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말 토요일 밤의 세계문학 3
보리스 빅또로비치 싸빈꼬프 지음, 정보라 옮김 / 뿔(웅진)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보매, 창백한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 이름은 사망이니' 라고. 이 말이 한 걸음 내딛자, 그곳에는 풀이 시들고, 풀이 시든 곳, 거기에 생명이란 없다. 즉 법도 없는 곳이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법은 아니기 때문에... 그곳은 교수대, 그곳이 곧 법이니...

 
러시아 사회혁명당 소속의 테러리스트 사빈코프의 소설 [창백한 말]을 자신의 경험에 대한 낭만적 회고라고, 단지 한편의 긴박한 소설이라고 보기에는 결코 무시못할 무언가가 있는데, 그것은 곧 푸시킨과 레르몬또프의 전통을 계승한 낭만적이기 이를데 없는 주인공의 실존적 고뇌와 투명한 독백이다.

현실의 첨예한 갈등 지점에서 주인공은 언제나 불가피하게 신과 신의 대리자들과 맞닿아있다. 노쇠하기 이를대 없는 대공을 암살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역할을 분담, 한 명이 실패하면 나머지가 그 역할을 수행하고 그렇게 차례차례 죽음 앞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야하는 운명. 더이상의 신념도 더이상의 이념도 중요치 않다. 민중과 국가와 나와 그리고 모스크바 모두 손 끝에서 멀어져 간다. 그는 당위를 역설하고 다시한번 더 치밀한 계획을 검토하고 검토한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과 자신을 사랑하는 여인을 생각한다. 한번에 하나씩. 그가 생각해야할 것은 너무도 많고 너무도 적다. 그에겐 지금 이시간 작은 휴식과 짧은 정지의 순간만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것도 같지만 이런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짧은 순간의 정적이 가져다주는 여유를 그는 바란다. 결국 현실에서 활활 타올라 분쇄되는 무명의 요절한 테러리스트가 되지 못한 그는 소설 속에선 그런 주인공을 형상화시키는데 성공한 듯보인다. 어느 누구보다도 낭만적이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현실적인 동시에 분리되어 제각각 살아 움직이는 두개의 자아를 그는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기와 뜻을 같이했던 자들의 죽음을 댓가로 성취한 성공적인 암살. 하지만 그의 몫은 그 전보다 더 허무하기만한 암살 이후의 삶이고, 그는 끝까지 그 실패한(?) 삶의 기록자로 남게 된다. '살아라 그리고 기억하라'고 했던가. 이는 다른 이의 죽음을 기린다는 게 아니다. 그들의 추억을 다시 상기하는 순간 언제나 그가 발견한 것은 처음부터 고독한 자기 자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언제나 현실의 그가 있다. 죽지도 않고 썩지도 않은 채 여기 발 디디고 서 있는 현실의 그가 있다. 가까스로 교수대를 벗어난 그를 문득 현실이 가두고 만다.  
 
오래전에  <창백한 말>(B.V. 사빈코프, 운정,1992)을 읽고 쓴 글이다. 이후, "길"이라는 출판사에서 슬라브 문학선에 사빈코프의 필명인 '롭신'으로 <창백한 말>, <검은 말>이 출간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그것이 웅진에서 결국 나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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