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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사고 릿츠 숏츠 문학 1
이우 지음 / 릿츠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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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릿츠 #야생의사고 #이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생은 유한하다. 무한하지 않다는 속성은, 언제나 인류를 어떤 삶을 살 것인가의 고민으로 끌어 들였다. 고고인류학과를 갓 졸업한 나도 그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잔고가 바닥나기 전에 뭐라도 하긴 해야 한다는 강박과 함께, 갑자기 주어진 이 긴긴 시간이 낯설어 부딪히듯 헤매는 중이다.

이 책은 '야생의 사고'라는 제목답게, 고대 문명과 현대 문명이 교차되어 등장한다. 주인공은 현대화된 자본주의 사회의 정점을 경험하고 있는 매우 부유한 한국인이다. 그가 잠시 꿈처럼 대면한 악어족의 문화는 스쳐간 신기루이기만 할까? 환몽 서사처럼 가볍게 읽어내면서도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콜럼버스로 상징되는 서구 문명이 제국주의의 이름으로 착취하고 망쳐놓은 셀 수 없는 토착 문명들, 하루아침에 죽임을 당하고, 거주지에서 쫓겨나 삶을, 집단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떠올랐다. 이 책의 악어족도 유럽인과 미국인의 눈엔 미개한 종족으로 치부되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오늘날은 인류뿐 아니라, 동식물과 인간의 위계조차도 종차별주의라며 철폐하자는 세상이니 다행이라 할까.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같은 소설에서 저자는 묻는다. 우리는 어떤 가치로 생을 살고 있는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 확실한 건 우리가 산업화된 자본주의하에서 계층과 위신의 표상으로 귀하게 취급받는 재화들이 어떤 문명에서는 용도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전혀 쓸모없는 겉치레인 것이다. 소중함은 상대적이고, 영원하지도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각자의 고귀함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살아가야만 한다. 불신과 폭력을 제외하면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받아야 할 세계는 없다.

나는 자본화된 시대가 아닌 현재와 미래를 상상할 수 있을까? 확실히 어렵지만, 이 책은 그 실마리를 찾는 데 도움이 된다. 귀함과 천함, 유용함과 쓸모없음, 풍요와 빈곤이 돈의 액수로 판단되는 시대에서, 수치화된 증표가 모든 가치체계를 압도한 불합리함을 넘어서는 삶의 양식이, 탈자본의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인류는 수천 수만 년간 다양한 문명과 도시문화를 꽃피웠다. 수많은 멸절의 위기 속에서도 끝끝내 살아남았다. 전례 없는 기후위기와 빈부 격차, 대량 생산의 풍요와 기아의 모순, 핵개인화, 떠오르는 제국주의의 이기를 이겨내는, 이 모든 적폐와 이별할 대안을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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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은 없고요?
이주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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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정확히는 한 권을 완독했다. 한 백 만년만인가. 마지막으로 완독한 소설이 지난 겨울에 읽은 정세랑의 <보건교사 안은영> 아니면 백온유의 <유원>이니 말 다했다. 문학의 중요성은 말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쓸모를 강조하는 시대에 밀도 높은 정보의 가치만을 따지다 실용서에 우선순위를 내주기 일쑤였다.

드문드문 문학을 읽으며 느끼는 건, 문학만큼 인간의 희로애락과 일상의 면면을 다루는 장르가 없다는 것이었다. 문학은 다양한 인간의 군상을 묘사하고, 그들의 다른 삶을 적극적으로 내비친다. 문학이라는 렌즈는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이들의 일상을 주요 서사로 그려낸다. 저자는 이야기 속 주인공을 배척하지 않고, 같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적극 존중하고 환대한다. 고전부터 현대까지, 문학에 수용되고 기록된 인물들의 특성은 조금씩 넓어졌다. 다만 시대와 상관없이 인간의 사랑, 분노, 정열, 슬픔 따위의 욕망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이를 통해 개인의 이기심과 문제의식을 드러내며 세계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고유의 속성은 불변하다. 그것만으로 문학은 다른 장르보다 한 발 앞서 있다.

이주란 작가는 '모두 다른 아버지'라는 소설로 유명하다.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다. 다만 이번 신간인, 그간 발표한 단편을 엮은 '별일은 없고요?'를 읽으며 그만이 써낼 수 있는 이야기들을 찬찬히 살폈다. '별일은 없고요?'는 2019년부터 2022년까지 그가 문예지나 웹진 등 지면에 발표한 단편 8편이 수록된 소설집이다. 차례대로 '별일은 없고요?' '사람들은', '어른', '여름밤', '위해', '이 세상 사람', '서울의 저녁', '파주에 있는'이 실렸다. 긴 호흡을 요하지 않아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이들 단편 소설들은 주인공도 서사도 다르지만, 유사한 플롯을 가진다. 연작 소설이라고 봐도 될만큼 등장인물과 내용이 묘하게 이어진다. 특히 '별일은 없고요', '사람들은', '어른', '여름밤'은 등장인물을 변주한 한 편의 이야기로 느껴진다. 수연, 두 명의 은영, 엄마, 박경미, 경아가 거의 차례로 등장하여 서로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의 '따스함'과 '그리움'을 표출한다. 이때 그리움은 과도하게 표현되지 않는다. 있는 듯 없는 듯, 잔잔하게, 은은하게, 별 것 아닌 것처럼 주변화된다. 응축된 그리움은 '여름밤'에서 은영의 독백으로 폭발한다. 그러나 막상 그리워하는 대상이 돌아왔을 때 은영은 다시 건조해진다. 마음으로는 주체할 수 없음에도, 그 마음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지도, 살갑게 말하지도, 근황을 꼬치꼬치 물어보지도 않는다. 많은 말들이 축약되고, 들뜬 감정이 감춰진다. 그것은 '은영'이기에 가능하다. 존재만으로 본인의 그리움과 견뎌온 긴긴 시간의 부재를 이겨낼 수 있는 사람. 표현에 공백을 둠으로써, 사랑을 드러내는 사람. 언뜻 답답하고 껄쩍지근해 보이지만, 이것이 은영이, 아니 저자가 사람들과 궁극적으로 소통하는 방식임을 느꼈다. '어른'에서 나와 아주머니의 만남과 헤어짐도 마찬가지다. 뭘 하고 지냈는지, 어딜 갔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서로 구체적으로 묻지 않는다. 할 수 있는 말들을 삼킨다.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면서, 믿음은 단단해지고 애틋함은 태산이 된다.

그리움은 공간에 묻어 있기도 하다. 특히 이들 소설의 주인공은 과거에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살았을지언정 지금은 중소 도시나 농어촌에 살고 있다. 이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서울로 표방되는 대도시를 벗어났다. '별일은 없고요?'의 나는 사직서를 낸 뒤 서울에서 도망쳤다. '위해'의 수현은 대도시 입성에 실패한 세태로, 주변 반지하 주택에 머문다. '서울의 저녁'에 '나'도 서울에서 내려와 충북 진천에서 엄마와 만두가게를 운영한다. 그들에게 서울은 과거의 추억이나 아픈 기억이 지속적으로 환기되는 공간이자 떠나지 않고 남은 친구들을 보러 가는 곳이다. 서울에 거주했던 풋풋한 시절의 그리움과 쓰디쓴 기억으로 인한 상처가 상존하는 이중적인 공간인 것이다.

