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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의 탄생 - 차가움을 달군 사람들의 이야기 ㅣ 사소한 이야기
톰 잭슨 지음, 김희봉 옮김 / Mid(엠아이디)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냉장고의 탄생>>(톰 잭슨, 김희봉, MID, 2016)
원제는 "Chilled:How refrigeration changed the world, and might do so again"입니다.
차가움:냉장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었으며, 다시 한번 어떻게 바꿀 것인가 정도가 되겠네요.
우리말로도 냉장고와 관련된 형용사가 차갑고, 시원하고, 서늘하고...처럼 제법 많은 말들이 있듯이 영어만 해도 chill, cold, freeze...많은 걸 보면, 고대로 거슬러가서 오늘까지 이어지는 냉장고의 역사만큼이나 많은 얘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스포일러 같지만, 이 더위에 읽을만한 책으로 제목만큼 시원한 책으로 알고 고르셨다면 실수하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옮긴이의 글이 있는 책을 좋아하는 저는 김희봉님의 서문을 꼼꼼이 읽어봤습니다. 영문판을 사놓고도 20페이지를 못 넘겼던 저로서는 이런 옮긴이의 꼼꼼함이 드러나는 글솜씨라면 이번엔 끝까지 제대로 읽을 수 있겠구나 싶어 아주 반가왔습니다. 다 읽고 나면 느끼실텐데, 저자인 톰 잭슨은 굉장히 불친절한 사람입니다. 굉장히 박식한 사람인 것은 분명한데, 이 양반 글을 읽다보면 전형적인 너드nerd의 특성이 보입니다. 곳곳에 느낌표가 등장하고(스스로 감탄하며 재미있는 표현이라고 !를 사용한 것이고, 옮긴이도 재치있고 깔끔하게 번역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재미있는 표현도 많이 나옵니다만, 시시콜콜한 과학적 원리와 관련된 인물들이 홍수처럼 쏟아져나오고 게다가 시간의 흐름도 왔다 갔다 합니다. 책을 제대로 읽기도 전에 시원하려고 골랐던 책이 성미급한 분이라면 흉기로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불끈 드실 겁니다. 그래서 더더욱 옮긴이 서문을 길잡이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 더, 정말 냉장기술의 역사를 건너뛰고 냉장고의 탄생부터 보고 싶은 분이라면 당장 8장 냉장고의 탄생부터 읽으시면 됩니다.
냉장고의 원리를 알고 싶으신 분이라면 170페이지 정도를 열어서 6장 뒷부분의 1852년에 발견된 줄-톰슨 팽창이 냉장고의 원리라는 것을 확인하시면 되겠습니다.
냉장고에 관한 책이 드물다는 얘기를 듣고 보니,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스티븐 존슨, 강주헌, 프런티어, 2015)가 떠오르게 됩니다.
스티븐 존슨의 이 책에서는 냉기의 역사를 1834년 얼음왕 프레더릭 튜더로 시작하여 냉동식품의 아버지 클래런스 버즈아이를 거쳐 1902년 윌리스 캐리어의 우연한 발명으로 탄생한 에어컨까지 이어지고, 세계 전역의 거주 문화가 바뀌고 수백만 명의 갓난아기가 인공적으로 태어나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냉장고의 탄생>>은 여기서 공간과 시점을 수메르의 도시 테르카로 기원전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고, 현재를 넘어서서 별도의 12장 한 챕터를 고스란히 냉장고의 미래로 할당하여 아직도 끝나지 않은 냉각 기술이 가져올 변화를 소개합니다.
인류의 저장, 보관 기술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삶을 변화시킨 냉장고를 그동안 우리는 너무나 소홀했었다 싶어서 읽는 내내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경험은 즐거웠습니다.
다만, 김치 냉장고를 만들어낸 자랑스러운 한국 얘기는 반가왔지만, 1995년에 김치 냉장고가 발명되었다는 저자의 주장은 아쉽습니다.
최초의 김치 냉장고는 당시 금성사(현 LG전자)가 1984년 3월 출시한 GR-063이었습니다. 1965년 4월 국내 최초 냉장고 GR-120에서 한국의 냉장고의 역사가 쓰여지기 시작했고, 지금도 냉장고는 역시 LG전자지요!!!
캐나다산 참치가 1972년 뉴욕 JFK 공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왔던 생선이 비행기를 탔던 역사가 빠진 것도 조금 아쉽습니다.
(<<스시 이코노미>>(사샤 아이센버그, 김원옥, 해냄, 2008))
또 하나 공들여서 지나치게 꼼꼼하게 설명하던 역사와 달리 뒷부분이 약간 용두사미가 되는 것도 다소 불만입니다. 저자 정도라면 스위스 LHC 얘기를 직접 살아있는 과학자와 나눈 얘기도 넣었을 수도 있었을텐데 싶기도 합니다.
"냉장고가 순간이동장치를 만들어낼지, 인공지능이나 최신의 컴퓨터 장치를 만들어낼지는 굳이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없다.어떻게 되든 나는 행복할 것이다...이제 모든 것을 다 말했고 끝났다."
뭔가 조금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