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의 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2
하야미 가즈마사 지음, 박승후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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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또 하나의 가련한 여성 수난사가 기다린다. 하야미 가즈마사의 <무죄의 죄>!

저자의 이름을 검색해 보면 국내에는 동명의 영화로도 알려진 <이별까지 7일>이 유일하게 번역돼 있다. 모든 작품이 소개된 것은 아니지만, <이별까지 7일>을 염두에 둔다면 이 작가가 추미스가 전공이 아니란 사실이 드러난다. 오히려 <무죄의 죄>는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그가 사회파 미스터리의 틀을 빌어온 이단아 성격의 작품으로 보인다.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에는 분명 '내가 좋아하는 걸 남에게 추천하고 싶어 하는' 마음도 포함되리라. 서점 직원들이 이 작품의 진가를 알아보고 자체적인 홍보를 해서 차트 역주행을 이뤄내 누적 판매고 50만 부에 이르는 상업적인 성공은 물론, 일본추리작가협회상까지 수상한 게 바로 <무죄의 죄>다.


여주인공의 이름은 '다나카 유키노'다. 유키노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사형수로 복역 중이다.

불우한 가정 환경, 어린 시절에 저지른 범죄는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잔혹한 사건을 일으키고도 남을 만큼 비참했던'(P 207) 빗나간 인생처럼 보인다.

"혐오스런 유키노의 인생"

세상 사람들은 드러난 결과만 가지고 쉽게 유키노를 단죄한다.

"그러니까 뭐랄까···. 그래 보이잖아. 딱 봐도." 지들이 무슨 용한 점쟁이라도 되는 듯이.

법정 판결문에 사용된 문구들로 소설은 구성되어 있는데, 왜 이런 구성을 취했는가는 소설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알게 된다.

1장 "책임감을 갖추지 못한 열일곱 살 어머니 밑에서..."

5장 "계획성 짙은 살의를 봤을 때..."

1부 '사건 전야'에는 유키노 탄생의 과정을 아는 산부인과 의사, 이복 언니, 절친, 남자친구의 절친, 유키노 본인의 입을 통해 다나카 유키노가 어떤 사람인지 입체적으로 드러나고, 사건의 전모가 그려진다.

"누군가 슬퍼하면 다 같이 돕기. 이건 언덕 탐험대의 약속이야." - 쇼

"응, 그러자. 내가 모두 지켜줄게." - 유키노

"나도, 나도 모두를 지킬 거야." - 신이치, P 64

2부에서는 어린 시절 언덕 탐험대의 일원이었던 쇼와 신이치의 눈물겨운 우정의 연대가 그려진다.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인생이 있을까? 하찮은 인생이란 없다.

진심으로 자기를 생각해 주는 쇼와 신이치 같은 1~2명의 친구만 있어도 인생은 살아볼 만하다. 그리고 역시 친구는 어릴 때 찾아야 한다.

"인간은 아무도 자기를 필요로 하지 않으면 죽는대." - P 168

묵직하다.

페이지는 술술 넘어가지만 여운이 짙다. 아마도 유키노를 쉽게 보내지 못할 거 같다.

신자는 아니지만 부정한 여인을 눈앞에 두고 하신 예수님 어록이 떠오른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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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않을 이야기 - 팬데믹 테마 소설집 아르테 S 7
조수경 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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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 S는 하나의 주제 subject를 둘러싼 참신하고 다양한 이야기 story로 구성된 시리즈다. 7번째 책으로 '팬데믹 테마 소설집' <쓰지 않을 이야기>가 출간되었다. 200여 페이지의 아담한 포켓 사이즈로 참여 작가는 조수경, 김유담, 박서련, 송지현 4명의 여성 소설가다. 이중 얼굴을 익힌 작가는 <체공주 강주룡>으로 만나 본 박서련뿐이고, 나머지 작가들은 처음 만난다. 신진 작가들이 '팬데믹'이라는 주제로 발 빠르게 움직여 집필한 단편들인데 각각 50여 페이지 분량이다. 비슷한 시기 여섯 명의 작가가 참여한 'SF 앤솔러지' <팬데믹>도 출간되었는데, 소설은 동시대를 가장 빠르게 포착하는 장르이니만큼 팬데믹을 바라보는 작가들의 다양한 시선을 신속하게 만나 보는 건 무척 의미 있는 독서가 될 거다.