또한 이주란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한국 사회가 '욕망'하는 인간상과 거리가 멀다. 정확히 반대다. 우선 대도시에 살지 않는다. 중소 지방의 삶이 답답하다 여기면서도 이곳에서의 한적함과 여유를 잃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언제 잘려도 이상하지 않을 일자리로 생계를 유지한다. 결국 일상적으로 경제적 빈곤을 겪는다. 비닐하우스, 반지하나 원룸 등 불안정한 주거를 전전하고, 가까운 가족 또는 친구가 멀리 떠났거나 그들과 기약 없는 이별을 했다. 인간 관계가 활발하지 않다. 성장기에 아동 학대, 가스라이팅 등으로 불우한 시절을 보내 PTSD에 시달리고, 편부모 또는 조손 가정에서 자랐다.

저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너무 많아서 찾기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존재는 국회에서도, 언론에서도 조명되지 않는다. 마치 없는 사람처럼, 철저하게 '비가시화'되고 배제되었다. 한국 특유의 능력주의와 자기계발 담론이 '가난한 사람의 특징/흙수저 특'으로 규정하고 배척한 삶이기 때문이다. 이는 흔히 능력주의의 끝판왕에 있는 사람들의 삶,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입학해, 대기업에 취직하고, 서울 주요 도심에 아파트를 소유하며, 페라리나 벤츠 같은 비싼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인생'과 정확히 대치된다. 여기에는 이들을 목표로 표를 갈구하는 정치권과, 일부 계층만 정치적 주체로 호명하는 정치권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언론과, 상류층의 일상만을 컨텐츠 소재로 다루는 방송업계와, 최상류층의 구매력으로 트렌드 지표를 만들어내는 광고 및 마케팅업계도 얽혀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어딘가 부족하고 엉성한 취급을 받는 사람들을 이야기의 주체로 소환한 작가가 고맙다.

사회의 치부를 가감없이 드러내고, 그 치부로 고통받는 약자들의 삶을 가시화하며 문제의식을 표현하는 매체는 한국에서는 문학이 유일해졌다. 이런 문학을 심층적인 정보량과 쓸모를 이유로 등한시하던 지난날을 반성한다.

이주란의 소설적 장치는 더 있다. 매우 의도적으로 보이는데, 그는 대화를 큰따옴표로 쓰지 않고, 산문체로 기록한다. 이로써 대화와 글의 경계가 흐려진다. 어딘가 비어 있는, 조금 싱겁기도 한 짧고 굵은 담화는 한 편의 유려한 산문이 된다. 서사를 잇는 또다른 이야기가 된다. 대화가 소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 따옴표를 쓰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아니면 이야기를 대화의 총합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인간의 생에서 말하기가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던 걸까. 말하기를 독백의 연장선상으로 여기는 걸까. 어떤 의도든 새로운 시도는 무한한 상상을, 다양한 동력을 불러일으킨다. 보는 재미도 있고.

다른 이야기도 인상깊게 읽었지만, 특히 <서울의 저녁>을 흥미롭게 읽었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산문체가 가장 빛을 발하는 단편이라고 생각한다. 곱씹어볼 여지가 있는 의미 있는 담화가 많이 나오기도 한다. <서울>이라는 공간에 투영한 우월하지 않은 시선도 마음에 들었다. 가장 좋은 건 화자인 '나'의 세심한 관찰력과 좋은 기억력이다. 화자에게 서울은 재희와 보라와 함께한 기억이 여전히 생생한 도시다. 그러나 간만에 만나는 친구 보라를 예전의 기억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보라가 살고 있는 집으로 가는 길목마다 보라와 재희와의 추억을 자동으로 소환한다. 보라가 자신이 산 12만 원 컵을 자랑할 때, 하고 싶은 건 반드시 이루는 보라의 기질을 단번에 떠올린다. 슬픔과 우울을 잘 감추는 대신 기쁨을 숨기거나 삭이는 데는 약한 성격도 구체적인 에피소드와 함께 회상한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덧입힌 보라와 재희와의 청춘을 소설 내내 그대로 재현해낸다.


현재 보라가 홀로 사는 '초록 지붕 집'에서는 재희와 '화자', 보라가 셋이서 산 주택과 자주 간 단골 슈퍼가 보인다. 화자는 '보라'보다 이 사실을 먼저 환기시킨다. 보라의 집에 와서도 화자는 끊임없이 과거를 재생한다. 보라가 수건에 얼굴을 닦는 모습을 보고 과거 보라의 버릇부터, 누가 밥을 하고 머리카락을 치웠는지, 좋아하던 차와 커피의 취향을 기억해낸다. 나아가 보라와 재희의 자취방에 제 집 드나들듯 방문한 시절과 셋이서 같이 살기 시작한 때, 청년 주거 관련하여 티비에 출연했던 시절을 회상한다. '나'는 주기적으로 과거를 들추어낸다. 지우지 않은, 재희와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를 본다. '재희'와 '보라'를 빼고 20대를 설명할 수 없으므로. 그들에게 의지했기에 살아냈던 시절이 있었으므로.

재희가 없는 지금, 화자에겐 많은 것이 어색해졌다. 친하게 지내던 준영과의 관계는, 아물지 못한 기억과 3년의 세월이 겹쳐 어색해졌다. 둘의 사이가 나쁘진 않다. 다만 둘은 서로에게 미안한 존재가 되어,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꺼내 거리를 좁혀 나갈지 좀체 감을 잡지 못한다. 이들에게 재희는 여전히 살아 있다. 그를 정식으로 보내주지 못했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우리는 제사가 아닌 방식으로, 마음으로, '애도'하고 '추모'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으니까.

그래서인지 재희를 위한 제사를 지내는 이야기는 참 감동적이었다. 제사를 지내보지 않은 보라와 '내'가 준비하는 제의는 어설프다. 그러나 주방 일에 서툰 두 친구가 직접 전을 부치고, 산적을 만들고, 소고깃국을 끓이고, 나물을 버무려내는 정성은 그 어느 제삿상과도 비교가 불가능하다. 형식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하니까. 이들의 상차림은 재희를 향한 사랑과 그리움이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분명히 암시한다. 재희를 모르는 친구들까지 당사자를 진심으로 추모하려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사랑은 실과 같아서, 누가 끊지 않으면 이어지는 거라고.' 어느 책에서 본 대사가 자꾸만 맴돌았다.


세상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서울의 저녁>에는 재희의 죽음이 그렇다. 다행히 어느 누구도 재희를 책망하지 않는다. 왜 나를 두고 가버려야 했냐고 따지지 않는다. 그 이유를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나올 수 있는 모든 물음표를 금기처럼 넣어둔다. 그저 재희가 안치된 공간을 계절마다 방문하며 안부를 묻고, 같은 모습으로 있는 그를 넌지시 그리워한다.

돌아오지 않을 말임을 알지만, 그렇게라도 내뱉지 않으면 화자는 알 리 없는 물음에 갇혀 스스로를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간만에 밀도가 넘치지 않은, 사이 사이 여백이 있는 이야기를 읽었다. 일상 곳곳에 스며든 따스함과 희망을 세심하게 포착할 줄 아는 이들만이 쓸 수 있는 글이 매우 반갑다. 죽음, 귀향, 폭력, 환대, 그리움 등 쉽지 않은 주제들을 명확하되 지나치게 무겁거나 자극적이지 않게 쓴 이야기를 필요로 했다. 이 책의 글이 다 그랬다. 천천히 속이 뜨끈해지는 잘 우린 곰탕 같았다. 오은 시인이 추천사를 쓸 정도면 증명됐다고 생각한다. 나를 살게 하는 지점은 어떤 것인지,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사소한' 디테일을 찾아보며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을 기재하며 마쳐본다.

