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이유
이고은 지음 / 잔(도서출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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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이유>는 거대한 사건이나 극적인 반전 대신, 삶을 오래 통과해온 사람만이 건져 올릴 수 있는 감정들을 조용히 들려준다. 아빠의 죽음, 엄마의 죽음, 그리고 반려견의 죽음까지. 작가는 삶의 깊은 상실 앞에서 무너지고 울부짖지만, 끝내 작은 꽃과 나무, 바람과 동물들에게서 다시 살아갈 이유를 만난다. 느린 걸음과 낮은 목소리로 이어지는 문장들은 마치 잔잔한 브이로그를 보는 듯 편안하게 스며든다.
작가와 나는 살아온 지역도 세대도 다르지만, 이상할 만 큼 간직한 기억들의 결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또한 글을 따라 읽다 보면 어느틈에 어린 시절 살던 동네나 시골 할머니댁에 도착하곤 했다. 오래전 기억들이 길어 올려졌다.

'사랑했던 것은 사라지지 않고, 계절처럼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 것 같다.' (p38) 이 문장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마음처럼 느껴졌다. 소중했던 사람과 기억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계절의 향기나 오래된 풍경처럼 어느 날 문득 삶 속으로 돌아온다. 작가는 숲의 파도 소리, 풀의 모양새, 아카시아 향기 같은 사소한 풍경들을 통해 삶에 대한 감사를 천천히 되새긴다.

특히 '아름다운 것들만 배 깊숙이 간직하고 나머지는 흘려보낸다. 무거워진 나의 배가 버티지 못하고 침몰하지 않도록' (p66)이라는 문장은 오래 남았다. 살아간다는 건 결국 기억을 모두 붙잡는 일이 아니라, 견딜 수 있을 만큼만 품고 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위태롭던 작가의 삶은 '어둠이 밀려오는 바다 위에서 내일을 기다리고 있는 배한 척'(p132)처럼 읽혔다. 오징어잡이배 불빛을 바라보며 '어둠 속에서도 누군가는 생을 지탱하기 위해 치열하게 빛을 내고 있다는 증거였다'(p134)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삶을 버텨내는 사람들에 대한 조용한 애정이 전해졌다.

계절의 이유는 거창한 위로나 정답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모두 이 삶이라는 바다 위를 함께 건너가는 존재라고, 그리고 사랑했던 것들은 결국 다른 계절의 얼굴로 다시 돌아온다고 잔잔히 이야기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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