책을 읽기 전 당연히 '팬데믹 = 코로나'로 정의했는데, 수록작들은 반드시 그렇지마는 않다. 코로나를 직접적으로 연관 지어 이야기를 전개하는 건 앞선 두 편 조수경의 「그토록 푸른」과 김유담의 「특별재난지역」이다.

「그토록 푸른」은 실제 상황이다. 왜냐면 모 택배사의 물류센터에서 감염자가 실제로 발생해서 큰 뉴스가 되었기 때문이다. 저자의 꼼꼼한 취재에 힘입어 우리는 새벽 배송 물류센터의 진실을 알게 된다. 편한 택배 배송 시스템 덕분에 우리가 사는 이 나라가 "아! 대한민국"이 되었지만, 정작 물류센터 근로자들의 삶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지 않았나. 소설의 주인공은 금번 코로나 사태로 가장 큰 직격탄을 맞은 여행업계 근로자로 설정되어 있고, 어쩔 수 없는 호구지책으로 엄마에게 실직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비슷한 처지의 수많은 이들과 함께 물류센터로 흘러들어온다. 절대로 확진자가 나와서는 안되는 이곳의 암묵적인 정서는 주인공이 신체 변화를 느끼는 와중에도 파운데이션의 커버력으로 손색깔을 숨긴다. 아마 십자가를 지기 싫은 다른 근로자들도 똑같은 행위를 했으리라.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주머니 속의 송곳은 언젠가는 바지를 찢고야 만다.

택배 · 물류업체는 호황인지 모르나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근무여건은 그만큼 대접받고 있는지 모르겠다. 업계의 과열 경쟁으로 택배비는 올리기 힘들다고 하고 이런 수레바퀴 속에서 어려움을 토로한, 대형 업체와 계약했던 소장 한 분은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오늘 신문 경제면 머리기사다.

"택배기사 잇딴 사망, '무법지대' 결국 터졌다"(10월 23일 금요일 중앙일보 중앙경제)


「특별재난지역」 역시 현실에 뿌리를 대고 있다. 코로나 초기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오며 연일 매체에 등장했던 청도 대남병원이 언급되며, 소설의 무대는 바로 그 청도다. 치매가 있긴 하지만 먹성 좋은 92세 아버지는 코로나 시기 별다른 대처도 못해보고 사망하고, 자식들은 병원에서 임종을 지켜보기는커녕 고인의 가는 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허망한 마지막을 맞이한다. 민감한 시기 장례식장은 텅 비었다.

여기에 곁가지로 손녀의 일탈이 나오는데, 이건 n번방 사건의 연결고리로 읽힌다. 결국 코로나라는 자연재해나 n번방이라는 사회적 병증이나 팬데믹이라는 측면에서는 공통점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체공주 강주룡>으로 이야기꾼으로서의 소질을 드러낸 바 있는 박서련의 단편 「두」(痘, 천연두 '두')는 한적한 시골 분교에 처음 부임한 생초보 여교사의 이야기다. 순진한 아이들에게 도는 수상한 증상, 이건 여학생에게만 발병한다. 그 원인 제공자는 남자들이다. 5학년 오빠, 삼촌, 할아버지... 역시 n번방 사건의 여파가 느껴진다. 놀라운 건 2명의 여교사도 안전지대에 놓여있지 않다는 점이다.

"강간까지는 아니었어···. 뭐가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 P 142

오지 학교에 부임한 여선생이 마을 주민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어처구니없는 기사가 조건반사적으로 떠오르는 단편이다.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듯 보이는 송지현의 표제작은 아쉽지만 특별한 감상이 없다. 어디까지가 사적인 영역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내밀한 개인사가 펼쳐진다.