소녀는 자라서 아줌마가 되었다.
할머니가 아니라 아줌마라고 쓰여 있어 처음에 누구의 이야기인가 싶었지만 모두의 이야기라도 괜찮을 말이었다. - P98

서울 다시 안 와?
올 수도 있을 것 같아.
근데 있잖아.
응.
보고 싶었어.
진심이었고 웃길 바랐는데 보라는 울었다. 평소 거의 울지 않는 보라, 나는 보라가 운 김에 더 울라는 의미로 봉투를 내밀었다. - P234

재희야,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재희에게 물은 다음에 대답을 조금 기다렸다. 나는 다시 재희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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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한 중국은 왜 성장하는가 - 부패의 역설이 완성한 중국의 도금 시대
위엔위엔 앙 지음, 양영빈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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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나에게 어떤 국가인가. 메이드 인 '차이나' 이상의 중국을, 특히나 정치사회적으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드물었다. 한반도가 한 나라였던 때, 특히 일제강점기 시기에는 만주와 충칭이 한국 독립운동의 거점이었기에 그때 역사는 얼추 배운 적이 있다. 한국이 독립되고, 혼란한 틈을 타 중국 본토에서도 공산당과 국민당이 각 500만 군사와 치열하게 싸웠다. 중국 대륙 전체를 전쟁터로 물들인 국공내전은 마오쩌둥이 이끄는 공산당군이 장제스가 이끄는 국만당군을 수세에 몰아 쫓아내는 것으로 끝난다. 1949년 마침내 마오쩌둥이 이끄는 '하나'의 중화인민공화국(중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은 본토에서 망명하여 1950년 타이완을 세운다. 이 뒤부터 나의 중국 역사 지식은 파편화 되어 있다.

토지 개혁, 대약진 운동, 문화 대혁명, 시장경제체제 도입, 천안문 사태. 그리고 1992년 한국과의 공식 수교.

교과서에 단 몇 줄 적힌 그것이 중국 역사랍시고 알고 있는 전부였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처음 받고 펼쳤을 때의 막막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아직도 어렵고, 생소하다.

표면적으로는 중국에서 만연한 정실주의와 관료들의 부패, 고도 성장기 산업계와 결탁한 정계 로비의 실체를 고발하고, 이를 타파하기 위한 주석(특히 시진핑의 반부패 운동 중심)의 개혁을 다룬다. 그래서 현대 중국의 발전기를 보는 듯하다.

그러나 잘못 읽으면 '왜곡된 행정과 특정 관료만 혜택을 얻는 혼란한 정치가 나라의 발전을 견인한다'로 보인다. 독재 정치를 합리화하는 잘못된 근거로 인허가료의 부패를 제시할 수 있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이해했다.

그렇다면 부패는 나라를 병들게 하고, 경제가 쇠퇴하는 원인이 될까? 반대로 나라를 성장하게 하는 지름길일까?

우리의 통념상으로 부패한 나라는 가난하다. 2016년 기준 국가 간 회귀 분석을 보면, 부패와 빈곤 사이 상관관계가 성립한다. 다만 중국은 아니다. 부패 지수는 2012년 국제투명성기구에서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CPI)에 따르면, 중국은 100점 만점 39점이다. 이 점수대에는 엘살바도르, 말라위, 자메이카, 스리랑카 등 디폴트 직전인 빈곤한 나라들이 있다. 다만 중국은 이들 나라와 달리 훨씬 더 발전했다. 애플의 아이폰을 생산하는 폭스콘, 틱톡 본사 바이트댄스, 타오바오를 운영하는 알리바바, 중국판 구글 바이두, 디지털 기기 제조사 샤오미, 화웨이 등이 있다. 현재 중국은 첨단 IT부터 플랫폼, 소비재 산업까지 총망라하는 굴지의 대기업을 수십 수백 개 보유하고 있다. 미국이 견제하고 방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중국은 부패했음에도 세계가 인정하는 경제 대국이 되었는가? 저자는 그 '왜'를 연구하는 세계적인 중국 정치경제 연구자이자 정치학 교수다. 기존 중국 부정부패를 연구한 학자보다 과학적이고 독창적이라 평가받는다. 이 책은 그 '왜'를 중국의 정치경제 현대사와 통계를 면밀히 살피고 풀어낸다.

저자는 부패에도 유형이 있다고 말한다. 특정 국가에서 '어떤 부패'가 지배적인가에 따라 발전 속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즉 '부패라고 다 같은 부패'가 아니다. (1) 권력의 높고 낮음(고위직-장,차관 등- VS 일반직-9,8급 같은-) 과 (2) 교환의 유무(뇌물처럼 특정 이익을 담보로 상호 합의 VS 횡령, 갈취 등 일방적 점유)에 따라 네가지 유형 - 1. 바늘도둑 2. 소도둑 3. 급행료 4. 인허가료 - 으로 구분한다. 이 재밌는 용어들을 이해할 수 있게 실제 사례를 들어 정의를 설명한다.


바늘도둑은 일선 공무원이 부당한 대가를 요구하거나 갈취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책에서는 태국 경찰이 담배 꽁초를 길에 버리는 관광객에게 여권을 뺏지 않는 대가로 돈(60달러)을 요구한 사례가 제시되었다. 좀도둑처럼 적은 금액을 빼먹는 거라고 보면 되겠다. 삥 뜯는다는 표현이 맞을려나.

소도둑은 정치 엘리트/국가 고위 공무원이 공공 자원/자금을 횡령하거나 유용한 유형을 뜻한다. 나이지리아의 군부 독재자가 대규모 자금을 해외 본인 계좌에 빼돌린 사례를 제시한다.

급행료는 쉽게 말하면 뇌물이다. 특히 신속한 행정 처리를 원하는 자영업자, 처벌을 원치 않는 범법자 등이 담당자에게 이권을 보장받기 위해 관례처럼 제공한다. 예시로 인도에서 소매점을 운영하려면 통과해야 하는 거추장스러운 40개의 절차를 빠르게 끝내려 담당 공무원에게 뇌물을 지급하는 사례를 든다.

인허가료는 정치 엘리트/국가 고위 공무원이 특정 기업이나 사람에 독점적으로 특혜를 제공하는 대가로 받는 뇌물이다. 급행료와는 다르다. 뇌물이 절차상의 '시간 단축'이나 '이번만 봐드립니다'처럼 약한 불법을 용인하는 것이 아니다.

특정인/기업은 막대한 인허가료를 지급하며 '고수익을 창출하는 특권'을 독점적으로 부여받는다. 중국 양저우시의 전임 서기 지젠예가 친분이 두터웠던 기업에 정부 주도 건설과 재건축 프로젝트를 몰아준 대가로 회사 주식, 사적 선물, 콘도 이용권 등의 인센티브를 얻었다. 즉, 고위 공직자와 그들의 허가가 필요한 이해관계자의 은밀한 선물이다.

중국은 인허가료 형태의 부패가 만연하다. 저자의 통찰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인허가료는 바늘도둑과 소도둑만큼 국가를 무법지대로 만들지도, 그림자 경제를 발전시키지도 않는다. 인허가료는 '자본주의의 스테로이드'다. 스테로이드는 항염증과 면역 억제를 목적으로 투여하는데, 효능이 강한 만큼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효과를 직접 체험한 사람들은, 부작용을 감수하고서도 스테로이드를 찾는다. 중국 기업가들은 당의 고위 간부와 인맥을 쌓기 위해 로비를 한다. 그 이때 뇌물은 미래를 바라보는 투자다. 그 보상으로 기업가의 편에 서 해당 기업의 성장을 지원하거나 이해관계를 옹호하고, 미연의 의혹이나 논란을 불식시킨다. 뇌물의 크기가 커질수록, 돌아올 혜택도 더 많아진다. 결국 CEO 입장에서 인허가료는 기업의 민간 투자를 활성화하고, 종국에는 국가의 GDP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석이조의 수익률이 좋은 투자처다.

