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 창비세계문학 16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이한정 옮김 / 창비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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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를 읽는 동안 사로잡았던 것은 위악과 위선이 난무하는 내면을 가진 캐릭터가 아니라 이 치밀하고 완성도 높은 경주를 치를 작가의 필력, 숙련된 솜씨다. 

누군가 훔쳐볼 것을 알고 쓴 일기라는 형식으로 선수들이 경쟁하듯 써내려간 남편과 아내는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도덕적으로 무해한 가면을 쓰고, 그 아래서 숨가쁘게 타자의 욕망을 질투하고 욕망하며 세세한 디테일로 인해 변화될 가능성을 하나씩 밝히며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해석하길 즐기며 그 해석의 여지가 맞았음을 확인하는 순간 욕망의 최고조에 다다른다. 둘은 자기 욕망에 다다르기 위한 장치들을 최대한 어렵지만 치밀하게 그리고 모호하지만 확실한 작동방법을 숙지하고 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일종의 <욕망-기계>들의 각축장-난투장을 만들었다. 

이꾸꼬와 토시꼬는 키무라와 마찬가지로 성욕을 향해 돌진하는 기계(혹은 주변 기계)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라는 영화 제목이 있다면, 여자는 남자의 죽음이다, 남자의 지옥이다 라고 해도 무방하다. 여자를 이길 수는 없다 라고 이미 통달한 작가는 나이 70에 이런 거대한 음험함을 통해 자기 내면을 파악하고자 한다. 이 얼마나 자기파괴적이며 자학적인 깨달음인가? 


막판 이꾸꼬의 자기 변명 내지 자기 합리화로서의 말끔한 솜씨는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다. 

죽음은 암시되지만 욕망의 크기를 배가시키고, 탈선의 반복은 현실적인 그림자를 모조리 희석시켜 캐릭터의 실존을 제대로 확인할수 없지만 음침한 각축장, 자칫 유치하게 끝나고말 우스꽝스러움을 공포의 감각에 밀어 붙였다는 점만은 인정하고 넘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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