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 놀라운 로봇 세상 Carlton books
클리브 기포드 지음, 이주혜 옮김 / 삼성당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초등 3-4학년이 아니라 5-7살 아이가 보기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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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의 나라 - 상 - 북리 군왕부 살인 사건
김유인 지음 / 오두막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소설을 좋아라 하는 나.

현실감 없이 멀게만 느껴지는 저 앞선 시간 속에서도

사람들이 울고 웃고 알콩달콩 살았었다... 는 걸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이 책은

중국 남송시대를 배경으로

인피면구를 쓴 황제'인종'과

그가 따라다니면서 '천자 정체성'을 깨닫게 해준, 호위무사 '전조'가 주인공이다.

팬픽, 역사, 무협, 추리물이 적당히 얽혀있다.... 고 소개되어있는데,

다른 건 몰라도 팬픽? 누구의? 모르겠다.

 

그럴 법한 이야기.

그래도 마지막에 총정리를 하면서 주제를 반복하는 장면은 사족 같은 느낌이었다.

정치란 민중을 위한 것이라고 말로 얘기하긴 쉽겠지만,

실현되기도 어렵고, 실현시키기 위한 노력과 과정 자체가 더 중요한 것일텐데.

그리고 어디 지도자의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던가?

신실한 신하도 많아야 하고, 국제정세도 도와야 하고, 백성들의 문화도 따라줘야 하고...

뭐 지도자가 제일 중요하다 하면 긍정할 수밖에 없지만. ^^;

 

 

저는 그저 평범하고 단순한 무인. 제가 익힌 것은 그저 한 자루의 검.

베면 잘리고, 내리치면 꽂히는 지극히 정직하고 투박한 이 한 자루의 검.

그러나 이 검은 살인자의 손에 들리면 살검이 되고, 협객의 손에 들리면 활검이 되더이다.

검이 아니라 검을 든 사람의 마음이 살검도 만들고 활검도 만듭니다.



 

천자 또한 마찬가지가 아니더이까.

자신을 위해 남을 죽이는 살검처럼 황제가 자신을 위해 백성을 억누른다면 폭군이 될 것이요.

자신보다 남을 위하는 활검처럼 황제가 자신의 안위보다 백성의 평안을 먼저 생각한다면 현군이 되겠지요.

황제는 검을 든자, 그러므로 힘을 갖고 있는 사람,

따라서 그 검을 누구를 위해 쓰느냐에 따라 활검도, 살검도, 폭군도, 현군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바라건대 진실로, 그 검조차 없기를 소원합니다.

아무리 활검이라 한들 검은 곧 검.

강즉정, 강자가 정의인 세상에서 언제 살검으로 변해 피바람을 일으킬지 모르는 무서운 무기.

그러므로 그 검조차 없어지기를,

그 검이 녹아 땅을 일구는 호미와 낫이 만들어지는 평화로운 세상이 되기를 진실로 저는 바랍니다.

 

천자 또한 마찬가지. 

아무리 현군이더라도 그분조차 잊혀지기를, 그래서 황제의 이름조차 모르는 채

농부들은 즐거이 땅 일구고 씨뿌리고, 어부들은 즐거이 그물 던지고, 아낙은 길쌈하고 사내는 장작 패고,

귀천이 따로 없이 모두 그렇게 다, 황제든 귀족이든 백성이든 천민이든 다, 

똑같은 하늘의 자식으로 평화로이 살기를 진심으로 저는 바랍니다.

 

그러므로 선생, 저는 이 세상이 진정으로 천자의 세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강자의 세상도 법의 세상도 아닌, 그렇다고 약자의 세상이나 정리의 세상도 아닌,

강자도 약자도 따로 없고 법도 정리도 따로 없는 모두가 다 똑같은 '하늘의 자식[天子]'으로

저 하늘이 내려 주는 햇빛과 바람, 빗물과 솜눈을 함께 받으며

평화로이 행복하게 사는 그런 세상이 되기를 진정으로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꿈꾸는 세상입니다. 제가 꿈꾸는 '천자의 나라'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김용의 <영웅문>이 생각났다.

고딩 시절, 아빠 책장에 꽃힌 제1권을 심심하다는 이유로 들쳐본 이래

일주일에 한 번 찾아오는 이동식 책대여점에서 왕창 빌려다가

밤을 새고도 모자라

수업시간에도 교과서 사이에 끼고 읽어댔었다.

<영웅문>을 끝내고서도 김용의 다른 책, 다른 작가들의 무협책을 찾아 읽었더랬다.

주인공의 심오한 내공과 경공술을 무척 부러워했었는데...ㅋㅋ

아직도 남의 책꽃이에 꽃힌 책에 관심있어 하는 건 여전하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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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 (양장)
황선미 지음,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00년 12월
평점 :
절판


그대로가 떨리는 목소리로 너무나 감동적으로 읽었다 했던 책.

아이와 함께 감동을 나누고 싶은데 아쉽다는 말도 했었다.

 

책이란 것은 나와 책의 관계이기도 하지만, 이웃과 나의 관계이기도 하다.