예상치 못한 코로나라는 팬데믹은 이제 변수가 아닌 상수로 자리 잡았다. 금방 끝나지 않을 듯하고, 끝난다 하더라도 많은 생채기를 남길 수밖에 없다. 촉수가 예민한 소설가들의 분투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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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 밥 됩니까 - 여행작가 노중훈이 사랑한 골목 뒤꼍 할머니 식당 27곳 이야기
노중훈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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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중훈이란 여행작가를 신뢰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요즘은 잘 못 듣지만, 예전에 차량으로 출퇴근할 때 아침 라디오 방송에서 가끔 그가 출연해서 입담을 발휘하는 걸 자주 들었었다. 전국구로 다니는 그는 어느 곳을 가든 자동적으로 '거기에 가면 여기를 들러야 한다'는 식의 놀라운 기억력을 자랑했고, 방송에 적합한 중후한 목소리와 대화에 묻어나는 소탈한 면모가 좋았다. 라디오의 특성상 모습을 볼 순 없었지만 먹성 좋고, 사람도 좋고, 적당히 풍채도 좋은 아저씨를 연상했었다.

여행하면 관광지도 좋지만, 식도락을 빼놓고는 얘기가 안 되는 세상이다. 더구나 해당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가 있다면 먹방 투어도 마다하지 않는 게 요즘 사람들이다. 이런 세태를 잘 아는 노중훈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그가 애지중지하는 전국구 식당들을 소개한 <식당 골라주는 남자>라는 책이 몇 년 전 나왔고, 공저로 이름을 올리진 않았으나 박찬일이 쓴 <백년식당> 시리즈에는 저자의 동행으로 박찬일과 마주 앉아 '백년식당'들을 섭렵했다. 사진도 찍고, 함께 먹고 마시는 결정적인 트리뷰터 역할을 한 것이다.

이번에 <할매, 밥 됩니까>라는 신간을 가지고 돌아왔다. 부제는 '여행작가 노중훈이 사랑한 골목 뒤꼍 할머니 식당 27곳 이야기'다. 그는 미슐랭 가이드에 오를만한 격조 있는 '힙'하고 '핫'한 식당들에는 관심이 없다. 그의 시선은 늘 도심의 외곽, 변두리를 지키면서 오랜 시간 서민들의 영혼을 다독여준 다 쓰러져가는, 간판도 다 낡아빠진 그런 식당들로 향하는데, 이번 책에도 그런 기조는 여전하다. '할머니 식당'이라고 아예 명명을 했는데 대부분 규모는 크지 않고 할머니 혼자, 아니면 기껏해야 남편이 돕는 정도의 식당으로 그들의 반평생 이상을 바친 식당들이 그 대상인데, 지역은 전국구요 가게는 식당뿐 아니라 분식집, 다방, 제과점, 가맥집을 망라한다.

'얼마나 더 하실 수 있겠냐'는 저자의 질문에 식당 주인 할매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할 수 있는 만큼 하겠다'라고. 침몰하는 배에서 결코 내리지 않겠노라는 선장의 결기가 느껴진다.

아쉽게도 책에 나온 식당 중에서 벌써 영업이 종료된 곳도, 종료가 예정된 곳도 있다. 혹시라도 이 식당들을 순례하고자 하는 이들은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하겠다.

사연 없는 인생이 있겠는가? 책에 나온 할매 또는 어머니들의 인생사를 보면, 가진 거 없고 배운 거 없고 특별한 기술도 없어 밥집을 시작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연차가 늘어가면서 그냥 눈뜨면 식당으로 출퇴근하는 삶이 이어졌고, 다행히 단골들의 우레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밥은 먹고살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 감사한 일일뿐 더 큰 욕심은 없다. 이들이 SNS나 유튜브를 알겠는가? 설사 안다 하더라도 자기 식당이 어느 날 갑자기 손님으로 미어터지는 일이나, 보다 상업적인 프랜차이즈로 변하는 꼴은 못 볼 분들이다. 그렇게 해서 돈은 더 벌 수 있을지언정 단골들 대접이 소홀해지고 본인들 몸이 피곤해지는 건 못할 짓이다. 전화 예약을 해야 하지만, 너무 전화가 많이 올까 봐 간판에 번호가 지워져도 그냥 놔두는 분들이다. 그래도 알만한 분들은 찾아서 온다. 그냥 아직까지 영업을 하고 있음에 무한 감사를 해야 하는, 그 존재만으로 은혜로운 공간이다.

