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완벽한 시작 - 알, 새로운 생명의 요람 사소한 이야기
팀 버케드 지음, 소슬기 옮김 / Mid(엠아이디)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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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tvn에서 시작한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의 매력에 푹 빠진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 고백하건대, 저도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 나오는 소소한 얘기들처럼 "알아봤자 별 소용없을" "사소한 것들"에 대한 관심이 참 높습니다.  

MiD에서 나온 '사소한' 책으로는 "사소한 것들의 과학", "프루프", "헤어", "냉장고의 탄생", "바퀴, 세계를 굴리다"가 모두 출판사 기준으로 "사소한 이야기" 시리즈에 꼽히나 본데, 아니나 다를까 다 읽은 사람으로 다 읽었다고 얘기하기가 좀 거시기 합니다. 

팀 버케드는 전작인 "새의 감각"(팀 버케드 , 노승영,  에이도스,  2015)에서는 이미 '바다오리'의 길 찾는 능력에 대해서 자각磁覺이라는 한 챕터를 할애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호기심 많고 사소한 것에 목숨 거는 사람의 입장에서 "알"이라는 것을 그냥 넘길 리가 없을 테고 이렇게 책으로 다시 소개가 되었습니다. 저는 좋은 책의 장점 중의 하나가 다음 읽을 책을 연결해주는 책으로 꼽습니다. 그런 면에서  "새의 감각"과 "침묵의 봄"(레이첼 카슨, 김은령, 에코리브르, 2011)과 연결이 되는 이 책은 좋은 책이 분명합니다.  

역자인 소슬기씨의 서문에 나온 대로 과학자답게 매 장에서 "어떻게"와 "왜"라는 질문을 분리하여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매혹적이었습니다.  
""어떻게"라는 질문은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것인 반면 "왜"라는 질문은 더 근원적인 것이다.""  
번역서에서 역자의 임무의 막중함과 별개로 저는 꼭 역자의 글을 찾아봅니다만, 보통 책 맨 뒤에 보일 듯 말 듯 나오는 것이 보통인지라 이번 책처럼 맨 앞에 등장하는 역자 서문은 좀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미주까지 꼼꼼하게 하나하나 번역한 솜씨며, 특히 본문에 언급한 새의 이름을 모두 국제 조류학 협회에서 찾을 수 있는 정식 명칭과 대조하여 국문명과 영문명, 학명을 맞춰놓은 것을 보고는 이 양반도 참 "사소한"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특히 오색방울새, Goldfinch는 "황금방울새"(도나 타트, 허진, 은행나무, 2015)가 사실은 오색방울새였음을 알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출판사도 이미 이런 사실은 알고는 있었지만, 작품 속의  카렐 파브리티우스의 그림 제목을 우리가 이미 "황금방울새"라고 부르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다더군요) 

저자는 알의 생김새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우리가 이상한 모양의 알을 바다오리만큼 많이 알고 있는 유일한 다른 종의 새는 닭'이라고 했지만, 저는 '전 세계 60억 마리의 산란계가 매년 1조 개의 알을 생산하는 것을 고려하면' 다른 새의 알이라고 하면 그저 타조알처럼 큰 것 외에 별다른 무늬랑 색깔이 있는 것이 있는 줄은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p.381부터 이어지는 칼라 사진을 보면 과연! 하고 충격을 받으실 겁니다) 
그러고 보니, "치킨로드"(앤드루 롤러,  이종인,책과함께,2015)는 부제가 '문명에 힘을 실어준 닭의 영웅 서사시'인데 사놓고서 아직 읽지 못한 책인데, "가장 완벽한 시작"을 읽었으니 새롭게 시작해봐야겠습니다. 

저자는 꽤 친절한 편이어서 책을 읽다보면 왜 그렇게 집요하게 바다오리의 알에 집중하는 지도 친절히 얘기해줍니다. (p. 152~153) 
5장에서는 알 색의 진화에 대해서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중 알프레드 러셀 왈리스의 주장에 대해서 뭐가 맞고 뭐가 틀렸는지를 소상히 밝혀줍니다. ("말레이 제도"(앨프리드 러셀 월리스, 노승영,지오북,2017)이 최근에 나왔는데, 이것도 챙겨봐야겠습니다.) 

책의 흐름이 잔잔하면서도 논리적이라 따라가는 데 큰 부담은 없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숙주 새와 탁란하는 새의 '군비경쟁'이 초래하는 공진화나, 침투하려는 미생물과 알과의 '군비 경쟁'이라는 표현이 좋았습니다.  

책을 읽기 전에 사전에 알고 있던 지식이라고 해봐야 '달걀', '감동란' 정도밖에 없던 저라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서 삶은 달걀의 어느 쪽 끝을 깨뜨려야 하는가를 두고 릴리푸트 왕국 사람들이 싸웠던 얘기는 옛 추억을 떠올리는 좋은 거리였습니다.  

p.307부터의 얘기는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사자성어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병아리가 부화를 시작하면 세 시간 안에 껍질을 깨고 나와야 질식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는데, 병아리가 껍질을 깨뜨리고 나오기 위해 껍질 안에서 아직 여물지 않은 부리로 사력을 다하여 껍질을 쪼아대는 것을 줄(啐 : 떠들 줄)이라 하고, 이때 어미 닭이 그 신호를 알아차리고 바깥에서 부리로 쪼아 깨뜨리는 것을 탁(啄 : 쫄 탁)이라 한다고 합니다. 줄과 탁이 동시에 일어나야 한 생명이 온전히 탄생하는 데 이 역시도 몇 분밖에 걸리지 않는 명금류부터 하루 이상 걸리는 새까지 다양했다는 것도 이번에 얻게 된 "알아봤자 어쩌면 별 소용없을" 지식이지 싶습니다. 

하지만 아래의 저자의 주장을 듣고 인간이 이 지구에 끼친 엄청난 영향력을 두고 섬뜩함을 느꼈다면 저만의 착각일까요? 
p.335 
"완벽은 상대적인 것이다. 새알이 완벽하다는 것은 여러 압력 사이에서 최적의 타협을 본 결과라는 측면에서의 이야기이다. 이 선택압력이 변화면 지금 완벽한 것도 미래에는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 

또 "알아둬도 쓸데없을" 얘기가 늘어는 것인가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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