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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 - 김제동의 헌법 독후감
김제동 지음 / 나무의마음 / 2018년 9월
평점 :
지금껏 모르고 살았던 우리들의 상속 문서 ‘헌법’을 읽다
수험 공부를 하면서 처음 헌법을 접했다. 법적 지식이 없다시피 했을 때 가장 상위 법률인 만큼 헌법은 엄청난 두께를 자랑할 것 같았다. 그러나 130개 조항으로 이뤄진 헌법은 A4용지 몇 장 안에 들어가 있었다.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암기하지 않더라도 모든 조항을 어렴풋이나마 기억해두라고 했다. 그렇게 한 줄 한 줄 헌법 전문을 읽었고 이 나라에 일원이라는 소속감과 나를 지켜주는 법이 있다는 사실에 뿌듯함이 느껴졌다.
한동안 다시 잊혔던 헌법을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을 통해 다시 만났다. 그리고 저자가 헌법을 읽었던 것처럼 나를 위로 받는 느낌을 다시 받았다. 헌법을 따로 접하려고 하지 않는 이상 법률을 마주할 때는 없는 듯 하다. 그런 헌법을 책을 통해 만난다는 건 의미 있는 일 것이다.
헌법은 다른 법률에 비해 쉬운 언어로 정확히 내가 누려야 할 권리가 잘 압축 되어있다. 누구에게나 보장되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로 모든 법률이 헌법을 토대로 하고 있으므로 무엇보다 몇 번의 역사적인 사건에 맞춰 개정 절차가 있었고 자연스레 우리의 역사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런 헌법을 저자 김제동이 읽으면서 헌법의 조항마다 느끼는 감정, 그 조항이 어떻게 우리 삶의 영향을 끼치는지 쓴 에세이는 색다른 접근이었다.
p.34
“연예인 따위가 무슨 헌법을 이야기하느냐?”는 말은, 조선 시대에 양반들이 “니들이 문자를 알아서 뭐해?”라고 했던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법은 힘 있는 사람들, 돈 있는 사람들, 정치인들, 그리고 법률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말인데, 저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 모두의 헌법이니까요.
방송인이 헌법을 언급 하는 게 맞을까? 판사나 변호사처럼 법률 지식을 갖춘 사람이 아닌데 헌법에 대해 얘기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바로 헌법이기 때문에 말할 수 있다. 누구의 법률이 아니라 우리의 법률이고 나의 법률이기 때문이다. 법률 조항을 언급하면서 우리 삶에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 서술되어 있다. 딱딱할 것 같은 헌법이 이렇게 가까이 있었구나 느끼고 술술 읽어가는 페이지 속에서 자연스럽게 법 이해도 높여갈 수 있다.
p.356
알비 삭스 : 첫 번째로 말하고 싶은 것은, 일단 헌법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담대해질 것이며, 헌법도 그만큼 강력한 힘을 갖게 될 것입니다. (중략)
만약 변화가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줄 유산을 만드는 작업과 같습니다.
몇 조 몇 항의 헌법 조항을 당신 혼자 두지 않아 조항, 안녕히 계세요 조항, 빼빼로 조항 등 명칭을 붙여 좀 더 헌법에 친숙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헌법에 대해서 알아야하고 그것이 가지는 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6월 지방 선거가 있을 무렵 헌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불 붙었다. 모든 대통령 후보가 공약으로 헌법 개정을 내세웠지만 다시 정치적 전략에 따라 미뤄졌고 청와대는 먼저 헌법 개정안 초안을 만들어서 이슈화 시켰지만 결국 헌법 개정을 국민 투표로 붙이는데 실패했다. 80년대 후반 만들어진 헌법은 바뀐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하지만 과연 다시 논의를 붙여서 바뀔 수 있을까?
헌법을 개정해야 하는 필요성 유무와 정치적 접근을 떠나 헌법을 몰라도 우리가 왜 헌법을 알아야 하는지, 우리 삶에 얼마나 헌법이 가까이 있는지 느끼고 헌법이란 존재를 고민을 던져주는 좋은 에세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