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 한국 사회의 변화를 갈망하는 당신에게
강인규 지음 / 오마이북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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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뜻한 보수’의 이중성에 대해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남긴 말이 있다. “따뜻한 보수, 듣기는 좋은 말이지요. 그러나 뜻은 이런 겁니다. 도와주고 싶어. 진짜로. 하지만 알잖아. 우리가 그렇게 못한다는 거.” 씁쓸한 웃음이 절로 난다. 기득권을 공고히 나눠 가진 자들이 아껴 쓰는 이 말의 본뜻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알고 있다. 그렇게 못한다는 거. 하는 짓 보아하니 그럴 뜻 추호도 없을 것이라는 거.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같이 나누자 함께 가자하면 바로 종북세력이 어쩌니 하며 매도해 버리는 몹쓸 병을 앓고 있다. 합리적 이성이 마비된 사회가 아닌가 걱정이 앞선다. 정당한 몫을 나누자 하면 서민주제를 알라 면박주고 복지를 얘기하면 살림 거덜날 듯 호들갑을 떤다. 권력, 정치, 문화, 교육 그리고 상식, 그리고 공동체. 저자는 이 정부 들어 우리가 모른 척 하는 사이 망가지고 바스러져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아픔으로 되돌아온 것들을 자세히 이 책에 담아 놓았다.


지금 여기,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 공동체를 부활시키자’는 한마디 전하기 위해 망가지고 박살난 현재의 우리 모습을 치밀하게 준비하여 선명하게 내놓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극한으로 치닫는 상황, 언어의 정의마저 혼란스러운 가치의 혼돈속에서 저자는 ‘따뜻한 보수’라는 말에 속아 아직도 넋을 잃고 있는 주권자 민주시민들의 권리와 사명을 일깨우고 있다. 대선을 코앞에 둔 이 즈음에 정신을 바짝 차리라고 꼬집는다.


이 책은 큰 줄기로 ‘정부가 망가뜨린 것’과 ‘우리 자신이 망가뜨린 것’을 그려내며 결론으로 그래도 우리가 희망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제시한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홀려 사람가치 묵살하고 상식과 공동체를 망친 이 정권이 온갖 검은 돈으로 추악하게 저물어가는 모습을 본다. 자비, 사랑, 명예 그리고 양심! 저자는 우리 삶을 움직이는 동기가 결코 돈만이 아님을 힘주어 말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예문은 탄성이 절로 나고 저자의 예리한 분석은 무릎을 치게 한다. 날카롭게 짚으면서도 날에 베이지 않고 웃어넘기게 한다. 명함과 동영상을 놓고 합리적으로 의심해 볼 때, 자신은 ‘비비케이가 이명박 대통령 소유임을 확신한다’고 외치는 저자의 패기가 든든하다.


한국 기업이 자랑하는 ‘친절 서비스’에는 생존의 절박함이 묻어나는데 그 절박함이라는 게 기업편에서의 것이 아니라 서비스를 베푸는 직원 개인편에서의 절박함을 말한다고 하니 뒷설명이 궁금하다. “게다가 이 친절은 같은 친절로 보답받지 못한다. 스스로 왕이라고 믿는 손님으로부터도, 직원의 명줄을 쥐고 있는 고용주로부터도...” 그리고 가슴 후련하도록 이렇게 정리한다. “고용주는 차별화도 안 되는 고만고만한 상품을 내놓고 나서 직원들에게 몸으로, 모욕으로 때우라고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손님은 유세 떨지 말아야 한다. 상대의 생존을 무기로 친절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그건 소비자로서 누려야 할 권리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피해야 할 무례다.”


누리꾼들이 ‘OO녀’라며 열심히 퍼 나르는 ‘김여사 현상’을 주시한다. 저자는 이 현상을 통해  (여성이라는)약자를 조롱하는 비겁한 사회의 일면을 파헤친다. 건장한 사내가 지하철에서 여중생을 수 십 분간 성추행하는 동안 아무도 폰카를 꺼내지 못했다는 사례에 맞대본다. 이는 용기없는 자가 ‘만만한 상대만을 물고 늘어지는’ 패배주의에 찌든 비열한 공명심이 만연된 모습이라는 것이다.


