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마침내 같은 문장에서 만난다 - 일상에 깃든 시적인 순간
강윤미 지음 / 정미소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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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침내 같은 문장에서 만난다'라는 문장과 책 표지의 어린 왕자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어린 왕자>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네가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질거야"라는 문장을 좋아할거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렇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마침내 만나게 되는 문장과 어린 왕자 그림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 고장으로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된 어린 왕자지만, 어린 왕자는 평소 생각하지 못하는 감정과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해주는 존재였다. 모자를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으로 보고, 구멍 뚫린 상자에서 양을 발견하는 어린 왕자는 그냥 지나치게 되는 사소하고 지루한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이 책의 부제인 '일상의 깃든 시적인 순간'처럼 이 책은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도 의미를 발견하고 소중함을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었다. 읽다가 이 책의 제목인 '우리는 마침내 같은 문장에서 만난다'라는 문장을 만나는 순간, 작가의 새로운 시선이 섬뜩했다. 또한, 육아로 인해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는 작가가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하고 아이들의 일상을 시적인 문장으로 빚어낸 마음이 같은 여성으로서 공감이 되고 또 고마웠다. 

겨울의 공기는 차가운데 눈을 쥐고 있는 겨울은 따스하다. 겨울의 촉각은 차가운데 겨울의 시각은 따스하다. 눈을 만지면 차가운데 눈이 모여 있는 나의 마을은 따스하다. - P25

누군가에게 내가 사랑하게 된 사람의 이야기를 해보지만 그들은 내가 사랑한 지점을 공감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래서 나 혼자 그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다. - P188

포도송이의 시간을 사랑한다. 보랏빛의 액체로 다시 태어난 연도를 기억하고 쑥쑥 자라나는 시간. 내가 글을 쓰지 못하는 동안 자라났을 포동송이 같은 아이들의 얼굴. 내가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을 때 나의 마음은 비로소 와인 잔에 담긴 와인처럼 아름답게 찰랑거리기 시작했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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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형과 이상향 - 시그림 아트북
강윤미 지음, 김정배 그림, 오은하 음악 / 나무와숲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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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형과 이상향이라는 제목이 끌렸다. 사람들은 이상형을 찾아 헤매고 이상형의 이상향같은 삶을 살려고 한다. 어쩌면 삶의 과정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제목이기도 한 <이상형과 이상향>이라는 시부터 읽어보았다. 이마에 대해 이야기하는 당신과 에릭 사티를 떠올리는 나. 산이 좋다고 말하는 당신과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말하려다가 마는 나. 어쩌면 우리의 이상형은 맞지 않고 어긋나고 간극이 늘 있다. 삶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잘 풀리지 않고 외롭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상형 같은 꿈과 이상향 같은 희망이 곁에 있길 바라기 때문에 버틸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영화와 음악과 시에 빠질 수 있는것도 같다. 이 책은 왼손 그림과 큐알코드로 들을 수 있는 피아노곡이 같이 있는 책인데, 어쩌면 작가는 우리가 사는 모든 순간이 음악 같고 그림 같고 시 같기를 희망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파이를 한 입 베어 물면서
노래가 되지 못한 노래를 부르고
당신이 되지 못한 당신의 가능성을 표절할 수도 있지 - P81

발가벗겨진 채 울어대는 사물이었던 날
유일한 안식이었던 탯줄이 잘린 날

나의 처음을 나는 알지 못하고
나의 감정을 내가 고르지 못하고 - P12

죽는 연기를 하다 죽은 배우는
죽은 배우일까
죽을 뻔한 배우일까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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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뒤의 외출 - 글마음조각가의 왼손 그림 시화집
김정배 지음 / 나무와숲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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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이면서, 영화 제목 같은 제목에 이끌려서 본 책. 더군다나 이 책은 왼손으로 그린 책이다. 왼손으로 그리는 사람의 심정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별 뒤의 외출하는 심정은 무엇일까. 이 책은 어떤 페이지, 어떤 그림, 어떤 글을 펼쳐도 새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뜬금 없고, 아름답고, 귀엽고, 애달프다. 마치 그림마다 그려져 있는 주사위처럼 어느 면이 나올까 궁금해진다. 어떤 감정과 어떤 생각이 나를 사로잡을까. 매번 읽을 때마다, 이상하게 다르다. 내가 속상할땐 속상한 면의 주사위가 열리고그리울때 그리움의 주사위가 열린다. 짧지만 강렬한 문장들과 서툴지만 진심으로 천천히 그렸을 왼손 그림이 만나 이별 뒤 외출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한다. 이별 뒤 외출하면 만나는 하늘과 바람은 어떨까. 궁금해진다. 

동백 피면 동백 보러 간다. 꽃 보러 간 사이 동백, 숨을 들었다 놓으면 내 마음에 비로소 동백 핀다. - P118

먼 산 바라본다. 보고 싶은 것만 보이는 하루. 그걸 빼고 다시 먼 산 본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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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꽃
김정배 지음, 김휘녕 그림 / KONG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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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 울리는 총소리와 사과꽃이 피는 절정의 순간을 대비한 첫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또한 자궁 속 같은 우물 안 공간이 아빠와의 교감의 공간으로 승화되는 장면은 슬프지만 아름답고, 고독하지만 사랑스럽습니다. 딸아이의 얼굴이 사과 같고, 사과 같던 일곱살 아이가 열일곱 살이 되는 과정이 아름답게 사과꽃처럼 피어나네요. 큐알코드로 공연 영상과 낭독 영상을 볼 수 있어서 아이들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아이들에겐 우주처럼 멀고 아득한 전쟁 이야기인데, 공연과 낭독이 있어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 나누며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김휘녕 작가의 그림이 시적인 문장들과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그림책이네요. 

내가 우물을 들여다보며 노는 동안 누구도 가르쳐 주지도 않은 울음을 혼자 가지고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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