이웃이 감동적으로 읽은 책을 나도 읽고 싶어지게 되면,

그것으로 시작해서 한조각의 마음이라도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테니.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시간의 퇴적층이 곧 짙은 향기를 풍기는 믿음이 될 수 있으니까.

 

어쨌거나 나도 읽어보고 싶었다. 

유명한 책이어서 제목이 무척 익숙했기도 했고.

도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아픈 머리가 잠시 진정되었을 때 붙잡았고, 또 다시 지끈거릴 때쯤 다 읽었다.

 

책장을 덮으면서 든 생각은,

감동이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지 않다는 점.

나란 사람은 주제가 직설적으로 드러나고, 전개가 빤히 예상되는 책에는 잘 감동하지 않는다는 점.^^;

 

 

책 제목 위에는 "꿈과 자유를 향한 여정을 그린 우리 시대의 동화"라고 적혀 있다.

나도 주인공 잎싹의 인생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주어진 삶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용기있게 사는 삶은 박수 받아 마땅하다.

 

어미로서 초록머리를 기르고 떠나보내는 애정 가득한 모습이라던지

마당 친구들로부터 배척 당하고 외로워하는 모습,

마지막을 족제비 새끼의 먹이로 내어주는 달관의 모습 등이 애잔하다.

 

 

잎싹은 날개를 벌려서 다 자란 초록머리의 몸을 꼭 안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부둥켜 안고 있었다.

초록머리의 부드러운 깃털과 냄새를 느끼며 몸을 어루만졌다.

어쩌면 앞으로 이런 시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소중한 것들은 그리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잎싹은 모든 것을 빠뜨리지 않고 기억해야만 했다.

간직할 것이라고는 기억밖에 없으니까.

 

 

그러나, 잎싹의 처지를 묘사한 도입 부분부터

앞으로 어찌될 것인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고,

마지막까지 짐작 그대로 진행되니 좀 허탈하고 빤하게 느껴졌다.

 

우린 지나치게 많은 교훈을 자주 들으면서 자라지 않나?

꿈과 희망, 자유는 정말 중요하지만, 그만큼 진부한 소재다.

소중한 가치는 변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도 진실이지만,

그 사실을 대놓고 자꾸 얘기해대면 그냥 평범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지 않은가?

 

어른들의 일상은 평범하고 현실에 순응적이라면서

아이들은 평범한 일상을 깨고 특별해지도록 요구받는다.

데미안의 알 깨고 나오기 같은 주제를 반복적으로 주입받는다.

마당 밖으로 나가는 것이 더 멋진 인생이고,

아웃사이더가 미화된 느낌...

 

허약한 몸으로 읽어서 정신까지도 비판적이 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뛰쳐나가는 용기, 스스로를 책임지는 삶을 찬양하는 책을 약간 비뚫어진 마음으로 쳐다보게 된다.

이런 사람 하나쯤 있어도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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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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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김 훈의 <칼의 노래>를 읽고 그 문장의 현란함에 빠져있을 때

그 다음으로 박범신의 <고산자>를 읽으려고 했었다.

너무 싱거워서 재빨리 접어버렸었다. 

그 영향력이 거의 사라져버린 지금 <비즈니스>를 읽으니 이제서야 문장의 담백함이 느껴진다.

부드럽게 흐르는 듯, 영상이 보이는 듯 하다고나 할까.

어쩌면 주인공이 내 처지와 비슷해서 공감이 가서일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박범신 소설은 처음으로 읽었다.

소설을 즐기는 편도 아니고, 게다가 남성작가의 글을 그닥 좋아하는 편이 아니어서인 듯.

 

 

<비즈니스>의 주인공은 서른 아홉의 아줌마. 1인칭 시점이다.

가끔 회상하는 듯한 문장으로 인해, 세월이 더 느껴졌다.

난 내 나이가 많다고 생각되질 않는데, 참 여러 군데서 '마흔 = 나이 듦' 공식을 접하게 된다.

쇼펜하우어의 말대로, 마흔은 '본문의 끝'일까? 

마흔 셋 나이에 열 일곱 소녀에게 프로프즈 거절 당한 개인적인 상실감 아닐까?

우리 세대는 80세도 훨씬 넘게 살거라고 하는데, 이전 시대의 고정관념을 지금까지도 굳건히 붙잡고 있는 건 아닐까?

젊음에 대한 지나친 강박인 것만 같다.

 

어쨌건,

소설은 'ㅁ시'라는 가상 도시에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삶을 비교/대조하면서 시작한다.

진보인사로서 도시 개발을 전면에 내세워 재선에 성공한 시장은 스스로를 '비즈니스맨'이라 부른다. 

또한, 신시가지 문화권에 삶을 유린당한 남주는 도둑이란 '비즈니스'를 하고,

딸의 과외비를 벌기 위해 몸을 파는 여주는 '비즈니스우먼' 이라 자칭한다.

 

여주는 철저히 착복당하면서도 신시가지의 삶을 맹목적으로 따라가려 애쓰다가,

우연히 구시가지의 가슴 따뜻한 인간다운 삶을 접하고는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허무했던 가짜 삶을 버리고, 새로운 선택을 하는 것으로 끝난다.