야만의 언어로 ‘지방대학’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 인재발굴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있다. 한 사회가 남을 얼마나 잘 배려하는지는 ‘약자가 어떤 대접을 받는지 살펴보면 된다.’는 주장이다. 한국에서의 장애인. 어느 사회든 10%가 장애인이라고 가정할 때, 우리가 길에서 마주치는 10명중 1명이 장애인이 아니라면? 이는 “그들이 부당하게 감금되어 있음을 뜻한다.” 우리 사회엔 아직도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고 하는 한국사회 보수세력의 주장이 무지와 몰이해의 산물인 것임은 그의 신랄한 한마디로 납득이 된다. “일자리가 복지인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갖지 못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 복지이다.”


망가진 교육 편에서 영어병을 지적한다. “어쩌다 길에서 마주치는 외국인에게 길 안내를 하는 것이 공교육의 목표가 아니라면, 차기 정부는 영어교육을 우선순위로 내세운 교육정책을 거둬들여야 한다.(중략) 이런 기본적인 교육 없이 영어 실력만 강조해서 얻을 수 있는 국가 경쟁력은 무엇인가?”


저자는 침팬지조차 배려와 협력의 본능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한 동물실험을 예로 들며 ‘사회적 본능’을 회복하자고 주장한다. 새벽기도에 참석할 아파트주민들이 배달사원들은 승강기를 사용하지 말라며 민원을 냈다는 것을 예수님이 그들의 새벽기도에 어떤 응답을 주실까 의구심을 갖는다. 예수님의 활금률 “네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 예수는 물론 침팬지도 이러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에필로그에서 ‘한국 사회의 변화를 갈망하는 당신에게’ 저자가 남기는 메시지는 명료하다.

“이미 ‘예수라면 어떻게 하실까’에 앞서 ‘침팬지라면 어떻게 할까’를 생각해야 하는 사회가 되었지만 ‘사회적 본능’을 되찾는 것만이 한국이 몰락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살만한 세상이 별건가. 네 꿈이 이루어져야 내 꿈도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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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없이 통증 잡는 법 - 국가대표 주치의 나영무 박사의
나영무 지음 / 청림Life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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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스케이팅은 종목의 특성상 허리와 골반, 발목에 문제가 자주 발생하는 종목이다. 김연아의 주치의를 맡고 있는 저자가 진료를 마친 뒤 그녀와 찍은 사진에는 김연아 선수가 저자 쪽으로 살짝 기울어 있는 모습이 담겨 있는데 저자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필자가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김연아 선수의 척추가 약간 휘었기 때문이다.“


스포츠 스타의 주치의, 나영무 박사가 쓴 ‘수술 없이 통증 잡는 법’에는 평소 작은 생활통증에 귀 기울이고 자세를 바르게 하여, 큰 병을 예방하고 늘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라는 간결하면서도 강한 메시지가 들어있다. 항상 손닿는 곳에 두고 수시로 꺼내 봐야할 통증백과사전으로 손색이 없다. 책에는 일상생활의 통증과 특정 운동 후의 통증 그리고 스스로 통증을 다스리는 114가지의 자가운동법이 사진과 함께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발목부상이 잦은 축구를 설명하며 ‘이동국은 내가 지켜본 역대 축구대표팀 선수 가운데 최고의 몸을 지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이동국도 부상의 덫은 피해가지 못하였으며 월드컵 출전을 눈앞에 둔 경기에서 무릎인대가 파열되어 낙마하는 불운을 겪는다. 몸관리에 대해서는 ‘필자가 지켜 본 태극전사 가운데’ 박지성을 최고로 꼽는다. 박지성은 ‘모범적인 생활 습관이 부상을 당할 확률을 낮춘다’는 의료계 속설을 보여주는 대표주자라고 평가한다. 넘어지는 요령도 완벽히 터득하고 있으며 특정 부위에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해 온몸을 이용해 넘어지면서 충격을 분산시키는 꾀돌이라는 설명이다.


책에는 중간중간 주치의 칼럼이 삽입되어 있다. 이 코너를 통해 저자는 통증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관리요령과 바른 자세 등 소중히 다뤄야 할 지식과 습관을 강조한다. 강한 의지로 통증을 이겨내자고 독려한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통증을 이겨내라고 다독거린다. 통증이라는 것은 나쁘기도 하고 좋기도 한 것, 나쁜 점은 우리 몸을 괴롭게 만들고 심지어 사회생활에 큰 지장을 줄 수도 있는 점이고, 좋은 점은 통증 덕에 몸의 이상 신호로 알고 제 때 진단과 치료에 임하게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통증은 ‘신이 준 선물’이며, 이를 무시하지 말고 바로바로 치료를 해야 한다는 저자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통증을 두려워하지 말자. 그리고 적극적으로 해결하겠노라 노력하자.