다만 저자는 인허가료의 위험성을 누누이 강조한다. 한정된 자원을 특정 이익집단이 독점함으로써 자원의 공평한 배분을 막고, 이로써 사회, 경제의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은행 대출은 정치권에 적극적으로 로비한 기업에게 우선적으로 주어진다. 이들 기업들은 조달한 자금으로 주요 부동산에 투자하거나 공급함으로써 추가 수익을 얻는다. '정치 공작'에 참여하지 않은 기업들은 합법적인 자금 융통 수단이 마땅치 않아, '그림자 통로'를 이용해 고금리의 대출을 받는다. 제도권 밖의 사금융과 공인되지 않은 기관의 불법 대출은 공식 통계에 잘 잡히지 않는다. 규모를 추산하기 어려운 음지에서의 대출이 과도하게 모여,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만들어냈다.

중국은 부패가 여전한 국가지만, 공적 자금을 횡령하거나 착복하는 1차원적인 '도둑질' 부패는 감소하는 추세다. '급행료' 유형의 부패도 보편적이지 않다. 이는 1998년 주룽지 총리가 야심차게 실시한 개혁의 결과이다. 세금 납부 방식을 현금에서 디지털로 전환하고, 공공 은행 계좌 일원화하며, 공무원법을 제정하고, (지역별 다른) 세율을 표준화했다. 또한 1997년 부패의 범위를 정의하는 중국 형사법을 개정했다. 기존 법률에서는 부패를 횡령, 뇌물, 근무 태만 등 '도둑질' 유형에 한정시켰다. 바뀐 법률은 좁은 부패의 개념을 7개 유형으로 확장했다. 7개의 범주에 포괄되지 않는 부패는 다소 추상적인 유형에 포함시켜 처벌했다. 이러한 개혁은 당시에는 언론과 학계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행정 조치는 국가의 부패 감시 권한과 기능을 강화하고, 예산 집행의 투명성을 높이며, 하급 공무원에게도 적절한 인센티브를 지급하여, 실질적으로 부패가 감소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반면 '인허가료' 유형의 부패는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이는 부패가 질적으로 변화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경제적 보상과 정치적 입지, 사회적 위신과 같이 당사자 간 큰 '이권'을 수반하는 뇌물 거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5만 위안 이상(한화 약 1000만원) 높은 가치의 뇌물의 거래량이 그 이하 뇌물의 거래량보다 훨씬 늘어났다. 인허가료 부패는 순수하게 현금 자산 거래만 포함하지 않는다. 고급 리조트 무제한 숙박, 높은 가치를 지닌 예술품 등 적절한 가격 측정이 어렵거나 통계에 바로 잡히지 않아 추적하기 어려운 비현금성 서비스, 일명 '고상한 뇌물'을 포함한다. 현재 발전 정도, 잠재 개발 가능성 등에 따라 기업들의 시행 사업과 투자 규모가 천차만별로 달라지기에, '부가적 보상'은 지역별 편차가 크다.

저자는 이 '엘리트' 계층의 '인허가료' 부패에 집중한다. 특히 이러한 부패를 용인하는 중국'만'의 수직적 관료제와 자급자족 생존과 치열한 경쟁을 유도하는 '이익 공유'의 행정, 공산당 독재 정치 권력과 국가 통제 시스템에 관해 상세히 설명한다. 나아가 2012년 시진핑 집권기에 시작된 반부패 운동의 진행 과정을 면면이 들여다보고, 분명한 성과와 한계를 지적한다. 시진핑의 강경하고 엄격한 결단은 조직의 전 구성원에게 적용되었다. 이제까지 150만의 관료가 문책을 당했고, 장차관을 비롯한 유명 고위급 인사들도 혐의가 밝혀지면 무거운 처벌을 피해갈 수 없었다. 지방 부흥을 이끌어낸 유능한 정치가인 보시라이와 지젠예의 몰락이 대표적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쉽지 않은 개혁이 이뤄질 수 있었던 건, 폐쇄적인 정치체제와 시 주석의 '불도저'같은 추진력이 합쳐져 가능했다.

그러나 강도 높은 감찰과 수사는 특정 인물이나 기업에 경제 의존도가 높은 지방의 성장을 약화시켰다. 지방 고위 관료들은 재임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자주 교체됐다. 지역 성장을 명분으로 기업들에 적극적인 투자 유치나 약속을 받아낸 공직자의 유능함은 인허가료와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현장에 남은 관료들은 연루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위험을 회피하고자 '복지부동'의 태도를 갖고 업무에 임한다. 직원들의 의욕과 사기가 떨어지면, 업무의 효율이 낮아져 지역의 경쟁력이 하락한다. 고위공직자와 깊은 관계를 맺어온 자본가도 안정된 사업만 수주하려는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고, 리스크가 있는 투자는 망설이거나 철회한다. 기업가의 신규 투자 수요가 낮아지고, 이로 인해 토목, 건설, 각종 서비스 인프라 사업이 지연된다. 투자 자금으로 쓰일 금액은 차명 계좌 등으로 해외에 유출된다. 정치경제적 연줄이 끊어지며, 즉 '반부패'함으로써 되려 발전 동력을 잃은 지역은 결국 침체한다. 책에 등장하듯, 과거의 충칭처럼, 경제성이 낮고 인프라가 열악한 지역의 성장을 견인하기 어려워진다.

게다가 시진핑의 상명하복 규제는 국가가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체제에서는 독이 된다. 사실 윗 문제는 문제를 바로잡으며 감당해야 하는 진통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 부패한 관료를 적발하는 동시에, 남은 관료에게 정권을 향한 일방적인 복종과 충성을 요구한다. 즉 시진핑의 반부패 운동은 정실주의, 파벌주의 등 올바르지 않은 관료제의 폐단을 시정하는 것을 넘어, 정부에 '비협조적'이거나 '반정치적'인 모든 움직임을 제한하고 통제하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sns를 검열하고, 언론을 탄압하며, 규제를 명목으로 숙적이나 라이벌을 제거하는 행태는 정치적 상상력과 다양성을 해치고 정부, 즉 상명하달의 '중앙화된 권력'을 강화한다.

나아가 CPI 통계에서 중국만큼 부패한 개발도상국/저개발국의 사례와 그들 국가가 행정 개혁에 실패하는 이유, 나라별 다른 부패 해결 방식의 접근, 중국처럼 유례없는 성장 가도를 달렸던 미국의 발전기와 반부패 역사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_ 비단 이런 이야기가 중국에 한정되진 않을 것이다. 미국에서 오래 공부한 저자는 중국의 근현대 발전사를 미국의 도금 시대와 비교한다. 도금 시대를 잘 모르는 나는 작금의 한국이 중국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본다. 정치계와 산업계의 결탁, 고착화된 파벌주의와 정실주의는 근현대에 계속 있었지만, 지속해서 감소 추세를 보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정권은 청렴과 공정을 규정하는 법률을 대놓고 무시하며, 대대적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대통령실 리모델링 공사나 되는 큰 프로젝트를 신생 업체와 수의 계약을 맺은 것부터 시작해서, 각 부처 장차관급 인사에 검사 출신 인물만 꽂아넣는 '공개적이고 대대적인 인허가료' 부패는 행정부의 주도하에 아주 활발히 진행 중이다. 취임 1년이 지난 지금, 20여 기관의 요직에 70여명의 검사 출신 인사가 대거 포진해 있다.

