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국내에서는 얼터너티브 만큼이나 수상한 포스트모더니즘 이라는 용어의 확산에 이바지 했던 토마스핀천 의 가장 대중적인(?) 접근이 용이한 제49호품목의경매 이제 국내에서도 <느리게배우는사람>이 출간되어 단편들을 통해서 핀천스러운 세계로의 접근이 다소 쉬워졌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핀천은 도전과 그에 상응하는 재미를 가져오는 조금은 어려운 작가에 속한다핀천 소설에서 이 모든 여정은 풍부한 서브 플롯에 의해 굳이 특정한 인물이 아니어도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처음과 끝이 없이 계속 존재했음을 끊임없이 암시한다. 사실과 허구의 뒤섞임이란 뻔한 포스트모던적 클리셰는 그 순간 의미를 잃는다. 핀천이 주인공들과 기타 이상한 발음으로 불리어지는 등장인물들에게 바라는 바도 그것이다. 순식간에 풍부한 의미망을 띄면서 결정된 해석으로 독자를 이끌어가지 않고, 그들이 과거에도 지금에도 수수께끼로 존재하게 만들는 불확정성은 알듯말듯한 단서를 흘리는 그 특유의 떨림으로 핀천의 세계를 둘러싼 특이한 자장속에 개성적인 구조물로 하나씩 자리잡는다. 이들 쉼없이 움직이며 불확정적인 입자와도 같은 등장인물이 있으면 그것들에서 의미라는 잔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맥스웰의 도깨비 같은 인물이 빠져선 안된다. 에디파 마스는 그 도깨비이자 어찌보면 트랜지스터 라디오의 복잡하고 정렬된 배선처럼, 또는 도시와 도시를 연결해주는 혈관같은 도로로 은유되는 미국이란 수수께끼의 세계에서 정보 획득을 위한 여행을 계속하는 활동적인 인자이다. 이런 단자적인 해석이 엔트로피 개념과 함께 핀천의 세계를 접근가능하게 만들어준 믿을만한 단서였지만, 이런건 차치하더라도 유머 기질이 농후한 핀천이 진지한듯 보여도 어떻게 웃음을 사냥하러 틈새를 노리는지를 예의주시하며 읽는것이 무한도전에서 급작스럽게 터지는 박명수의ㅡ흔들리는 눈빛만큼 느닷없는 재미를 줄것이다 핀천은 어려운 작가는 맞지만 쿠버만큼 한방을 노리거나 존 바스만큼 재미없는 작가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