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 학력 붕괴 시대의 내 아이가 살아갈 힘 - 인생을 개척하는 강인함을 기르기 위한 인간주의 교육의 제시
텐게시로 지음, 장현주 옮김 / 오리진하우스 / 2016년 4월
평점 :
품절


증거가 분명한 전문적인 이론서라기보다. 저자의 경험과 개인적인 신념을 토대로 이런저런 이론들. 주로 몬테소리나 서덜렌드 학교 창립자인 닐, 슈타이너의 발도르프. 같은 것들을 여기저기서 끌어와서 얽어놓은 책에 가깝다. 저자 자체도 교육학자가 아니고. 다만 이 사람이 요즘 학부모들이 아이교육의 목표로 지향하는 엘리트에 고액연봉자이고, 대기업에서 천재들을 데리고 아이디어뱅크를 운용한 인물이기에 어느 정도 참고할만한 이야기를 하는구나..하고 받아들일만은 하다. 
전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공감하는 바다. 이제 지식을 주입하는 방식의 교육은 그만둘 시기가 되었는지도. 아이들은 단순히 문제풀이를 위한 교육. 공장처럼 돌아가는 사회의 훌륭한 부품으로 소모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기능과 지식을 주입받던 8, 90년대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방식으로는 애당초 관료나 화이트칼라 엘리트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성공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전처럼 이런 직종들의 안정성은 크게 짱에 떨어진지 오래다. 그리고 그 자리를 얻어내기 위해 경쟁하고 세세한 것들에 집착하면서 많은 이들이 신경증과 우울에 시달리고 살아갈 힘을 잃어버린다.
후반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들은 상당히 급진적인 데가 있다. 정부와 교사가 아예 아이들의 놀이에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실컷 하루종일 놀게 만들고. 놀면서 이런저런 감정들, 느낌들에 흠뻑 빠질 수 있도록 몰입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아이들이 무슨 일을 하고 무슨 감정을 경험하든 무조건적으로 수용하여야 한다는 말도 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제대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컴퓨터 공학자로서 인공지능개발에 뛰어든 경험을 예서 참 묘하게 뽑아내는데, 인간이 지능을 발달시키는 과정을 참고하려고 연구한 바에 따르면, 인간은 경험에 뭍혀두는 이런저런 정동(감정, 정서)을 기억의 책갈피처럼 삼아 기억과 지능를 축적하고 발달시켜간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며 자연속에서 신체활동을 하고. 푹 빠져 몰입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아이의 뇌를 제대로 성장하게 돕는 것일거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자기만의 주관을 확립한 아이가 콘크리트 벽 속에 갇혀 진득히 앉아 선생님 말 잘 듣는 아이보다 훨씬 살아갈 힘을 강하게 갖는 법이란 말을, 그렇게 하는 길 뿐이라는 양 참 단정적인 어투로 하고 있다. 일어 번역투가 이런건지. 사람이 원래 확신에 차 있는건지는 모르겠으나. 사람에 따라서는 선무당스럽다고 느낄 법도 하다. 어쩐지 심리상담 7년의 경험으로 심리학 비스무리한 책을 꾸준히 써 내는 소설가 김형경과 닮아 있는 듯도.
내가 평생 말 잘듣는 우등생으로 자라왔기 때문에. 내가 스스로 그 과정에서. 우등생으로 남는 과정에서나. 수능을 치는 과정에서나. 취업을 고려하는 과정에서나. 많이 다치고 유약해지고 망가진다고 느꼈던 적이 있기 때문에. 내 삶이 교육계와 걸쳐있지 않았더라면 내 아이를 저렇게 키워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도 같다. 그러나 공교육에 몸담고 있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저자가 말하는 구체적인 방식도 그렇지만. 아이의 성공에 대해 생각하는 주변의 시각과 무척 다르고. 어중간하게 학교 내에서 할 수 있는 성질의 교육방식도 아니다.

지금도...내 역량은 딸리는데 이걸 어찌할거나.
