한 세상이다. 우리 중 누가 언제 약자가 될지모른다. 우리는 힘을 합쳐야 한다. 나는 그것이 결국 개인을지키는 일이라고 믿는다. - P219

나는 이제 어린이에게 하는 말을 나에게도 해 준다. 반대로 어린이에게 하지 않을 말은 스스로에게도 하지 않는다.
이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래야 나의 말에 조금이라도 힘이 생길 것 같아서다. 일의 결과가 생각만큼 좋지않을 때 괜찮다고, 과정에서 얻은 것이 많다고 나를 달랜다.
뭔가를 이루었을 때는 마음껏 축하하고 격려한다. 반성과자책을 구분하려고,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린이 덕분에 나는 나를 조금 더 잘 돌보게 되었다.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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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무엇이 페미니즘인가:페미니즘의 다양한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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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비를 맞으며 걸어간다. 여름 소나기가 거세게쏟아져도, 어깨를 펴고, 부러진 우산을 들고, 천천히 그러나 활기차고 자유롭게 걸어간다.
- P39

검은 장갑과 장화는 온데간데없고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진짜 모습이 보였거든요!
으르렁 늑대는 우스꽝스러워진 자기 모습을잠시도 견딜 수 없었어요.
- P84

엄마에게는 내가 있었다.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는 딸인 내가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이름이 사라져 가는 순간에도 엄마라는 이름으로 누구보다 성실하셨다.
- P91

던 모습이 생생하다. 엄마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당신의딸이 자신의 이름으로 일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랑스러워하셨다. 나도 당신의 빛깔을 잃지 않고, 자신의 이름으로,
일하는 사람으로 살아 낸 우리 엄마가 자랑스럽다. 엄마처럼 내 이름을 지키며 살고 싶다.
그러니 이제 엄마도 당신을 사랑하길 기도한다. 엄마를 꼭 닮고 싶은 딸이 있다는 걸 기억하며 엄마 자신을 온전히 사랑해 주기를.
- P95

 거절은 한편으로는 나를 지키기 위한 적극적인 선택이기도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그것으로 인해 누릴 수 있는 편안한과 익숙함을 버려야만 하는, 쓰라린 상실감과의 대면이기도하다. 그 상실감을 이겨내고 나니 비로소 내가 그 뼈아픈 기절을 통해 얻은 ‘한 줌의 찬란한 자유‘가 보이기 시작했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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