천민자본주의사회에서 강남/강북의 양극화된 삶을 소설의 재료로 삼은 것이다.

 

홍보글에는 박범신의 문학적 변신을 엿볼 수 있는 책이라 소개하고 있고,

작가는 이런 식의 현실 비판적인 이야기가 우리 문학계에 거의 실종상태라고 말한다.

정말?

뉴스에서, 토론 자리에서, 온통 이 나라가, 세계가 왜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지 개탄하고 있는데

문학계에서는 이런 일들이 작품화되지 않고 있단 건가? 모를 일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적'은 자본, 돈에 휘둘리는 세계다.

손에 잘 잡히지 않는, 우리 일상을 무겁게 받치고 있는 무형의 적...

이 책을 읽었다 해도,

주인공의 변화에 박수를 친다 해도,

여전히 나는 적을 어떻게 무찔러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무작정 신시가지가 정한 법칙을 따라가지 않으려 의식적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신시가지문화, 자본 논리가 설득하는 대로 따라가지 말라는 교훈으로 만족해야 할까.

 

 

 

“세상에서 말하는 도덕이란 누구나 볼 수 있는 데 걸어놓는 문패 같은 거야. 문패는, 지금 걸던 대로 걸어. 그 대신 남몰래 돈 벌어 정우 뒷바라지라도 잘해. 요즘 애들이 진짜 싫어하고 혐오하는 부모는 실패한 부모야. 아이 뒷바라지 못해주는 부모 말야. 나중에 정우가 좋은 대학도 못 가고, 그래서 별 볼일 없는 인생을 살게 되었을 때, 엄마는 내게 무엇을 주었느냐고 너한테 물으면 뭐라고 할래? 과외조차 안 시키고 외국어고 갈 것 같아? 어림없어 얘. 신시가지 아파트 사는 애들은 주말이면 서울에 있는 영어 학교까지 엄마들이 실어 나르고 있어. 넌 정숙한 좋은 어머니상(像)이니, 그걸 계속 네 문패로 사용해. 그 대신 눈 질끈 감고 다른 각도로 세상을 봐. 처음만 지나면 모든 게 쉬워져. 정우를 네 신랑처럼 살게 하지 않으려면 무슨 일인들 못 하겠니. 자식을 두곤 결과적으론 남는 장사를 해야 한다 그거야. 안 그러면 너, 정우한테 나중에 원망받아!”

--- pp.62-63

 

명문 대학에 보내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을 학습의 로봇으로 만드는 부모가 최상의 부모였다. 그녀 말대로 투자와 견줘 최상의 부가가치를 내는 게 교육의 목표가 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 겨우 주민등록을 옮겨 신도시 중학교에 진학시키는 것 정도는 사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을 서울로 보냈다. 아예 미국이나 유럽으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외고, 서울대로 이어지는 일반적인 단계, 그 너머의 또 다른 특수한 곳에 존재했다. ... 그런 아이들은 자신이 '성골'이라고 믿었고, '귀족'으로 성장했다. 귀족으로 성장해 돌아오면, 부모들이 가진 재산이나 기업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죽어라 공부해 외고, 서울대를 나온 가난한 집 수재들이 그들의 고용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엄밀히 말해 정우처럼 가진 것 없는 집 아이들은 그들 귀족의 명을 받고 그들의 재산을 더 불리는 전사로 키워지고 있는 셈이었다. 부의 세습적 구조는 날이 갈수록 오히려 깊어졌다. 그리고 그런 구조는 전선조차 뚜렷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미 세계적이었기 때문에, 뿌리치거나 깨부술 방도가 전무했다. 뿌리치면 실패자로 세상 끝까지 밀려나야 했고, 깨부수려 하면 감옥에 가야 했다. 그러니,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귀족의 전사가 되는 길을 쫒아갈 수밖에 없었다. --- pp 128-129

 

사실, 이런 식의 현실 비판적 이야기는 오늘날의 우리 ‘문학판’에서도 거의 실종 상태에 놓여 있다. 현재진행형으로 맞닥뜨리고 있는 삶의 사회구조적 문제들을 ‘문학판’에서 오히려 유기시키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래도 좋은가. 우리네 삶을 몰강스럽게 옥죄는 전 세계적 ‘자본의 폭력성’에 대해, 문학은 여전히, 그리고 끈질기게 발언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지난봄 나는 ‘갈망의 삼부작’으로 명명한 마지막 작품 『은교』를 펴낸 바 있다. 최근작 『촐라체』, 『고산자』, 『은교』에서는 삶의 본원이라 할 존재론적 슬픔이 우선적으로 고려된 게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어스레한 골방에서 존재론적 슬픔과 만나고 있을 때에도 우리를 둘러싼 반인간적 세계 구조는 오히려 더 깊어지고 있었다. 피 튀기는 ‘저잣거리’로 돌아가야 되겠다고 내가 생각한 것은 그 때문이다.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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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동물원 다이어리 - 강아지

평점 :
절판


작년에 이어 올해도 구입합니다. 저처럼 일정 중심으로 정리하는데 최고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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