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일기 - 삶과 죽음을 마주한 어느 저격수의 독백
오시이 마모루 지음, 목선희 옮김 / 접힘펼침(enfold)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실존적이고 사변적인 좀비에 대한 고찰, 소설이라고 하기엔 20프로 부족한 오시이 마모루 <좀비 일기>

다소 이상한 형식의 좀비물이 탄생했다.
오시이 마모루, 1990년대 후반 <공각기동대>라는 걸출한 애니메이션의 감독이며, 그후 극도의 사변적인 대사들로 점철된 <이노센스>라는 후속작을 연출했던 작가
국내에는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 라는 책이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에서 나왔다. 이 작품 역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듯하다

여튼 접힘펼침 이라는 역시 사변적인 출판사에서 번역된 <좀비일기>는
흔히 떠올리는 좀비 서바이벌 류의 전개방식과 같으면서도 다소 다르다

이 소설(?)에서 사건이란 별로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줄거리를 다소 부박하게나마 적어보면, `살아있지만 죽은자`들이 일상을 뒤덮고 있는 가운데, 이혼 경력이 있고 평소 사격이 취미였던 40대의 남자 혼자 `죽음` 에서 비껴나가 살아 남았고, 그는 세상에 편재하는 `죽음` 을 윤리적으로, 기술적으로, 자신의 일상으로 소급하여 받아들이고 죽음을 ˝견뎌내기 위해˝, 저격하기로 마음먹고 매일 정해진 하루의 일상의 행보를 성실히 이행해나가면서 끊임없이 `죽은자` 들 그러나 살아있는 것들의 존재에 대한 성찰을 계속해나간다.

사람들이 죽지 않는다
산 사람들이 죽음으로 이행해 간다

라는 좀비물의 필수적인 방아쇠를 저격묘사와는 다르게 다소 느슨하게 얼버무린 감이 있는데, 오시이 마모루는 그런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다만, 죽은 것들이지만 살아서 움직이는 인간의 형상과 마주해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법` 에 더욱 관심 있는 것 같다.

오시이 마모루의 사변은 거기에서 더 나아가서
인간이 인간에 대해 위해를 가하고 살인하고 죽이는 방법과 그 윤리, 그리고 살육 행위의 거리에 관한한, 현대사의 많은 사례들과 다른 저자의 저서에서 인용한 부분들을 적극 끌고 들어와, 그것이 살인을 감행하는 자에게 일으키는 심리적 변화와 추이들에 대해서 고찰하고자 한다. 다분히 미니멀한 형식을 세워놓고, 우리에게 죽은자에게 원샷원킬로 저격을 해야하는 한 인간의 머리속, 그 토론의 장에 들어가자고 우리를 밀어붙이는 것이다.

이상하게 설득력 있는 이야기이고, 죽음이 편재해서 가장 먼저 상처받고 무의미하게 되는 `윤리`의 붕괴, 모랄 헤저드에 대한 그의 사변을 따라가다보면 마치 우리가 여태 알고 있는 좀비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다들 초인같은 능력으로 그 시간을 견디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든다.

오시이 마모루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 같은 책은 #리차드매드슨 의 #나는전설이다 가 아닐까? 최후의 인간종이 남아 다음 세대에 자신을 전설로 각인시켜야하는 주인공이 최후의 순간이 임박했을 때, 오시이 마모루가 끄적였을 것 같은 이러한 사변들을 나열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떻게 보면 철학적인 나는 전설이다 같은 책이다.

하지만 별다른 사건이 없이 어떤 상태에 가만히 정지해있는 듯한 느낌은, 오시이 마모루의 성향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무라카미 류라면 여기서 훨씬 더 나갔을 것이다. 래디컬한 성향이 부족하고, 철학적 요소를 빼놓을 수 없는 어떤 작가의 한계가 보인다. 중반부 사변들의 홍수는 조금 참기 힘들다. 실존적 과 사변적 사이 어떤 언저리에 있는듯한 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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