"...할머니떡볶이가 '혜자스러운 떡볶이' '가성비 맛집' 따위의 가격 일변도로 기억되는 게 싫어서다. 특히 '가성비'는 너무 즉물적이고 아주 차갑고 대단히 고약한 표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40여 년을 우리 곁에 머문 소중한 공간이 '1000원짜리 한 장이면 떡볶이 먹을 수 있는, 가성비 쩌는 곳'으로만 추억되는 건 좀 서글프지 않은가." - P 272

가성비라는 표현을 싫어하는 노중훈의 의도는 잘 알겠다. 그러나 여기 나온 식당들을 가성비라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가 아니면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누추한(?) 인테리어, 본인들이 직접 재배하거나 만드는 엄선된 재료, 아낌없는 주는 인심(이렇게 장사해도 남는 게 있나요?), 오랜 기간 동안 최소한의 인상으로만 버틴 착한 가격, 외길 인생에서 나오는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손맛... 가성비란 단어가 다소 천박하다면 각자 그 분위기를 연상해 보시라.

"근데 왜 이렇게 싸게 하세요?"

"싸게 해서 고마 치아뿌지 그거뭐. 밥을 파는 사람들은 너무 이익을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 음식은 자격증 따서 되는 음식이 아닙니다." - 정희식당, P 200, 202

미슐랭에 목숨 걸고, 프랜차이즈화에 몰두하는 세태에 본인 이름을 걸고 장사하는 정희식당 어머니는 큰 가르침으로 일갈한다.

미각을 글로 표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포실한, 쿰쿰함, 보동보동한, 짭조름, 녹녹하게, 개결한, 맵고 싸한, 폴폴 솟는, 달큼했고, 구뜰한, 녹진함, 쌉싸래함...' 이토록 다양한 언어로 할머니 식당의 신묘한 맛을 표현해내려 애쓴다.

"어머니, 너무 맛있어요!" 저자가 어떤 식당을 가서, 어떤 음식을 먹든 자동으로 연발하는 감탄사다. 저자는 혹시 식당들의 문턱을 넘으면서 이미 무장해제된 것은 아닐까? 정서적으로 이미 완패의 분위기?

허름한 분위기의 식당에서 맛보는 추억의 맛은 마력을 지녔고, 거기다 주인장과 나누는 정감 어린 교감은 MSG가 첨가되지 않은 자연 친화적이다. 먹성 좋고 붙임성 좋은 그는 다방에 가서도 몇 시간 만에 백반을 받아먹고, 식당 어머니가 십 년에 한번 말까 하는 김밥을 얻어먹는 신공을 지녔다.

등장한 식당들을 활자와 사진으로만 보기 아쉽다면, 저자가 직접 출연하는 방송 "노중훈의 할매와 밥상"을 시청하면 된다. 책에 등장한 많은 식당들이 대략 10여 분 분량으로 올라와 있다.

소위 맛집의 변별력이 많이 떨어졌다. 먹방 관련 프로그램도 지나치게 많아졌고 그러다 보니 어디어디 방송에 나왔다는 사진 액자가 왠만한 식당에는 장식처럼 걸려 있다. 여기에 대한 뒷말도 많고. 오히려 그런 액자가 아마도 거의 걸려 있지 않을 이 책의 할매 식당들이 더욱 믿음직스럽게 보인다.

"나는 여기서 술을 마시지 않아.

여긴 내 삶의 현장이야." - 성원식품, P 116

이곳들은 어머니들의 삶의 현장이요, 지나간 고단한 세월이며,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이들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주린 배를 맛깔난 소울푸드와 푸근한 인정으로 위로받을 수 있는 녹진한 공간이다. 괜히 뭐 인스타에 올릴 거 없나 기웃기웃 대는 건 지양해야 한다.