팔을 들기조차 힘들 때 우리는 오십견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오십대의 나이에 잘 온다고 해서 오십견이라는 명칭을 얻었다는 것인데 실제로 맞는 표현은 동결견(얼은 것처럼 굳은 어깨)이라 한다. 이는 병명이 아니고 증상인데 다양한 의학적 설명이 가능하나 결국 모두 일을 많이 해서 오는 병이라고 할 수 있다.


평소 자세와 통증의 상관관계는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으나 지식과 습관으로 이어지지 못했음을 이 책을 통해 깨우치고 반성하게 되었다. ‘나쁜 자세가 통증을 부른다’제하에 설명한 저자의 쉽고 정확한 진단을 보며 앉으나 서나 벌써 자세를 바로잡게 된다. 자세는 우리 몸을 유지하는 모양이다. 머리부터 시작하여 모든 몸의 기관을 연결하고, 관절과 인대, 근육들이 상호 보완해 모양을 유지하는 모든 동적 작용이다. 정리하면, “자세가 나쁘다고 하는 것은 몸이 틀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조직들이 서로 부딪히거나, 늘어나거나, 꼬이거나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수술없이 통증을 이기는 비법은 바로 자세다.


세 번째 파트에 그림과 함께 꼼꼼하게 수록되어 있는 자가운동법 114가지를 따라 해 보면 모르기에 두려웠던 모든 통증에 대한 거리감이 단박에 해소됨을 느낀다. 개인적 취향과 각자의 통증부위에 맞게 적당한 운동법을 선별하여 꾸준히 실천하면 좋은 결과를 볼 수 있을 듯하다. 발목관절을 자주 삐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발목의 근력을 키우는 것이 급선무이지만 인대 속에 있는 고유수용성 감각신경을 회복시키도록 노력하는 것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과도한 스트레칭을 주의하고 반드시 스트레칭 전에 체조나 걷기로 우리 몸을 유연하게 만드는 것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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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고요한 노을이…
보리스 바실리예프 지음, 김준수 옮김 / 마마미소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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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네, 바스꼬프! 귀관에게 술을 마시지 않는 녀석들을 보내 주지. 그리되면 여자 문제로 말썽을 피우지도 않을 걸세. 그런데 말이야, 특무상사. 내가 미리 경고해 두겠는데 그놈들마저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면 단단히 각오하라고.”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2년 5월의 독일-러시아 접경 북서부전선, 남자들은 모두 전장으로 불려가고 미망인들만 남아있는 러시아 마을, 열 두 채의 농가와 소방장비 보관창고가 전부인 제171대피역에 고사포사수로 다섯 명의 여성 병사가 투입되자 이를 맞이하는 특무상사 바스꼬프는 할 말을 잃었다.


“눈앞에 펼쳐진 뜻밖의 광경에 특무상사는 어안이 벙벙했다. 잠에 취해 얼굴이 늘쩍지근해 보이는 아가씨들이 집 앞에 이열종대로 늘어서 있었던 것이다... 눈을 깜박거려 보았지만 보이는 것은 여군 병사들뿐이었다. 그의 눈에 익숙한 병사들의 모습과는 달리 야전복 상의에 가슴이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고 모양과 색깔이 다른 곱슬곱슬한 머리가 서로 뽐내기라도 하듯 뻔뻔스럽게 모자 밑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백야가 이어지는 북구의 5월, 아침저녁으로 노을이 지는 러시아의 찬 공기와 늪지, 숲을 배경으로 전쟁과 여성을 깊이 있으면서도 무겁지 않게 다룬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편한 세상 만난 한 남성은 숙연해 지지 않을 수 없다.


고도로 훈련된, 영혼을 바짝 말려 양심의 새 틀에 맞게 완전히 개조된 전투기계 독일군 공수부대원들과 맞선 다섯 병사들의 모습은 가련하다. 20대 전후의 꽃잎같은 나이에 이미 보호받아야 할 여성으로서의 삶은 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된 채 부대에 입소한다. 바스꼬프의 입과 생각을 빌어 그들을 ‘소풍나온 어린아이들’처럼 표현해 낸 보리스 바실리예프의 천재성이 없었다면 이 책의 주제는 안네의 일기나 쉰들러 리스트에 견줄 만큼 무거웠을 것이다. 전쟁은 여성이라는 나무를 송두리째 뽑아버린다. 그러나 여성은 전쟁보다 강하다.