최근에는 경북독립운동기념관장을 전직 검사로 꽂았다고 한다. 아직 그의 실명이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소수의 언론 보도를 보면, 검찰 출신의 현 동국대 교수 H씨라고 한다.

독립운동기념관장은 이제껏 독립운동을 연구해온 권위있는 사학자나 유공자 후손, 관련 단체 출신 인사가 맡아왔다. 그런데 대검철창 검찰연구원을 지낸 검사 출신 법대 교수를 임명한다고? 그 사람은 경북독립운동기념관이 있는 안동시를 온 적은 있을까? 하물며 안동시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성지임을 알고는 있을까? 사실 앎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순리처럼 일어나고 받아들여지는 사실이 중요하다.

독립운동과는 어떤 연고나 상관관계도 없는 검사 출신을 그것도 독립운동 성지에 있는 '독립기념관'의 원장으로 제안한 추천위원회의 발상도, 이 안을 의결한 이사회도, 그를 공식 임명한 경북도지사도, 하물며 그 자리를 받아들인다는 가정하에 H 교수 당사자의 의중까지 말이 안 된다는 건 알겠다.

일제강점기, 아니 일제'학살'기를 지나 광복을 맞이한 지 아직 백 년도 되지 않았다. 불과 할머니, 할아버지 혹은 그들의 부모님 뻘 정도 되는 이들이 살아온 시기였다. 그들이 견뎌낸 비극적이고 참혹한 역사에 대해 가해국 일본은 공식적이고 진심어린 유감을 표명한 적도, 사과를 한 적도 없다.

1965년도 오히라-김종필의 한일 회담, 2015년 위안부 합의는 결코 일본이 과거사를 반성한다고 볼 수 없다. 고초를 겪은 당사자들과 유가족을 직접 만나지도, 서면으로도 용서를 구하지 않았는데, 그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일제강점의 역사를 '미래지향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느니 '지나간 일'로 인식해야 한다느니 하는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카메라만 보고 줄줄 읽는 담화가, 이익에 눈먼 정치인들과의 비공개 만남이, 그들만 즐거운 하하호호 티타임이 어떻게 진정한 사과란 말인가? 어려서부터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을 받은 시민이라면, 독립운동기념관장은 수십수백 독립운동가와 민초들의 열망과 피땀 어린 한이 서린 중요한 직위임을 안다. 알아야 한다. 그런데 그 자리가 어느 정부보다 일본에 굽신거리고 극우적인 행보를 보이는 대통령의 기반인 '검찰' 인사에게 '주어지는 사은품'으로 전락한다면? 권력이 주는 우아함이나 직위가 주는 책임감 따위의 고고하고 성스러운 가치는 일순간에 훼손되어 본래의 성질을 잃어버린다.

_ 부패는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이다. 앞으로 우리는 사회에 만연할 부패를 잊지 않고 똑똑히 보고 기록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부패의 희생되고, 고통스러워하는 짐스러운 현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세 사기, 전근대적인 주69시간제, 파업권 불인정, 노조 탄압, 여성가족부 폐지, 과거사 부정, 1029 참사 부정 및 2차 가해..

사실 나조차도 요즘 시국이 괴로워 거리두기를 하고 있지만, 마냥 현실을 등한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언제 낭떠러지에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삶의 위태로움을 더 이상 겪고 싶을 뿐이다. 지독한 현실 속에서 내가 소진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지키고 싶다. 정치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나라도 달라져야 한다. 그것이 이 땅에서 곰팡내 나는 정치로 스러져 간 사람들에게, 우리를 잊지 말아달라고 외치는 생존자에게 내보일 수 있는 의지다. 웅덩이에 고여 있는 흙탕물로만 남지 않겠다는 나름의 선언이기도 하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유명한 격언을 떠올린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2023년에도 유효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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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쓰다가 - 기후환경 기자의 기쁨과 슬픔
최우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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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날씨도, 자연도, 인간도. 이중 가장 대체 불가능할 만큼 잔혹하고 폭력적인 존재는 단연 인간이다. 윤택한 삶을 위한 끝없는 욕구와 이기심 때문에 이상기후가 발생했고, 자연과 생물 다양성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었다.


말도 안 되는 짓을 시시각각 벌여대는 80억의 인구를 너그러이 품는 지구가 몸살을 앓고 미쳐가는 것은 당연하다.

디스토피아 문학에서나 볼 법한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는 어느덧 하나의 명제가 됐다. 누군가 극단적이라 손가락질하던 물음은 언제고 도래할 수 있는 미래로 변모했다. 그레타 툰베리 등 용감한 z세대를 중심으로 환경 운동이 널리 퍼졌고, 덕분에 그들을 손가락질하는 작자도 기후 위기의 심각성은 알아 버렸다. 탈플라스틱, 플로깅, 용기내 챌린지(다회용기 사용), 탄소중립실천포인트제 등은 각종 자원을 희생시켜 얻은 편리함을 다시 내어주는 과정이다. 기후 우울증의 시대에 무력감에 젖는 대신 과도하고 불필요한 껍데기를 하나씩 벗겨내기로 결심한 사람이 많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트위터와 인스타 같은 SNS에 꾸준히 업로드되는 친환경 컨텐츠는 널리 공유되어 일종의 'E'SG 유행을 만들어냈다. 특히 탈플라스틱과 플로깅의 인기는 꽤 뜨거워서 지자체에서도 관련 캠페인을 벌일 정도였다. 국가에서도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한 이상, 더 이상 환경 보호의 필요성과 당위는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물질 만능주의와 현대의 자본주의제는 인간에게 아낌없이 주는 비인간을 고려하지 않는다.

멸종위기종이나 천연기념물은 암암리에 이루어지는 밀매와 사냥으로 점차 우리에게 희귀한 존재로 남는다. 인간은 그런 동물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관리하고자 동물원의 명분을 내세운다. 그러나 동물원은 제한된 공간에 갇힌 동물 고유의 야생적 습속을 약화시키고, 동물을 철저히 인간의 유희를 위한 도구적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시멘트 바닥과 조잡한 식생으로 이뤄진 좁은 공간은 아동 키만한 철제 울타리에 막혀 있다. 굵다란 쇠창살 사이로 수많은 사람의 부담스러운 시선과 이목을 집중시켜 좋은 포즈를 유도하려는 몸짓을 정신없이 받아낸다. 울타리 바로 앞까지 와서 위험할지도 모르는 먹거리를 쥐어주는 사람을 어떻게든 반겨줘야 한다. 동물원이 이익 창출만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며 관람객 유치에 앞장설 때, 정작 관광 대상인 동물이 인간을 거부할 권리는 고려되지 않았다. 동물이 본연의 식생과 자연을 누리며 살 권리를 보장해주지 못한다. 식사는 특별식이 아닌 이상 인공 배합 사료만 무한정 배급된다. 밥을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두세평 남짓의 슬레이트 공간을 반복해서 돌아다닌다. 동물은 개체군 고유의 습성과 행동 양상을 영영 잃어버린다.


한동안 가지 않다 최근 동물원의 변화가 궁금해 방문했다. 내가 보았을 때 그곳은 여전히 동물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육체적으로 박제하고 정서적으로 학대했다. 좁은 아쿠아리움에 펭귄 열댓 마리를 가두는 공간도, 영업 시간 내내 인간의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시선에 노출되는 공간도 변하지 않았다.


지구는 뜨거워지고 기후 위기는 더욱 심화되었다. 지구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은 각기 다른 방향의 파국을 맞고 있다. 한쪽에서는 IT를 이용한 신기술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진다. 그 기술의 대다수는 인간을 눈먼 편리함에 노출시킨다. 다른 한 쪽에서는 갑작스러운 이상 기후와 자연 재해에 속수무책으로 죽는 사람이 있다. 동물도 다르지 않다. 어떤 동물은 뜬장에서, 방치된 사육장에서 구조되지만, 전염병과 인수감염병으로 살처분당하는 동물도 있다.