"<할매, 밥 됩니까>는 맛집 책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맛집'이란 단어를 좋아하지도, 사용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이 책에 나온 식당들을 찾아가 음식 품평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외람되지만 <할매, 밥 됩니까>가 우리 이웃의 노동기勞動記로 읽히면 좋겠습니다." - 들어가며, P 11

우리는 저자의 집필 의도를 최대한 존중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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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미래보고서 2021 - 온택트, 언택트 시대의 콘택트 기술
현경민 외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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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래 예측서가 큰 인기다. 그것도 중장기 전망을 하는 게 아니라 1년 단위로 세분화된 트렌드 예측서가 인기를 끌고 서점가에서 독자들의 손길을 기다린다. "모바일 미래보고서" 시리즈도 작년 2020에 이어 내년 판이 작년보다 훨씬 빠르게 출간되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바람인 줄 알았던 코로나는 우리 일상에 정박했다. 이런 예측은 당연히 작년 보고서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부분인데, 이제 코로나는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되었다. 2020년 누구나 느꼈던 삶의 변화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고, 바라지 않았던 결과값이었다. 사람을 만나기 힘들어진 시대, 변화의 흐름에 가장 민감하고, 가장 관련이 많은 분야가 바로 "모바일"로 대표되는 IT 기술이 아니겠는가!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상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올해를 대표하는 단어는 비대면, 언택트(Untact)였다.

<모바일 미래보고서 2021>은 온택트(Ontact)를 화두로 삼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언택트 시대에도 사람들이 갈구하는 연결, 콘택트 기술을 온택트로 정의한다. 온택트는 '뉴 노멀'로 급격히 자리를 잡았는데, 간단히 한 줄로 "'접촉'시대의 종말,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연결'이 시작된다!" 정리할 수 있겠다.

작년에는 9개 분야로 항목을 구분했었는데, 올해는 "AI / 스마트 디바이스 / 커머스 / 디지털 마케팅 / 빅데이터 / 금융" 6개 분야로 나눴다. 일반 독자들에게는 아직까지 생소한 용어들(특히 영어 약자)이 소개되지만, 본문 속에서 모두 해설이 자연스레 되어 있고, 다양한 도표, 사진 등 시청각 자료가 풍부하다.

♣ AI - 그다지 피부에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소리 소문 없이 우리 주변에 나타난 모든 변화는 AI 없이는 얘기가 되지 않는다. 컴퓨터로 따지자면 CPU.

기억해 둘 중요한 개념은 DX와 AIX다.

DX =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디지털화

AIX = AI 기반 DX, AI 트랜스포메이션(AI Transformation)

비대면 시대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경험'하고 싶어 한다. 접촉하지 않으면서 고객의 경험을 강화하기 위해 AI를 활용하는 기업들이 급증하기 시작했고, 고객은 자신을 응대하는 주체가 사람인지 AI인지 식별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 스마트 디바이스 - 가뜩이나 본인의 분신처럼 애지중지하던 스마트폰. 이거 하나면 모든 게 다 해결되는 시대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5G 시대 특수가 기대만큼 나오지 않았고, 거기다 코로나 악재까지 겹쳤다.

어느 정도 추가될 기능은 한계가 있다 보니, 이젠 폴더블, 롤러블, T자 폰이니 하는 폼 팩터로 승부를 걸려고 한다.

이래저래 집돌이, 집순이는 늘어만 가고 사람이 움직여서, 만나서 해결해왔던 많은 일들을 온라인으로 처리하는 시대가 되다 보니 스마트 기기나 PC의 성능을 업그레이드한 가정이 많다고 한다. 온라인 수업의 여파도 상당하고, 결국 속도는 빠르고 안정적이면서도 화면은 큰 기기를 원하게 된다.

스마트 디바이스에 대한 현대인의 의존도는 높아갈 일만 있다. 눈을 보호해야 할 때다.

♣ 커머스 - 오프라인 매장은 직격탄을 맞았고, 과거 유통망은 비용만 잡아먹는 애물단지가 됐다.

온라인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게 대세임은 알겠으나, 이미 여기에도 선구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데다 누구나 이쪽으로 기웃기웃 대다 보니 시장이 완전 레드 오션이 돼 버렸다. 어쨌든 '오프라인 〈 온라인'의 추세는 가속되고 피 튀기는 경쟁을 통해 적자생존의 피라미드 재배열이 이루어지리라 예견된다.

