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로스의 29번째 장편 소설인 <울분>을 순식간에 읽었다. <모르핀을 맞고> 청년 마커스 매스너의 회상은 한국전쟁의 출발과 함께 시작한다. 1950년대 여전히 전쟁에 참전중인 미국, 뉴저지 뉴워크의 쿠셔 정육점을 꾸리는 유대인 가족의 삶, 가족에서 떠나고 싶은 건실하고 이성적인 청년, 그리고 사춘기 반항과 금욕적인 이성주의가 맞부닥치는 섹스와 여성의 수수께끼, 강력하지만 속내를 알기 힘든 욕망과 감정의 발산, 감정의 혼란과 지방 대학 사회의 풍속도를 따라 효과있는 서술과 아버지-어머니-학생과장 VS. 마커스 로 이어지는 거칠고 혹독한 진실이 담긴 문장들이 속사포처럼 이어진다. 필립 로스의 경험에서 되살리고 싶었던 이야기가 소재가 되었으리라 추측될 뿐, 이 한편의 내러티브는 형식과 내용 면에서 대가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은 부분이 없다고 해야겠다. 하지만 부조리한 운명에 내던져진 한 청년의 이야기라고 한정 짓기에는 다소 난삽하게 보이는 면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의식의 흐름에 주목하고 있지만, 로스가 겨냥하는 것은 기억 일반에 대한 애착일까? 노년에 다다른 작가의 눈에 비친 과거의 우스꽝스럽고 부조리한 역사의 일부일까? 그때 빼놓고 기술한 것이 못내 아쉬에 추가한 첨언일까? 여러 상념이 든다. 강력한 흡입력과 도저한 문제의식으로 계속 새롭게 문제의식을 반복하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소설가적 의지는 굉장히 매력적이다. 울분과 분노 격정과 피해의식 사랑의 빗나감과 가족의 굴레 어딘가 로스가 그려놓은 젊음은 방황을 하고 있다. 아직 지금 여기에서도 충분히 관측가능한 유령의 모습들, 소설의 어떤 존재 이유와도 맞닿아 있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