다섯 병사를 표현하는 문장들은 거침없고 익살스럽다. 전쟁터라는 안개도 그들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과 인간성을 덮지 못한다. 훈장까지 받은 특무상사 바스꼬프의 눈에 비친 여성 병사들의 모습은 말 그대로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질 않는다.”

“말갈기 같은 머리채를 허리까지 늘어뜨린 것도 있고 어디서 자빠져 있다 뛰어왔는지 머리칼이 부스스 흐트러진 것도 있다. 꼬락서니가 영락없이 꽁지 빠진 새 같다. 그 꼴에 실전 경험도 없으면서 무슨 역전의 용사라도 되는 것처럼 깝죽깝죽 으스대기만 하는 년들이다.“

“에그, 불쌍한 년들, 이 난리 통에 사내새끼들도 죽을 맛인데 너희들이야 오죽하랴...”

“병사의 걸음걸이가 영 신통치 않아 보였다. 적을 경계해야 하는데 젠까는 자신의 내면에서 울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 같았다. 애그, 저런 것들도 군인이라고.”


다섯 병사 각자의 삶은, 전쟁을 상상하면 떠오르는 흔한 모습으로 망가져있다. 결혼을 하자마자 군인인 남편이 죽었고, 장군인 아버지를 포함하여 가족이 통째로 몰살당했으며 직업훈련원에서 기술을 배우다 혼자 남았거나 아예 고아로 지내다가 군인이 된다. 전쟁을 통해 망가진 여성의 삶을 작가는 오히려 여군으로 무장시켜 살육의 전쟁터 전면에 내세운다. 잔인하다. 그러나 상상조차 무서운 전쟁터에서 그들은 희망을 놓지도 아름다움을 잃지도 않고 인간의 숭고함을 간직한 채 하나둘 사라져 간다. 젠까의 죽음을 ‘프리츠‘라 불리는 독일공수부대원들이 넋을 잃고 바라보는 장면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전쟁의 허상과 생명의 소중함, 여성의 아름다움, 인간성의 복원 같은 복잡한 감동이 두서없이 쏟아져 내린다. .


특무상사를 흠모했던 리자는 늪에 빠져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도 믿음을 잃지 않았다. “나무들 위로 해가 서서히 떠오르면서 밝은 태양 광선이 늪 위로 비스듬히 내리쬐고 있었다. 따사로운 햇빛을, 내일의 약속처럼 참기 힘든 눈부신 햇살을 리자는 마지막으로 보았다. 찬란한 내일은 자기에게도 있을 거라고 최후의 순간까지 믿었다.”


총에 맞고 누워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리따는 자신이 다섯 병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며 괴로워하는 특무상사를 위로한다. “아니, 무슨 그런 말까지... 하지만 뻔하잖아요, 전쟁인데.” 리따에게 자신의 삶과 목숨과 젊음은 그저 전쟁이기 때문에 빼앗긴 것이다. 안타깝지도 억울하지도 않을 만큼. 그러나 친정어머니에게 두고 온 젖먹이 아들, 고아로 남게 될, 또는 살아남을지도 불확실한 그 아들을 떠올리며 억장이 무너진다. 그러면서 죽는다.


그 아들이 커서 양아버지가 된 특무상사와 숲속의 무덤을 다시 찾았을 때, 제3의 화자는  자신의 친구에게 편지를 쓴다. 평온하던 그곳이 옛날의 전장이었음을 읊조린다. “노을이 질 때 여기는 죽은 듯이 고요하다네. 그동안 무심코 지냈는데 오늘에야 비로소 그걸 깨달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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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의 바다에 빠져라 인문의 바다에 빠져라 1
최진기 지음 / 스마트북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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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왕초보 입문자를 위한 최고의 안내서이다. 숲을 보여주면서도 나무와 꽃의 아름다움이 현란하다. 인문학에 대해서 이 책에서 다룬 내용 정도만 알면 되겠다 싶다. 저자는 장 보드리야르부터 동양의 장자까지 42개의 생각을 정리한 ‘인문학의 지도책’이라고 이 책을 소개하고 있다. 인문지식을 우리가 살면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사회현상과 접목시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장점이다.

 

저자는 이 책을 순서대로 한 번 읽고, 다시 거꾸로 한 번 읽기를 권장한다. 그도 그럴 것이 생존하며 현실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현재의 철학자들이 전면에 배치되어 있고 플라톤, 맹자 등 철학의 기초가 되는 내용들이 후미에 배치되어 있으니 일반적인 순서라면 뒤에서부터 먼저 읽는 것이 맞다 할 것이다.

