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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지음, 신해경 외 옮김 / 아작 / 201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뒷표지에 페미니즘 SF, 라고 크게 적혀있다. 나야 망설이지 않고 질렀지만.
최근 인터넷이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여성들만 페미니즘 서적을 적극적으로 찾아 읽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할 때가 있다.
작품들에 대한 인상은 "체체파리의 비법"과 비슷한데, 여기 실린 작품들은 대체로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맛이 나는 듯.
희망에 찬 아기자기하고 씩씩한 모험, 지난하고 고통에 찬 저항, 끝까지 쥐고 가고자 하는 굳은 신념, 고아한 정신들이 그저 오래 기억되지 못할 숭고한 한 때로 스러져 가는 허무. 인간에 대한 조소, 비참, 절망. 그런 정서가 담긴 단편들이랄까. ㅎㅎㅎ
아주 매력적이다. 묘하게 공감하고, 묘하게 위안이 되는. 삶을 종종 비극적으로 보게 되곤 하는 입장이라면 상당히 매저틱하게 즐거울 것이라고 확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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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여자들-
"밤중에 나다니는 여자들은 미친 거지. 왜 밤에 나가서 봉변을 당하는거야."
..에 대한 직접적인 조롱이자 자기파괴적인 단편?ㅋㅋㅋㅋ웃는 게 웃는 게 아닌.
작가는 "그래. 밤에 다니는 미친 여자를 그려볼까." 그랬을까?
근데 미친 그녀가 바라보는 세계가 얼마나 평온하고 아름다운지 보면..
왜 밤에 두려움에 떨고 자기검열을 해야 하는지. 미치고 팔딱 뛸 것 같아 짐.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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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잃어버린 길을 따라 여기에 왔네-
강렬한 허무감. 아주 인상적이었음.
삽질들이 모이고 모이고 모여서 맞이하는 발견과 발전의 역사?를 시사할 수도 있겠고. 과학적인 것, 기계에 대한 맹적인 신뢰에 대한 조롱일 수도 있겠고.
아무튼 굉장한 단편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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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연기는 언제까지나 올라갔다-
윤회와 영겁의 고통..뭐 그런 게 생각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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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마지막 오후-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단편선을 두 개로 나누어 출간한 거라고 봤는데. 이 단편선-체체파리의 비법+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을 흐르는 정서를 보면. 작가가 인류를 이런 식으로 바라보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게.
인류가 생육하고 번성하고, 진화하는 일련의 과정-특히, 남성이라는 주류가 이루어가는 목적지향적, 번식지향적, 파괴지향적, 약육강식적인 역사를 일종의 동물종의 번성과 사멸의 번복으로 바라보는 듯한. 역겨움과 조소, 허무..랄까 진저리 같은 것들이 강하게 느껴지는 단편들이 여럿 있다. 아니..대체로 모든 단편에 담겨 있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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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깨어나 보니 나는 이 차가운 언덕에 있었네-
전 번역단편선 <체체파리의 비법> 중 "덧없는 존재감"과 비슷한 느낌.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