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는 자신이 겪은 부당한 일에 분노를 느끼고, 그 분노를뛰어넘어 가해자에게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하는 절실한 물음과대면한다. 바로 이것이 용서가 필요한 정황이다. 상처나 부당한대우를 아무렇지도 않게 넘겨버리거나 부당성을 외면하는 행위는용서라 할 수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기억상실이 용서와 같다고 할 수 없다. "용서의 전제조건은 단순히 분노를 포기하는 것"이라는 주장에는,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인간이 가져야 할 ‘윤리적 반응‘으로서의 분노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거나 사소하게 본다는 한계가 있다. 분노가 파괴적 복수의 감정으로 전이되지 않는한, 버틀러의 주장처럼 정당한 분노의 감정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이 가능하다. 용서는 분노의 감정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도덕적 의무이자 윤리적 반응이어야 하며,가해자인 타자에 대한 연민의 감정으로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 P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