 

현대사회의 철학과 문화를 비중있게 다루는 동시에 역사적으로 정치철학 및 과학철학 그리고 현대, 근대, 동서양 고전 등 현대사상의 기초를 훑고 있다. 아울러 인문특강 10강좌(총 6시간) 동영상 DVD가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어 시청각 학습의 기회를 제공한다. 손닿는 곳에 두고 사전처럼 활용할 수도 있고 고요한 하루를 얻어 깊이 있는 인문학 산책을 떠나도 좋을 문학, 역사, 철학의 종합 안내서다.

 

각 장의 사이사이에는 ‘덤&덤’코너를 마련하여 그 장에서 다룬 내용과 연관있는 사례들, 재미있는 이야기거리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이어진 ‘확인하고 넘어가기’코너에서는 “출간 전 이 책의 내용을 접한 인문 왕초보 독자 중 많은 분들이, 읽을 때는 이해가 되었는데 읽고 난 후에는 내용이 헷갈린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확인하고 넘어가기’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라고 하여 그 장에서 다룬 주요내용을 깔끔하게 되새기도록 제공하고 있다.

 

한나 아렌트는 어느 전범의 재판과정에 참여했을 때 자신이 무죄임을 주장하는 터무니없는 상황을 보며 당신의 죄는 ‘사고의 무능성’과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이라 주장하여 ‘악의 평범성’이 사람의 영혼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설명한다. ‘악의 평범성’이란 평범한 사람들이 악조차도 일상처럼 성실하게 반복함으로써 윤리관이 무뎌져 악에 이용당하고, 나아가 악을 돕는 관성의 폐해를 말한다. 이러한 사례가 비단 히틀러에게 복무한 독일전범들 뿐이겠는가?

 

문명충돌론을 주장한 헌팅턴은 미래의 가장 위험한 충돌로서 “서구의 오만함, 이슬람의 편협함, 중화의 자존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할 것”을 예견하면서 “특히 탈냉전 세계의 중요한 국제관계의 경연장이 있다면 그것은 아시아, 그중에서도 특히 동아시아가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그는 아시아를 ‘문명의 가마솥’이라 표현한다.

 

‘인간과 자연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내용으로 침팬지를 연구한 ‘제인 구달’을 다루고 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녀의 끈기가 대단하다. 26세가 되던 해에 현장연구를 시작하여 모두들 석 달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수군거렸지만 그곳에서 40년을 버텨낸다. 그녀는 연구자의 필수덕목이 천재성이 아니라 ‘끈기’임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그녀가 낯선 인간을 경계하는 침팬지 무리에게 다가가는 데 무려 1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때 그녀가 다가간 거리가 90m 전방, 90cm가 아니라 90m!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소개한 ‘칼 포퍼’의 사상은 대선을 앞둔 우리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열린사회를 판단하는 지표는 ‘폭력에 호소하지 않고 지배자를 교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하며 그것이 가능한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다. 우리 한국사회의 진정한 모습은 무엇일까?

 

인간사회는 진보했지만 왜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빈곤으로 죽어가는가에 대한 가장 유명한 답변으로서 경제학자 멜서스를 덤&덤에서 소개하고 있다. ‘식량생산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인류가 빈곤하다’는 주장으로 유명한 그의 본모습은 역사상 최악의 무자비함을 보여준다. “교양있는 상류계급은 성욕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율적으로 인구를 줄일 수 있지만, 가치 없는 하류계급은 성욕을 억제할 수 없기 때문에 기근, 전쟁, 전염병으로 죽어나가야 한다... 끔찍한 기근이 너무 자주 찾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사망률을 낮추려는 어리석은 노력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를 촉진하는 편이 낫다. 예를 들어 빈민들에게는 불결한 습관을 권하고 도시의 골목을 더 좁히고 많은 사람들이 좁은 집에 살게 만들어 페스트가 잘 번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게 어디 학자가 할 말인가? 게다가 멜서스, 그는 목사였다.