좀 더 공부해서 교육철학과 수업방향을 다잡고 싶다는 생각을 요즘 한다. 고집스럽지 않고 유연하되. 주축으로 삼는 방향은 확실했으면 한다. 그리고 그에 걸맞는 효율적인 방식을 좀 세세하게 배우고 싶다. 자꾸 반대방향으로 회귀하려 든다. 잘 모르기 때문이고 어중간하기 때문에.
정유진 선생님처럼 한 해의 커리큘럼을 명확하게 잡고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꼭 해보고 싶은 활동들을 일관되게 가져가면서. 교과서와 적당히 연계시켜내는 그런 안정적인 수업을 한 해동안 해나갈 수 있었으면 좋기도 하겠다. 발도르프 학교가 그런 방식이라지. 그 활동들이 좀 더 자연과 어우러지고. 아이들 주관이 깊게 반영되고. 그런 식이 된다면. 대자연과 함께 몰입하게 하라는 조금은 저자의 방향과 맞게 가려나. 
무조건적인 수용...이건 아들러의 방식과는 다른 프로이트쪽 접근이다. 저자의 말 중에 가장 수용하기 힘든 것이 이거다. 반사회적인 행동까지도 수용해주라고. 그런 과정에서 초자아가 파괴되고 초자아의 주문에 맞추기 위해 만든 사회적인 인격, 짜맞춘 가면같은 페르소나 따위가 필요없어지며 억압때문에 자라나던 내면의 몬스터가 쪼그라든다는 거다. 그러면 내면의 진정한 신을 찾을 수 있다나...아주 급진적인 어조지만. 결국은 생애초기에 나를 있는 그대로의 진정한 나 자신으로서 받아들여주는 든든한 어른이 있다는 안정감을 주란 얘기겠지. 싶다. 아들러는 응석은 받아들이지 말라고 하지만. 이런 큰 입장에서는 같다...여튼. 아이의 행동을 정해진 루틴에 맞춰 불가피하게 제한해야 하는 작금의 공립학교에서. 학부모들의 시선이 바뀌지 않았고 사회역시 반대로 작동하는 현재에. 이런 안정적인 어른으로서의 행동을 찾아가는 과정이 나는 상당히 혼란스럽다고 느낀다. 감정은 받아주되 행동은 고쳐주어라. 는 잘 작동하지 않는 것 같은데. 거기엔 미숙한 내 내면도 크게 작용하는 것 같고. 구체적인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유토리 교육의 실패요인으로 꼽는 교사의 역량 부족. 되게 찔린다. 하하하하하.
아이들의 자존감을 길러주고 싶다. 함께 즐거운 교실을 만들고 싶다. 스스로 바른 행동을 하게끔 하고 싶다. 등등. 꿈은 컸지만 중간기말에 초초해하며 진도빼기에 급급했던 때가 있었고. 부진한 아이들을 다그치고 싶지 않아서 모르면 그 전부분을 차근차근 공부하자며 남겨서 가르쳤지만 아이들 시선에 맞게 쉽게 체계적으로 가르쳐주는 것도 잘 못했고. 아이들이 믿고 따르고 싶을만큼 든든하고 흔들림없는 안정적인 멘탈을 갖고 있지도 못해서. 끝까지 내가 지향하는 가치에 대해 일관된 방식으로 밀고 나가지도 못해서.
학력면에서도. 생활지도 면에서도 어줍잖게 시도하다 와장창 실패했기 때문에 주변에 자신있게 명령과 지시와 다그침과 무시 없는 방식을 해 나가자고. 말을 못하고 있다. 그들의 눈에 나는 애들 못 휘어잡아 공부 제대로 못 시키고 버릇없이 만드는, 무책임한 교사인 것이다. 
역량을 키우고 싶다고. 배우고 싶다고. TET나 학급긍정훈육을 기웃거려보고 있는데 접근도 어렵고 생활과 괴리된 느낌만 든다. 
이런 류의 책을 읽는 것은 방향에 대한 확신은 보태주지만 정작 방식에 대한 막막함을 해소시켜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어쩌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필터에 걸러져 나오는 것들을 좇으면서 자기정당화를 열심히 하는 건지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