기술의 황금기와 생존이 위태로워진 시대라는 설명은 언뜻 이율배반적이라 양립할 수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비대칭적인 수식은 오늘날의 지구를 명확하게 관통하는 키워드다. 동시에 환경에 관한 논의는 배부른 부르주아의 담론에서 그치지 않고, 살아가는 모든 생물과 비생물에게 해당되는 보편적인 담론이라는 사실을 말하기도 한다. 특히 발언권이 부족한 비생물과 저개발국 국민일수록 기후재난에 취약하기에 다른 무엇보다 가장 시급한 논제이기도 하다. 몰디브와 사모아, 파푸아뉴기니, 피지, 투발루 등의 섬나라들이 왜 기후 재난 성명을 내며, 선진국의 강제적이고 효력있는 책임을 촉구하겠는가. 다만 이들의 목소리는 강대국의 힘겨루기와 선진국의 의제에 묻혀 빛을 보지 못한 채 스러지곤 한다.


지금의 지구는 언제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아 보인다. 어떤 때는 지구를 지키려는 일부의 노력도, 효과도 무익하게 보인다. 이러한 회의주의적이고 패배주의적 사고에 사로잡히면, 모든 일이 지구의 멸망으로 수렴하는 듯 보여 허망하다.


물론 내가 비관적일 때조차도 누군가는 탈플라스틱을 실현하고,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으며, 배달 음식을 시키지 않는다. 이에 더해 국가 정부나 사기업, 세계 주요 건물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하고, 화력 발전소, 골프장 등 반환경적인 건물이 들어서는 부지 앞에서 농성을 벌이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일부는 자본을 앞세운 세계 기업과 국가 권력에 억울하고 비참하게 죽는다. 그러나 친환경을 이야기하면 목숨이 위협받는 순간이 반복되어도, 행동을 포기하지 않는 활동가들이 있다. 그들을 응원하는 시민들은 세계 곳곳에서 SNS를 통해 지지와 연대의 물결을 일렁인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말은 환경운동에도 진실로 들린다. 덜 쓰고 더 아파하는 마음이 모여 오존층이 회복하는 기적이 일어난 게 아닐까?


인간이 지구를 여러 방면에서 괴롭혔음에도 아직까지 그런대로 잘 버티고 있음에 감사한다. 저자도 비슷한 인식을 생각을 가졌다. 유망한 언론 '한겨레'에서 '기후변화팀'에 소속되어 환경 관련 취재를 이어가는 기자 최우리의 신작 '지구를 쓰다가'를 보면 사랑하는 환경이 파괴되는 시대에 사는 사회인의 복잡다단한 시선이 나타나 있다. 여기에는 서울 토박이인 저자가 사라져가는 동네의 면면을 기억하고 기록하려는 마음, 동물의 아픔이라면 종을 가리지 않고 나서서 애쓰는 의지, 활동가가 아닌 사회인이기에 일부 환경 의제(EX 비건)와 타협할 수밖에 없는 유연함,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산업 재편 과정에서 일어날 사회적 혼란과 당사자의 실직을 걱정하는 섬세함, 환경 감수성이 높아서 따라붙는 유별나다는 낙인과 존중받지 못하는 외로움에 대응하는 방식, 치열하게 고민하고 분노하면서도 냉철함을 잃지 않는 기자 정신, 모든 환경 문제는 에너지와 자원 분배 문제, 산유국과 선진국의 정치적인 욕망과 연관되어 있음을 설명하는 구체적인 논리가 들어 있다.


결국 저자는 환경 문제는 한 가지 원인이나 결과로 촉발하거나 환원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환경 의제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개인과 사회 집단 간 뚜렷한 욕망의 충돌, 불평등한 국제 관계의 대립, 경제 발전 논리만을 중시하는 자본주의의 황금만능주의적 폐해를 골고루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 중심의 물질적 자본주의를 갈아엎거나 지속가능한 자본주의를 고안하여 세계 질서를 재편하는 것이 가장 순리일 테지만, 당장 실현가능성은 낮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통 화석 연료의 수급 불안, 미국이 주도하는 러시아와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 구축, 세계화 역행, (러시아/중국, 오펙 등) 에너지 부국의 자원 무기화, 자국 경제 발전을 위한 보호무역 확산, 기후위기로 인한 식량난, 고금리로 인한 저개발국과 개도국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선언, 주요 국가 은행의 뱅크런, 대규모 기업 파산은 국가별 ESG 진전에 관한 유의미한 제안을 멈추거나 없던 것으로 되돌리며, 자본주의 재편을 위한 새로운 시도를 늦춘다.


그러나 무력한 구조 앞에서 저자는 쉽게 움츠리지 않는다. 바꿀 수 없는 상황에 매달려서 좌절하기보다, 당장 내 삶에서 실천하고 바꿀 수 있는 활동을 찾아 해봄으로써 소소한 기쁨을 느껴보기를 조심스레 권한다. 그렇다고 개인에게 지나친 책임을 강조하는 주장은 경계한다. 모든 실천은 개인의 온전한 '선택'의 영역이기에, 하지 않을 선택도 같은 시민으로 존중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개개인의 실천보다 중요한 건 국가와 기업의 문제 인식과 의미있는 노력임을 강조하면서.


저자는 일상에서 페트병 라벨 떼서 분리배출, 포장이 최소화된 제품 구입 및 이용, 탈플라스틱, 일회용품 지양, 장바구니와 손수건 이용, 텀블러 사용, 실내 난방 대신 옷을 덧입어 온도 향상, 채식 지향, 대중교통 이용 등을 실천한다.


이런 작고 기본적인 '일'들이 모여 친환경을 선도하는 사회적 '흐름'이 만들어질 것으로 저자는 믿는다. 그 흐름은 굽이치며 뒤로 꺾일 수도, 멈출 수도 있으나 이미 형성된 '흐름'은 되돌릴 수 없으므로 점진적으로 나아진다고 본다. 그런 단계적 '희망'이 탈탄소, 탄소중립, 탄소 발자국 규제의 제도화를 이뤄냈고, 기업의 ESG 경영 의무 공시라는 성과를 만들었다.


앞으로도 기후 위기를 억제하려는 다양한 기술적, 행정적 시도들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한다. 기업들은 (특히 한국) RE100 등 탈탄소 요구를 발빠르게 받아들여, 친환경 발전으로 지속가능한 수익을 달성하는 모델을 연구해야 한다. 기업에게 탄소세(배출한 탄소량만큼 세금 부과), 탄소배출권 거래제, CBAM(유럽판 IRA -탄소국경조정제도-), IRA(인플레이션 감축법)는 위기인 듯 보이나 장기적으로 기존 산업 구조를 재편할 '기회'다. 철강, 내연기관 자동차 등 법의 수혜를 받을 한국 대표 산업군의 현재 산업 품목이 향후의 기업 운영에 불리함을 인정하고, 모델을 고도화하거나 전환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니면 전기차, 이차전지 소재 등 기존 자동차, 소부장 기업들이 그랬듯 다른 먹거리를 찾을 수밖에. 개인적으로는 철광석을 사용하지 않는 '철강'을 만들 수는 없나 궁금하다. 동물을 희생하지 않는 대체육이 만들어졌듯.