온라인 커머스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스트리밍을 통해 쇼핑한다는 뜻의 숍 스트리밍(쇼핑 Shopping + 라이브 스트리밍 Live Streaming)을 꼭 기억하자. 국내에도 발 빠른 스타트업 회사가 서비스를 개시했다. 쉽게 이해하자면 TV 홈쇼핑을 모바일로 옮겼다고 보면 이해가 빠르다. 일정 시간 방송하고 마감하는 절판 마케팅을 기반으로 하는 홈쇼핑과 달리 숍 스트리밍은 원하면 반복 시청·구매도 가능하고, 매출은 높지만 가혹한 비용 부담으로 원성이 자자한 홈쇼핑보다 저렴한 수수료가 큰 강점으로 알려져 있다.

워낙 변화가 빠르다 보니 또 다른 새로운 서비스가 언제든 론칭될 수도 있다. 이런 서비스를 성공시킬 수만 있다면 인생 '게임 오버'다.

♣ 디지털 마케팅 - 과거 4대 매체(TV, 신문, 라디오, 잡지) 광고를 뜻하는 ATL(Above The Line)의 위세는 쇠퇴하고 대세는 디지털 마케팅이다.

"현재의 추세가 계속된다면 3년 이내에는 디지털 광고가, 10년 이내에는 모바일 광고가 전체 광고 시장의 절반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 P 169

ATL / BTL(Below The Line)로 구분했던 전통적인 마케팅 방식에서 최근에는 페이드 미디어(Paid Media - 다른 매체에 돈을 지불하는 광고), 오운드 미디어(Owned Media - 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미디어 매체), 언드 미디어(Earned Media - 소셜미디어와 같이 고객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지만 통제 가능성은 떨어지는 마케팅 채널)로 옮겨가고 있는데, 2000년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언드 미디어가 이제는 미디어의 한 축이 되었다.

♣ 빅데이터 - '21C를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자원은 원유가 아니라 데이터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데이터의 수집부터 활용, 가공을 통한 재판매까지, 데이터 관련 산업은 계속 발전하여 커다란 밸류체인을 형성하리라는 예상은 시대의 흐름이며, 우리나라는 2020년 8월 5일 데이터 3법 개정안 시행으로 '데이터 이코노미'는 더욱 탄력받을 것으로 점쳐진다. 이 발전과정에서 네이버 '각'과 같은 첨단 데이터센터 설립은 필수적이다.

빅데이터와 대치되는 개념으로 '스몰 데이터'도 기억해 두자. 개념을 창시한 미래학자 마틴 린드스트롬에 따르면 수많은 원소스로부터 기계적으로 분석·도출한 빅데이터에 비해, 풍부한 통찰력과 고객과의 접촉을 기반으로 한 개인적 경험에 기반한 특정 자료를 스몰 데이터로 칭하고 이런 정보야말로 정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 금융 - 기존 은행들은 비대면 온라인 서비스를 강화하고, 인터넷전문은행들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실버 연령대까지 이제 간단한 입출금 업무는 모바일 뱅킹으로 처리하지만 기대를 모은 오픈뱅킹 서비스는 이제 시작 단계고, 인터넷전문은행은 기존 금융권에서 대면으로만 진행이 가능했던 대출 업무까지 비대면으로 전환했고 성과를 내고 있다. 제3의 인터넷전문은행 토스뱅크가 설립되고 제대로 된 '메기 효과'를 기다려본다. 아울러 공인인증제도 폐지로 사설 인증 시장도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없다.

금융권과 기존 플랫폼의 결합은 화이트 라벨링(다른 회사가 생산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판매자가 자신의 브랜드를 사용해 고객에게 판매 및 제공하는 것. EX - 네이버통장(미래에셋대우), 대한항공 카드(현대카드)) 현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금융산업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금융 서비스의 주도권이 기존 금융회사에서 핀테크 기업과 플랫폼 회사로 넘어가는 트렌드를 잘 보여 준다.

