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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管子) - 經世의 바이블 한국 최초 완역 管子, 개정판
관중 지음, 김필수.고대혁.장승구.신창호 옮김 / 소나무 / 2015년 2월
평점 :
새벽녁에 경제학 도서를 조금 읽고, 국가와 법학에 관련한 내용을 조금 사색하고, 영문 원서를 조금 번역하고, 짧은 글 한 편과 시 한 편을 짓고서 그것을 cigar lighter로 태우고,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하여서 책장을 바라보다가 눈에 띈 《관자》에 대하여 논한다.
작년에 본서의 역자들(장승구 · 신창호 ·고대현 · 김필수)에게 《管子》를 번역해줘서 고맙다는 전자 우편을 한 통씩 발송했다. 고맙게도 어느 분은 그것을 읽고 답장했다. 내가 발송한 그 편지들은 젊은 학자들이 고된 작업을 해준 덕분에 옛날 명문당 출판의 편역이나 한송 출판의 일화 나열 도서가 아니라 《管子》를 《관자》로 읽을 수 있게 해준 그들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그러나 이 도서의 번역과 해석들이 원문과 원의에는 틀렸다.
역자들의 수고에 진심으로 고맙다. 하지만 관자는 도교의 사람이 결코 아니다. 춘추 시대 거의 모든 정치가 또는 정치가 겸 사상가가 그랬듯이 관자도 현실 정치에 깊게 관련돼 있었고, 당시에는 황로 사상 또는 청담 사상과 관련된 사색과 논의 따위를 하지 않았다. 오늘날 대한민국 중등교육 이상의 교육을 수학한 이들이 〈윤리와 사상〉 교과서와 그 외에 중국 사상 관련 도서들에서 접하여서 알게된 것과 다르게 이들도 오늘날 대한민국 사람들과 똑같이 유흥하고 생계를 꾸리면서도 정치에서는 ‘국가가 흥하냐? 국가가 망하냐?’ 의 문제를 중요하게 여기고 다뤘다. 그들에게는 오늘과 내일이 죽음과 삶의 전쟁터였다.
사람들이 흔히 잘못 아는 것과 다르게 중니(공자)는 사구 또는 대사구(오늘날 법무부 차관 또는 장관)로서 현실 정치가로 활동했고 그의 정치사상이 무시된 까닭은 그가 평화 또는 이상 정치를 말해서가 아니라 중니가 자신의 나라인 노 나라를 등지고 남의 나라에 오가며 정치하겠다고 유세하여서 간첩으로 낙인 찍힌 탓이다. 실제로 숱한 사서와 고전을 읽어봤다면 모든 사람이 중니를 아래와 같이 평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중니의 말은 그럴싸 하지만, 또는 아름답지만 우리나라에는 맞지 않고[또는 그의 말은 비현실적이고], 그는 자신의 나라도 등지고 떠돌면서 다른 나라에서 또는 가는 나라마다 정치하겠다고 (제의)한다. 그를 두면 (외적이 돼)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그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그런 평을 듣고 있음과 자로 등 자신의 무리의 일원을 등용시키는 게 고작 용병으로 쓰이고 죽임 당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그는 그들의 수괴인가? 아니면 자신의 몹쓸 파탄난 인격에 대의라는 명분을 곁들여서 출세하려는 자신의 제자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자신의 탐욕을 채운 이인가? 훗날 춘추라고 일컬어지는 때는 어느 때든 그랬듯이 현실적이었고 이때만큼 지극히 정치다운 때를 찾기도 어렵다. 하물며 관자는 어땠나. 관자는 국가에 대하여서 더 그랬다. 그를 모방하여서 한때 정치한 중니 따위가 감히 낮춰서 논할 위인이 아니다. 중니는 한 국가에 머물면서 정치한 것도 아니고 초대하는 나라도 없었는데 제 발로 나라 밖으로 나가서 유세했고, 가는 나라마다 그 나라의 통치자에게 자금을 받아서 그의 정치에 조언하였고, (알려진 것과 전혀 다르게 내가 그의 재산을 환산해보니) 중니가 관학에서 귀족의 자제들을 잠시 가르치면서 2억 원 대(2019년 환산 기준) 이상의 정식 급여와 자제들의 부모인 귀족들에게 사례를 받았고, 사학에서 최소 2천억 원(2019년 환산 기준) 이상에 달하는 수업료를 받았다. 그런 자가 관자를 사치스럽다고 모욕하나. 자신이 행한 정치도 관자의 행정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다. 그런 자가 관자를 폄훼하나.
(중니가 노자 등에게 수학했다는 내용은 분명하지 않다.)
관자는 지극히 단순한 현실, 곧 자신의 백성이 사는 그 모습 자체를 보고 논하면서 자신이 배우고 겪은 현실을 담백한 표현으로 바라본다. 지극히 무미건조하다. 간혹 그가 군사 · 법 · 정치 등을 논할 때 나는 그에게서 생동감을 느낄 정도로 그의 말에는 즐거움이 묻어난다. 그의 말을 기록한 글에 지나지 않음에도 《管子》를 읽으면 그것이 와닿는다. 그러나 그의 삶 · 말(말을 기록한 글)의 번역과 다르게 관자는 황로와 첨담의 사상을 지니지 않았다.
내가 《韓非》와 《荀子》 등을 읽어볼 때 그 서편들의 어느 문구들이 가필돼 덧붙여져 있는지 명확하게 드러나 보이는데 《管子》는 그런 것이 그래도 덜한 편이다. 그러나 틀린 해석으로 명서가 번역된 것이 못내 슬프다. 이 슬픔이 오역에만 있는 게 아니라 오역으로 말미암아 퍼질 문제들과 이제야 《管子》같은 책이 번역돼 출판됐는데 그 외에 것들은 번역도 되지 않고, 단 두 권 있는 《管子》 번역서도 슬프게 만든다. 그래도 네 사람이 수고하여서 번역한 이 도서를 소중하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