철광석 없는 철강은 철광석 수입 비용, 철광석을 제련하는 석탄 수입 비용을 모두 아낄 뿐 아니라, 제련 과정에서 배출하는 각종 오염물질과 폐수, 매캐한 매연도 지금보다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포항과 광양 주민들이 깨끗한 공기에서 숨 쉬고 살 권리도 보장될 것이다. (포스코 공장이 있는 포항과 광양의 대기 오염은 한 해 506명의 조기 사망을 유발한다고 한다.

출처 : '핀란드 에너지, 청정대기연구센터(CREA)와 기후솔루션의 '제철소와 숨겨진 진실' 보고서)


다행히도 이미 국내외 철강 업계가 화석연료 없이 '수소'를 통해 철강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는 움직임이 있다.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한 포스코는 CCUS (탄소포집 저장 활용 기술), 그린수소를 활용한 수소환원제철 공정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과 화석연료 사용량을 감소하고자 한다. 나아가 지속가능한 제조 방식으로 넷제로와 탈탄소 규제에 대응하고, 향후 활성화될 친환경 고부가가치 철강 수요에 대비하려 한다.


그래, 하루가 멀다하고 복잡하고 슬프고 아프고 괴로운 일이 가득한 지구촌에서도 희망이 움틀 수 있는 것은 변화를 지향하는 이들의 용감한 행동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현재의 편리함이 온당치 않다고 줄기차게 주장하는 학자들과 Z세대, 기후 위기로 눈에 띄게 소실되는 동식물 생태계를 외면할 수 없는 농어민들, 기후위기를 겪는 당사자들을 취재하여 세상에 의미 있는 변화를 촉구하는 언론인들, 전기든 물이든 물건이든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 쓰는 노고를 감수하는 시민들, 산과 바다에 방치된 쓰레기를 치우러 귀한 발걸음을 하는 봉사자들이 한국에도 여전히 있다.


그런 사람들이 모두 죽지 않고 살아있는 한 세상은 반드시 마냥 좋은 세상이 될 수는 없더라도 긍정적으로 변화하며, 이를 부인하거나 역행하는 목소리는 거센 파고로 밀려 오더라도 꺾이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그렇게 믿을 수밖에.


이 책은 내게, 이상 기후와 재난 빈도가 높아지며 발생하는 불안을 없애기는 힘들어도 덜어낼 수는 있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거스를 수 없는 변화로 인한 스트레스와 분노, 절망과 우울이 공동체 성원에게 각인된 정서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를 2017년 미국 심리학회가 정의하고 WHO가 그 심각성을 경고하는 '기후 우울증/기후 염려증'으로 부른다.

사회적 우울장애의 일종으로서, 해수면과 기온 상승, 자연재해 급증 등 이상기후 진행 속도에 비례하여 확산되고 있다. 의학적으로 공인된 질병은 아니지만, 일부 국가에서는 외상 전후 스트레스 장애의 일종으로 보기도 한다. 특히 자연과 가까이 살아가는 사람들 - 눈앞에서 빙하가 녹는 참상을 목격한 알래스카 원주민이나 거대한 메뚜기 떼 출몰로 하루아침에 농사를 망친 농민들은 - 원인불명의 자가면역질환 발병 비율이 높고,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린다. 그 뉴스를 미디어로 접하는 시민 또한 간접적인 피로감과 죄책감,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가 이상 기후를 목격하거나 지켜보며 느끼는 상실과 체념, 미래의 기후 변화를 상상할 때의 암울함과 생존의 불안은 특히 청년 세대에게 집단적인 고통임을 상기해야 한다. 출산 파업/거부 운동이 기후 위기 타파 해법으로 각광받는 현실은 청년 세대가 기후 위기를 일상을 위협하는 원인이자 결과로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반증이자 예측 불가능하고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미래를 후세에 물려주지 않으려는 집단 의지를 대변한다. 나도 얼마나 이상 기후와 재해가 심각해질지 알 수 없는 미래에 살아갈 아이들이 안쓰럽다. 어린이는 사회와 국가를 위해 꼭 필요한 존재지만, 지구는 이미 수용할 수 있는 적정 인구를 초과한 지 오래되었다. 바야흐로 자본도, 인구도 '과잉'된 시대다. 출산 파업을 지지한다. 어린이는 사회와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존재다. 그러나 이 사회는 아이를 가질 자격이 없다는 게 내 지론이다.


여하튼, 기후 우울증은 도래할 기후 위기의 시대를 어떻게 이겨낼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신호다. 모두가 환경 오염의 심각성은 알고 있다. 이제 특정 인간에게만 유리한 편리함과 물질 만능주의를 조금씩 덜어내고, 지속가능한 '발전'과 비인간, 비생물과의 슬기로운 '공존'를 꾀할 때다.

느리게, 조금씩. 내가 할 수 있는 일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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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날아 차 - 작심삼일 다이어터에서 중년의 핵주먹으로! 20년 차 심리학자의 태권도 수련기
고선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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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한 번 뿐이라고들 말한다. 단 한 번의 유한한 삶을 잘 보내려면 끊임없이 자신을 개발하고 한계에 도전하며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기술이 하루하루 달라져 평생직장이 없다는 요즘 시대에 그러한 '자기계발' 담론은 노력한 모두가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널리 강조한다. 자신의 통장 잔고와 삐까뻔쩍한 집을 공개하며 이러이러한 노력으로 부와 일치되는 사회적 성공을 이룩할 수 있다는 유튜브와 책은 셀 수가 없을 정도다. 수십 년째 OECD 노인 빈곤율 압도적 1위, 1020 청년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깨지 못한 한국에서 여전히 많은 사람이 물질적, 심리적 빈곤에 허덕이는 것을 고려하면 참으로 대조적이다. 정서적으로 가난할지라도 부와 일맥상통하는 성공에 대한 관심과 치열한 경쟁은 식지 않아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전 세대에 널리 퍼져, 이제는 하나의 진리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성공 담론은 돈이 되지 않는, 혹은 수익성이 예견되지 않는 취미나 활동을 실행하고 살아가는 삶을 소외시킨다. 특히 생애주기를 비켜간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일각에선 '유리천장을 깼다거나' '하고 싶은 거 다하는 사람'으로 부러움을 사지만, 대부분은 '저 나이 먹고 왜 저러나' '쓸데없는 짓 한다'는 껄끄러운 핀잔을 듣는다.

오늘 소개할 '내 꿈은 날아 차'의 저자 고선규 심리학자도 그런 소리를 들을 만큼의 새로운 도전을 한다. 50을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서 태권도를 시작한 것이다. 학창시절 태권도를 경험한 적도 없는 저자는 어떻게 중년의 여성이 되어 태권도라는 '초중등 청소년이 절대 다수인' 스포츠에 입문했을까? 왜 다른 스포츠와 달리 1년 넘게 지속할 만큼 태권도의 매력에 푹 빠졌을까? 초등학교 5년을 태권도에 다녔던 청년으로서 이 점이 몹시 궁금했다.

저자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들의 행적과 심리적 원인을 규명하는 '심리 부검'을 도입하고, 2018년부터 자살 사별자 심리지원 단체 메리골드를 운영하며, 애도 상담을 진행하는 임상심리 전문가다. 땀흘리며 움직이는 동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는 지인의 권유, 유튜브에서 본 태권도의 화려한 기예와 참관 수련을 간 도장의 우렁찬 기운과 사람에 이끌려 몸을 쓰는 세계에 입문했다.