 

‘헨리 조지의 사상과 한국의 자산’에서는 우리나라의 자산, 특히 토지자산에 대한 부의 불평등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심각한 수준임을 언급하고 있다. 부의 불평등 정도에 따라 편중이 심하면 1, 평등하면 0으로 지니계수를 표시하게 되는데 우리나라 토지지니계수는 무려 0.85. 토지공개념과 종합토지세 부과 등의 역사적 사례가 있으나 모두 유명무실해 지고 점점 빈부의 격차가 확대되고 있는 우리 한국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무위하고 절로 자연하다 - 장자’편에서 소개한 무위자연의 유래 이야기가 재미있다. “예전에 자기의 그림자를 무서워하는 자가 있었다. 그는 그 그림자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정말 미친 듯이 뛰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는커녕 심장이 터져서 죽어버리고 말았다. 나무 그늘에 앉아 잠시 쉬면 될 것을...” 그림자는 마라톤을 한다고 등산을 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나무그늘 속에 들어가 쉬면 자연히 없어지는 것이었다! 오늘 문득 장자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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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의 친전 -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차동엽 지음 / 위즈앤비즈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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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을 데려가려거든 나를 밟고 가시오’ 1987년 6월, 명동성당으로 피신한 민주투사들을 내놓으라며 찾아온 경찰에게 시대의 어른 고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당당히 말씀하신 한마디다. "나를 밟고 가시오. 그리고 내 뒤엔 신부들이, 그 뒤엔 수녀들이, 그 다음에야 당신들이 찾으러 온 대학생들이 있을 것이오. 밟고 가시오..."

 

늘 정의의 편에서 약하고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보듬어 주셨던 고 김수환 추기경의 사신을 ‘친전’이라는 이름으로 엮은 책이 출간됐다. 추기경님은 일생을 정의롭게 사셨고 한시라도 남에게 부담이 되지 않고자 하셨다. 거동이 불편해지고 낙상사고가 나고 하던 말년에 이르러서도 이 뜻은 굽힘이 없으셨다. 그나마 오랜 지인 신치구 퇴역장군과 조카사위 김호권 박사가 일주일에 한 번 산책을 시켜주고 말벗이 되어주는 것만을 받으셨다. 그렇게 큰 사랑 주셨으면 작은 도움 하나쯤 눈감고 받으실 법도 한데도 말이다.

 

이 책을 엮은 ‘무지개원리’의 저자 차동엽 신부는 서문에서 추기경님이 30년간 불면증을 알아오셨으며 그 원인이 세상에 대한 그분의 소명의식에서 비롯된 것임을 설명하고 있다. 추기경님은 스스로 “내 가슴은 늘 세상의 아픔으로 멍들어야 한다. 멍이 꽃이 될 리 없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으로 나는 늘 세상의 고통 속에 있어야 한다.“라고 생각해 오셨다는 것이다. 신치구, 김호권님의 손을 빌려 작성된 추기경님의 유지, 그 애절한 마음을 ‘우선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던 것’을 차동엽 신부가 엮은 책이 이 책이다.

 

서정적인 사진과 그림, 붉은 색으로 선명하게 수록된 추기경님의 육성이 차동엽 신부의 빛나는 엮음을 통해 생생하게 다시 태어났다. 가슴속 멍울과 고통을 짐처럼 지고 살다가신 추기경님의 유지가 이토록 아름답고 의미깊은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한 순간도 약하고 가난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으신 시대의 어른, 망실과 몰염치의 시대를 거치며 더욱 어른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이 바로 나로부터 버림받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69년 8월, 사제가 되신 직후, 어느 수련회에서 추기경님이 한 여고생에게 써주신 글귀가 선종후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었다. 최악의 시기를 보내던 그 여고생이 40년을 보관해 오던 빛바랜 메모지, “장마에도 끝이 있듯이 고생길에도 끝이 있단다.”

 

목차 ‘진리는 평이하다’에 소개된 ‘참평화를 얻으려면 골고루 나눠야 한다’는 말씀은 지난 무상급식 논란에서부터 최근의 복지논쟁까지 한국사회의 추잡하기까지 한 대립들을 반성하게 한다. “한자 平和(평화)를 잘 살펴보십시오. 벼(禾), 즉 밥이 모든 입(口)에 골고루(平) 들어가는 것을 뜻합니다. 참평화를 얻으려면 고루 나눠야 합니다. 가진 것뿐 아니라 기쁨과 슬픔, 고통도 나눠야 합니다. 결국 서로 사랑하는 것이 평화의 지름길입니다.”

 

윤동주의 ‘별헤는 밤’을 좋아하며 “서시도 좋아하지만 감히 읊어볼 생각을 못했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운 게 많아서 그런 것 같다.”고 말씀하신 추기경님의 육성을 옮기며 차동엽신부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이란 대목에서는 멋진 포즈로 당당하게 하늘을 우러르기까지 하지 않았던가”라며 자기반성을 하는데 두 분 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서시’라는 제목조차 잊고 살지 않는가, 우리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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