변화는 정신없이 빠르고 심각하다. 편의상 6개 분야로 나누어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코로나'라는 상황 변수는 우리에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선사했고, 변화의 선봉은 모바일임을 확실히 깨닫게 하는 <모바일 미래보고서 2021>이다. 또 다른 한 해가 아니라 특별한 의미에서 내년을 예의 주시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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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의 품격은 말투로 완성된다 - 말 따로 마음 따로인 당신을 위한 말투 공부
김범준 지음 / 유영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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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인생 100세 시대라지만 50이면, 이젠 후반전을 준비해야 하는 나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자리매김하고 '말투' 관련 서적 몇 권을 낸 김범준에게 50 평생 가장 중요한 교훈은 말로써 나를 표현하는 방법, '말투'라는 깨달음이다. 한 마디 말로 천 냥 빚도 갚는다 하는데, 세치 혀로 상대에게 씻을 수 없는 불편함 혹은 불쾌감을 준 저자의 후회가 이 책을 탄생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의 부제는 "말 따로 마음 따로인 당신을 위한 말투 공부"고, 간단한 요약은 이미 표지에 되어 있다.

"핀잔이 아닌, 격려의 말투를!

자만이 아닌, 겸손의 말투를"

예로부터 선현들은 '언행일치'라 하여, 말 따로 행동 따로인 경우를 경계했다. 이 말속에는 깊은 뜻이 포함되어 있는데,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 있다면 그는 경계해야 할 인물이다. 책임질 수 있는 말만을 입 밖으로 내뱉어야 하며,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말아야 한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내실 없이 입만 나불대는 사람도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말이 많은 자보다는 말수가 적은 자가 대접받았다.

누구나 생각한 바는 뇌를 거쳐 말로 최종 표현된다. 축구로 보자면 마지막 골문을 여는 행위가 곧 말인 셈이다. 어부지리로 골을 넣을 수 없듯이 그 사람의 말투, 화법, 사용하는 단어 등을 보면 어느 정도 지적 수준은 물론 사람 됨됨이마저 파악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마음 따로 말 따로가 아니라면,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얕잡아 보는 사람에게서 존중이 담긴 말투가 나오진 않는다. 마음 수양이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냥 본인 감정이 나오는 바대로 걸러지지 않은 거친 감정 표현이 말로 쏟아져 나올 확률이 크다.

"당신이 먼저 말해보시오. 그렇다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이오." - P 7

말투는 곧 그 사람이다. 말이 곧 나다.

너나 할거 없이 자기 이야기만 하려고 하고 누군가 본인 얘기에만 귀 기울여 주길 바란다. 상대에겐 '좋아요'를 주지 않으면서, 나만 '좋아요'를 기대하는 심보다. 당장 TV를 켜고 고명한 패널들이 어떤 방식으로 토론 프로그램에 임하는지 시청해 보라. 그렇다면 말하는 자(Speaker)보다 듣는 자(Listener)가 된다면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지 않을까?

"말하는 건 기술이고 듣는 건 예술이다." - P 169

이 책은 말투나 화법에 관한 전술에만 치중하진 않는다. 왜냐면 말투는 최종 결과물이고 이에 앞서 본인의 인격 수양이 먼저 솔선수범돼야 하기 때문이다. 말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긴 하지만, 50대라면 생각해 봐야 할 자기 계발서에 가깝다. 여기저기서 많이들 말하는 교훈처럼,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고 과거에는 'A+'의 삶만이 목표였다면 이제는 'B+'의 결과도 감사히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건 현실 타협하고는 조금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과거보다 관대하고 긍정적일 필요가 있다.

나이에 걸맞은 정갈한 말투만 구사해도 매력 자본 수치는 급상승한다. 최소한 남한테 기피 인물로 낙인찍히거나 갈등을 조장하진 않는다. '라테는 말이야'로 대표되는 왕년 얘기는 이제 그만(주위 사람 누구도 '당신의 왕년'엔 관심이 없다), 세상 모든 걸 다 아는 척하는 꼰대 짓은 자기 자식도 반기지 않는다는 냉정한 현실을 깨닫자.

어디선가 들은 이 말이 모범답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말은 줄이고 지갑은 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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