그간 저자에게 운동이란 평균 여성에 비해 기골이 크고 우량한 몸을 날씬하고 맵시 있는 몸매로 만들기 위한 다이어트 수단이었다. 4.5kg 우량아로 태어나 가리는 음식 없이 골고루 잘 먹으며 듬직하게 성장한 저자는 따로 운동을 한 적은 없어도 타고난 힘이 상당히 좋았다. 상상도 안 되는 80kg 쌀 한 가마니, 정수기 물통을 곧잘 들어 올렸고, 대학원 시절 여자 팔씨름 대회 우승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현재 내 입장에서는 너무나 가지고 싶은 넘치는 '힘'이지만, 당시 저자에겐 본인이 설정한 지성인의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 모습이라 감춰야 했다. 거기에 근력 없이 마른 몸을 선망하도록 하는 사회 분위기가 더해져 그는 자신의 몸을 그자체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대신 실익 없는 다이어트를 하는 데 약 30년을 보냈다.


이제 저자는 더 나은 발차기와 절도 있는 동작을 위해서는 본인의 힘이 필요함을 잘 알고 있다. 타고난 근력과 탄탄한 코어의 효능을 여러 동작을 구사하며 체감한다. 특히 품새와 겨루기, 격파 같은 재빠르고 정확한 자세가 요구되는 수련은 기본 근력과 악력이 높은 신체 조건을 가진 사람에게 매우 유리하다. 태권도를 통해, 그는 자신의 몸을 '당당하게 드러내도 부끄럽지 않다'고 긍정하고, 또래 및 어린 여성과 합동 수련을 하며 '운동을 하는 재미'를 난생 처음 느낀다.

중년 여성 태권도인에게 품새가 비인기 수련 영역이라는 대목을 볼 때, 역시 품새 순서 외우기 싫은 건 누구나 똑같구나 싶었다. 태극 1장~8장까지도 어려운 동작이 많지만, 고려 - 금강 - 태백을 넘어가면 태극은 귀여운 수준이다. 등급이 높아질수록, 고도화된 손동작과 절제를 요하는 수준 높은 발차기, 발재간이 필요한 연속 동작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태권도의 매력으로 다른 운동과 달리 초기 비용이 적게 든다는 언급도 인상적이었다. 요즘엔 헬스를 즐겨 하기에, 최고의 가성비 운동은 헬스 만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태권도를 잊고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다시금 깨달은 건, 맨몸 운동 다음으로 태권도는 가성비 극강의 운동이 맞다는 점이다. 헬스는 친구를 데리고 가거나 회당 6~7만원을 호가하는 PT를 결제하지 않는 이상, 기본적으로 혼자 해야 한다. 2:1, 3:1 인원을 모아 pt를 끊어도 되지만, 그렇게 하는 사례를 많이 보진 못했다.또한 여러 헬스장의 그룹 pt 가격을 봤을 때, 그렇게 저렴하다고 느끼지도 못했다. 헬스장 이용권만 결제했다면, 프론트에 있는 직원이나 헬스장에 상주하는 트레이너들이 다가와 내가 동작을 바르게 하고 있는지 봐주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물론, 나는 코로나 이전에는 그런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주로 다니는 허름하지만 구색은 갖춘 저렴한(3개월에 99000) 헬스장에서 공짜 PT의 수혜를 누렸다. 혼자서 혹은 친구와 헬스를 할 때면, 할머니든 할아버지든 아저씨든 코치님이든 다가와서 우리의 자세를 교정하거나, 다른 운동 방식을 알려주기도 했다. 이런저런 잡담도 오고가면서. 영업정지와 모임 인원 r제한이 있던 코로나 시대를 관통하며, 그런 가격도 인심도 훈훈한 헬스장이 자취를 감췄다.

고물가에도 여전히 일부 헬스장은 3개월의 99000의 기적을 보여준다. 그러나 품앗이하듯 서로의 동작을 봐주고 다른 운동을 제안하는 인심은 사라졌다. 10만원도 안 되는 돈을 지불하며 많은 걸 바라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씁쓸하긴 하다.


반면 태권도는 같이 하는 운동이다. 아동청소년부라면 6시 전후, 성인부라면 저녁 7시~9시 사이 널널한 때 출석해 50분에서 1시간 가량 수십 명이 옹기종기 한 공간에서 사범님이나 관장님의 지시를 따라 같은 수련을 받는다. 책에서 나온 대로 다같이 하는 기본 체력 훈련과, 비슷한 색깔 띠별로 흩어져 하는 심화 훈련이 있는데 전제는 '혼자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방향이나 자세 등이 이상하다 싶을 때, 동작이 기억 나지 않을 때 같이 수련하는 동료를 힐끔힐끔 보며 따라할 수 있다. 아니면 사범님이 동작을 일일이 바로잡아 주는 순간을 기다릴 수도 있다. 헬스를 해보며 느낀 건, 생각보다 이런 '경력자'의 세심한 지도나 잠깐의 잡담이 매우 귀중하다는 것이다. 힘들어서 살짝 농땡이를 부려도 단체 수련이라 묻힌다는 ^^;; 장점도 있다. 외롭지도 않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요즘엔 주5일에 14~16만원, 비싼 곳은 20만원까지 하는 듯하다. 대개 도복도 공짜로 준다. (운동복을 굳이 따로 구비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 신발도 필요가 없다. 대부분 벗고 하니까. 내게 필요한 건 하루에 1시간을 낼 수 있는 체력과 용기와 소정의 돈이다. 필라테스나 다른 여타 스포츠를 따져봐도 이만한 가성비를 주는 운동도 없다.


저자가 조금 더 부러운 건 동성의 스승과 동료와 함께 땀흘리고 몸을 쓰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스포츠도 마찬가지지만, 태권도에서도 사범과 관장까지 여성인 경우가 절대 흔하지 않다. 주위의 태권도장을 봐도, 어릴 적 내가 다니던 태권도에서도, 승급 심사나 대회 때 옹기종기 모인 다른 수십개의 태권도장을 구경했을 때도 대다수 지도자의 성별은 남성이었다. 여성 지도자는 결코 접해본 적 없었다. 그래서인지 생각만 해도 너무 간지나고 갑자기 그런 도장에 등록하고픈 마음이 샘솟는다. 그런 태권도장이 먼 서울이 아닌 대구 근방에도 있다면, 태권도가 다시금 궁금해질 수 있을 듯하다.


간만에 희로애락이 담긴 그때 그시절을 회상하며 즐겁게 읽었다. 태권도를 40대 중반에 태권도의 세계에 입문하며, '다이어터'가 아닌 '중년의 핵주먹'으로 거듭나는 저자의 용기가 품과 단을 딸 때까지 오래 이어질 수 있기를 응원해본다.

추하게 늙지 말자는 결심은 자주 나 자신의 말과 행동을 검열하게 만들었고, 그러다 보니 가급적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는 편을 선택하게 되었다. 스스로 만든 제약 안에서 노화를 서글퍼만 하고 있는 것은 누구도 아닌 바로 내 자신이었던 것이다. - P124

태권도 수련을 처음 시작할 때 대단한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 나이에 좀처럼 시작하지 않는 운동에 도전한다는 독특함, 그것을 즐기고 싶었다. 즐기다 보니 깨달았다. 나는 참 기운이 좋다는 것. 그리고 그 기운이 격투기와 잘 맞는다는 것을. - P101

내 눈앞에서 하얀 도복을 갖춰 입은 여성 열댓 명이 다 함께 파이팅 넘치는 움직임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전에는 별로 느껴보지 못한 가슴 벅참이 솟구쳤다. 완전히 다른 세계로 들어온 느낌이었다. (중략)

여기 태권도장에 학창시절에 내가 좋아했던 체육부장들이 모두 모여 있는 것만 같았다. 이미 등록을 결심하고 한 참관이었지만 직접 보고 나니 확신이 들었다. 저 에너지 속에 한번 빠져보자!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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