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래니와 주이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샐린저 만큼 과장된, 과대평가된 작가가 있을까?
단지 문체가 집약적이고 위트넘치고 자학적인 우울함을 우스꽝스런 현세나 사물들로 극적인 배치를 통해 전달한다는 것 그런 몇가지 문체적 기교를 제외하고 과연 그가 의미있는 작품을 썼을까 그가 지독한 나르시시즘에 가득한 인물들의 무의미한 죽음과 에고와 기도에 관한 그리고 가족간의 비꼼과 무관심과 냉소로 점철된 대사를 쓴 거 말고 뭔가를 기여한게 있는가 있기는 한가 싶다

어처구니 없고 유약하며 무슨 극기주의자의 일종인 홀든 코필드는 그래 사춘기도 안된 애새끼니깐 그렇다고 쳐도 <파수꾼>따윈 가뿐히 넘기긴 해도, 그가 1950년대 전후 풍요로운 사회속 억압된 햇가족의 일대기를 글라스 가를 통해 단편적으로 하지만 꽤나 꼼꼼하게 살펴보려는 어떤 의도로 몇몇 단편과 중편을 써내려갔다는 데서만 어떤 비평적 판단이 그칠 뿐이다

그시절을 둘러싼 자본주의와 냉전이데올로기 그리고 그 안에서 자족적인 포만감을 느끼던 중산층 이상 부류들의 허위의식에 구역질 날수 있다 그래서 그렇다고 저 소품적이고 단편적인 대화와 지극히 작위적인 글라스 일가가 전형적인 1950년대를 넘어선 새로운 윤리상황이나 무슨 초인적인 전형을 보여주지 않는다

정말이지 어디서 주서들은 싸구려 오리엔탈리즘과 주술같은 미신이 합리주의를 대항하는 듯한 형색은 맞아들의 부재로 깊은 슬픔에 빠진 이 비관적인 가족사를 객관적인 상황 그대로도 옮기고 있지 않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래서 코찔찔이 홀덴 콜드필드의 순수한 아바타들의 연쇄에 불과하다 정신 연령이 어린것들이 애 어른 막론하고 줄담배를 피우면서 직업과 연기와 문화와 죽음 종교에 대해 질질 짜는 싸구려 드라마다

유일하게 유의미한 미덕은 샐린저가 숨은 목소리를 감추기 위해 픽션에 뭔가 대단한 겹을 입힌듯한 달달하고 새로운 코팅을 막대사탕에 입힌 듯한 새로 개발한것같은 형식 기법이다 그가 의도했던 가족 홈비디오 즉 주이 의 첫부분은 대단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유일무이한 개뻥이었음은 서서히 밝혀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