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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KBS 선정 도서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Being Mortal)>는 미국에서는
출간 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책이다.
베스트셀러 작가 아툴 가완디가 자신의 전공이라고 할 수 있는
분야로 돌아와 쓴 책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쓴 자기 계발서인 <체크! 체크리스트(The Checklist Manifesto)>도
상업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좀 뜬금없었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미국에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 최상위권에 올랐으며, 아직까지도 그 인기는 식지 않고 있다.
가완디는 이번 책에서 '죽음'을 심도 있게 다룬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의학적 지식'을 전하는 게 이 책의 목적은 아니다.
(그런 지식은 오히려, 역시 죽음을 다룬 명저인 데이비드 실즈의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The Thing About Life Is That One Day You'll Be Dead)>에
좀 더 상세히 담겨 있다.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덧붙이자면
아툴 가완디와 데이비드 실즈 모두, 자신의 아버지의 노화와 죽음을 지켜보며
죽음에 대한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죽음이 추상에서 현실로 바뀌는 순간은 역시 친족의 그것을 목격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문제의식을 요약하면
5장 '더 나은 삶'의 부제인
'누구나 마지막까지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존엄하게' 죽기를 원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것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여기저기 고장 난 몸은 일상을 유지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만들고,
기억력 감퇴와 감정의 급격한 변화, 판단 능력의 상실은
인간성(이라는 것이 만약 있다면)을 점차 사라지게 만든다.
아툴 가완디는 '요양원', '호스피스' 등
죽음을 대비하는 각종 의료 기관(및 제도)을 살펴보고
다양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어떻게 죽어 가는지를 담담하게 서술한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해,
저자 본인의 아버지가 죽는 장면으로 끝나는
가완디의 여정은 시종일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Everyman)>이나(실제로 가완디는 이 소설의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Stoner)>를 감동 깊게 읽었다면, 이 책들의 클라이막스이자
마지막 장면인 주인공의 죽음이 기억 날 텐데,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논픽션인데도
그런 소설들의 마지막 장면을 계속 연이어 놓은 것 같은 묵직한 감동이 있다.
책을 읽다 보면, 미국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를 느끼게 만드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저자가 비인간적인 죽음의 터전으로 여기는 '요양원' 문화는
한국의 대부분 가정에서는 아직 그조차 꿈과 같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평균 수명이 계속 늘어나고
'은퇴' 뒤 남은 노후 기간이 점차 길어지는 현실과
죄책감과 부담 사이에서 노인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고민들은
미국이나 우리나 같기 때문에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이야기는 한국인에게도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구체적으로 하나만 말하면 한국에서도 최근 많이 보편화된
'무의미한 연명 치료' 거부가 왜 의미 있는지에 대한 확실한 답을 준다.)
더 나아가 아툴 가완디의 성찰은 단순히 '죽음'이라는 현상을 넘어서는 깊이를 갖고 있다.
<타임 푸어(Overwhelmed)>를 보면 '시간 시야(Time Horizon)'라는 개념이 나온다.
젊은이들에게는 '지금 당장'과 함께 '먼 미래'도 하나의 지평선 안에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노인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내일 당장' 죽을 수도 있는 그들에게는
'지금 이 순간'을 제외한 시간은 의미가 없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삶에서 정말 중요한 일부터 당장 실천하게 된다.
노인들에겐 미래를 위한 준비라는 게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카스텐슨 교수의 '사회정서적 선택 이론'과 더불어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이야기가 나오는
4장에서 가완디는, '생명의 덧없음과 씨름해야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의 관점 사이에 얼마나 깊은 틈이 있는지'를 이야기하는데,
이는 앞에서 언급한 '시간 시야'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정의해 버리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때문에 이 책은 결코 '노인'이나 '노인을 가족으로 둔' 사람들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5장의 부제 '누구나 마지막까지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를 다시 곱씹어 보면,
'마지막까지'라는 구절보다 더 중요한 게 '가치 있는 삶'이라는 걸,
아툴 가완디는 이 훌륭한 책을 통해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