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 (양장) 소설Y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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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속에 타인과 연대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숙명은 '타인의 시선'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나를 향해 쏟아지는 관심어린 평가들은 '나'라는 인간이 빚어지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타인의 시선 위에서 위태롭게 삶을 펼쳐가다가 종종 '나'는 진짜 '나'와 분리되곤 한다.

'넌 참 착한 아이구나' 거듭된 칭찬은 우리 안에 거부할 수 없는 도덕률을 만들어내곤 한다.
그리고 칭찬 세례 속에 강화된 우리의 태도는 '착한 아이'의 꼬리를 떼낼 수 없어 자기 부정의 길을 가도록 종용한다.
나의 말과 행동이 '착한 아이'의 범주에서 벗어나진 않았는지 사뭇 조심스럽다.
거부당할까 두려워 나의 욕망과 소망은 주머니 속에 꼭꼭 넣어두고 세상을 향해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짓는다.
주변에서 가끔 만나는 소위 '착한 아이 증후군(good boy syndrome)'을 가진 사람들(나를 포함하여)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길을 걸어 왔을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상황이 십대에게서 종종 빚어지고 있으며, 그것은 마치 육체가 영혼과 분리되는 것과 같은 심각한 일임을 우리에게 경고한다.
실제 교직에 종사하는 필자에게 '영혼이 가출한', '넋이 나간', '정신줄을 놓은' 학교 속 아이들을 보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른들이 제시하는 '성공 방정식'에 맞게 그들의 삶을 치열하게 소진하다가 결국 정신, 영혼, 넋... 그 무엇이든 놓쳐 버리고
껍데기만 남아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눈빛들.

실로 우리 사회의 학교에는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한수리'들과 자책하며 그저 순응하는 '은류'들로 그득하다.
실패를 허용하지 않고 아이들을 다그치는 사회, 공부 못하는 자식을 걱정어린 눈빛을 보내며 전전긍긍하는 부모가 일으킨 서글픈 전염병은 팬데믹이 되었고,
아이들은 서로 불안과 열패감을 주고 받으며 감염되어 간다.
1등급에서 미끌어진 우등생은 자신을 용서할 수 없고, 국영수로는 도무지 부모를 만족시킬 수 없는 아이들은 자신을 혐오한다.
1등부터 꼴찌까지 모두가 불만족에 허우적대는 학교에서 아이들은 영혼과 육체가 분리된 채 사회로 쏟아져 나간다.

두 아이의 영혼이 육체 속으로 돌아간 후 '선령'은 말한다.
"수리는 꽉 움켜쥔 것들을 하나둘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더 큰 것들을 품을 수 있는 여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류는 꽉 닫혀 있는 마음의 문을 열었습니다. 타인이 아닌 본인을 향해서 말이죠.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 불안해하지 마라.
싫다고 해도 되니, 두려워하지 마라. 결국 스스로가 가장 원했던 대답을 찾아냈습니다." (p.175)

작품 속 수리와 류는 영혼의 관점에서 육체를 객관화함으로써 스스로에게 되돌아갈 수 있었다.
우리 아이들도 작품 속 두 십대처럼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이 진지하게 진짜 '나'와 마주하여 그 속에 상처와 아픔을 어루만지며 그 속으로 걸어들어갈 자생할 수 있을까?

우리 어른들이 먼저 이 소설을 읽고 아이들에게 달려가 말해주어야 한다.
너희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너는 있는 모습 그대로 아름답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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