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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틀비 이야기
허먼 멜빌 지음, 이정문 옮김 / 문화사랑 / 1999년 6월
평점 :
절판
화자는 월스트리트에 사무실을 가지고 있는 변호사이다. 사무실에 필경사로 새로 들어온 '바틀비'라는 사나이는 사무실의 기존 인물이었던 칠면조나 다른 사람에 비해 성실하고 시끄럽거나 문제도 일으키지 않아 무척 맘에 들었지만 날이 갈수록 그는 이상해져만 간다. 자신이 처리해야 할 일에 대해서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 일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등의 말로 화자의 속을 뒤집어 놓는 것이다.
알고보니 그는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해오며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화자는 바틀비를 해고하지만 바틀비는 사무실에서 나가지고 않는다. 화자는 결국 바틀비를 폭력으로 내쫓기보다는 이사를 하게 되고, 바틀비는 그대로 사무실에 남는다. 건물에 새로 이사 온 주인은 바틀비를 경찰에 신고하고 바틀비는 결국 감옥에서 죽는다. 나중에 들은 바에 의하면 바틀비는 예전에 '배달불능 우편물과'의 말단서기로 근무하다 해고되었다는 것이다. '아아, 바틀비!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여!'
화자가 하고싶었던 말은 '아아, 바틀비를 포함한 모든 인간이라는 고독한 존재여!'가 아니었을까? '무저항의 저항만큼 성실한 인간을 화나게 만드는 것은 없다'라고 화자는 말하고 있다. 바틀비는 인간을 고독하게 만들고 소외시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일탈자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 고용자와 피고용자들은 누군가가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우리는 누군가가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그 일이 결국은 자신의 몫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불안해 한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의 탈주는 모두가 본능적으로 원하는 것은 아닐까.
사회적으로 안정적이고 높은 지위에 있는 화자 역시도 바틀비의 이런 '비정상적'인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일견 그를 부러워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안정적인' 사회를 위해 룰을 깨는 인물은 제거되어져야 하며, 사회가 rule destroyer를 직접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룰을 깨는 인물이 적응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바틀비는 그렇게 고독하게 사라져간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