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저자에게 운동이란 평균 여성에 비해 기골이 크고 우량한 몸을 날씬하고 맵시 있는 몸매로 만들기 위한 다이어트 수단이었다. 4.5kg 우량아로 태어나 가리는 음식 없이 골고루 잘 먹으며 듬직하게 성장한 저자는 따로 운동을 한 적은 없어도 타고난 힘이 상당히 좋았다. 상상도 안 되는 80kg 쌀 한 가마니, 정수기 물통을 곧잘 들어 올렸고, 대학원 시절 여자 팔씨름 대회 우승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현재 내 입장에서는 너무나 가지고 싶은 넘치는 '힘'이지만, 당시 저자에겐 본인이 설정한 지성인의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 모습이라 감춰야 했다. 거기에 근력 없이 마른 몸을 선망하도록 하는 사회 분위기가 더해져 그는 자신의 몸을 그자체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대신 실익 없는 다이어트를 하는 데 약 30년을 보냈다.
이제 저자는 더 나은 발차기와 절도 있는 동작을 위해서는 본인의 힘이 필요함을 잘 알고 있다. 타고난 근력과 탄탄한 코어의 효능을 여러 동작을 구사하며 체감한다. 특히 품새와 겨루기, 격파 같은 재빠르고 정확한 자세가 요구되는 수련은 기본 근력과 악력이 높은 신체 조건을 가진 사람에게 매우 유리하다. 태권도를 통해, 그는 자신의 몸을 '당당하게 드러내도 부끄럽지 않다'고 긍정하고, 또래 및 어린 여성과 합동 수련을 하며 '운동을 하는 재미'를 난생 처음 느낀다.
중년 여성 태권도인에게 품새가 비인기 수련 영역이라는 대목을 볼 때, 역시 품새 순서 외우기 싫은 건 누구나 똑같구나 싶었다. 태극 1장~8장까지도 어려운 동작이 많지만, 고려 - 금강 - 태백을 넘어가면 태극은 귀여운 수준이다. 등급이 높아질수록, 고도화된 손동작과 절제를 요하는 수준 높은 발차기, 발재간이 필요한 연속 동작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태권도의 매력으로 다른 운동과 달리 초기 비용이 적게 든다는 언급도 인상적이었다. 요즘엔 헬스를 즐겨 하기에, 최고의 가성비 운동은 헬스 만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태권도를 잊고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다시금 깨달은 건, 맨몸 운동 다음으로 태권도는 가성비 극강의 운동이 맞다는 점이다. 헬스는 친구를 데리고 가거나 회당 6~7만원을 호가하는 PT를 결제하지 않는 이상, 기본적으로 혼자 해야 한다. 2:1, 3:1 인원을 모아 pt를 끊어도 되지만, 그렇게 하는 사례를 많이 보진 못했다.또한 여러 헬스장의 그룹 pt 가격을 봤을 때, 그렇게 저렴하다고 느끼지도 못했다. 헬스장 이용권만 결제했다면, 프론트에 있는 직원이나 헬스장에 상주하는 트레이너들이 다가와 내가 동작을 바르게 하고 있는지 봐주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물론, 나는 코로나 이전에는 그런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주로 다니는 허름하지만 구색은 갖춘 저렴한(3개월에 99000) 헬스장에서 공짜 PT의 수혜를 누렸다. 혼자서 혹은 친구와 헬스를 할 때면, 할머니든 할아버지든 아저씨든 코치님이든 다가와서 우리의 자세를 교정하거나, 다른 운동 방식을 알려주기도 했다. 이런저런 잡담도 오고가면서. 영업정지와 모임 인원 r제한이 있던 코로나 시대를 관통하며, 그런 가격도 인심도 훈훈한 헬스장이 자취를 감췄다.
고물가에도 여전히 일부 헬스장은 3개월의 99000의 기적을 보여준다. 그러나 품앗이하듯 서로의 동작을 봐주고 다른 운동을 제안하는 인심은 사라졌다. 10만원도 안 되는 돈을 지불하며 많은 걸 바라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씁쓸하긴 하다.
반면 태권도는 같이 하는 운동이다. 아동청소년부라면 6시 전후, 성인부라면 저녁 7시~9시 사이 널널한 때 출석해 50분에서 1시간 가량 수십 명이 옹기종기 한 공간에서 사범님이나 관장님의 지시를 따라 같은 수련을 받는다. 책에서 나온 대로 다같이 하는 기본 체력 훈련과, 비슷한 색깔 띠별로 흩어져 하는 심화 훈련이 있는데 전제는 '혼자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방향이나 자세 등이 이상하다 싶을 때, 동작이 기억 나지 않을 때 같이 수련하는 동료를 힐끔힐끔 보며 따라할 수 있다. 아니면 사범님이 동작을 일일이 바로잡아 주는 순간을 기다릴 수도 있다. 헬스를 해보며 느낀 건, 생각보다 이런 '경력자'의 세심한 지도나 잠깐의 잡담이 매우 귀중하다는 것이다. 힘들어서 살짝 농땡이를 부려도 단체 수련이라 묻힌다는 ^^;; 장점도 있다. 외롭지도 않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요즘엔 주5일에 14~16만원, 비싼 곳은 20만원까지 하는 듯하다. 대개 도복도 공짜로 준다. (운동복을 굳이 따로 구비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 신발도 필요가 없다. 대부분 벗고 하니까. 내게 필요한 건 하루에 1시간을 낼 수 있는 체력과 용기와 소정의 돈이다. 필라테스나 다른 여타 스포츠를 따져봐도 이만한 가성비를 주는 운동도 없다.
저자가 조금 더 부러운 건 동성의 스승과 동료와 함께 땀흘리고 몸을 쓰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스포츠도 마찬가지지만, 태권도에서도 사범과 관장까지 여성인 경우가 절대 흔하지 않다. 주위의 태권도장을 봐도, 어릴 적 내가 다니던 태권도에서도, 승급 심사나 대회 때 옹기종기 모인 다른 수십개의 태권도장을 구경했을 때도 대다수 지도자의 성별은 남성이었다. 여성 지도자는 결코 접해본 적 없었다. 그래서인지 생각만 해도 너무 간지나고 갑자기 그런 도장에 등록하고픈 마음이 샘솟는다. 그런 태권도장이 먼 서울이 아닌 대구 근방에도 있다면, 태권도가 다시금 궁금해질 수 있을 듯하다.
간만에 희로애락이 담긴 그때 그시절을 회상하며 즐겁게 읽었다. 태권도를 40대 중반에 태권도의 세계에 입문하며, '다이어터'가 아닌 '중년의 핵주먹'으로 거듭나는 저자의 용기가 품과 단을 딸 때까지 오래 이어질 수 있기를 응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