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
야마구치 슈 지음, 김윤경 옮김 / 다산초당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작은 틀 같은 고시원 방에서 짐을 싸던 나는 책상 한 쪽에 놓여있던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책의 제목과 함께 겉표지에 실려 있는 펜을 나는 주저 없이 집어 들었다. 지금 나는 그 누군가의 대화가 절실하기 때문이었다. 어수선한 마음을 다른 이에게 털어 놓기는커녕 내색조차 하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는 날들을 보내고 있는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심산이었다.

철학은 반드시 답을 찾는다얼마나 기분 좋은 믿음인가.

딱딱하고 고리타분하게만 여겼던 철학. 그럼에도 현실로 답답해지면 주섬주섬 철학책을 손에 쥐게 되는 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철학의 힘에 기대고 있는지도 모른다. 반면 다수의 철학 입문서를 끝까지 정독하지 못하고 그저 읽었다는 만족감이 전부였다. 마치 해내야 하는 과제처럼. 그런 면에서 보면 현실에 중점을 두고 철학과 사상을 접목시킴으로써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하는 것은 물론 가끔은 자신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때로는 모르고 있던 부분을 알아가고 한번쯤은 몇 번씩 되짚어보며 나에게 맞는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저자는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도구를 하나씩 꺼내 보며주었다. 페르소나는 실제 자신의 모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가면으로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으며 인격이 다면적인 만큼 장소나 상황에 따라 페르소나를 바꿔 쓰면서 인격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타고난 능력이란 없기 때문에 경험을 통해 인간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말에 나는 속내를 들킨 것 같아 당황스러웠다. 특히 사람은 경험과 학습에 의해 얼마든지 배울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경험을 초기화 시켜야 한다는 말은 지금까지 같은 분야의 공부를 되풀이 하면서 이미 배웠다는 생각으로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머릿속을 타볼라 라사 상태로 되돌린다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반복되는 경험으로 더 완벽한 배움에 더 가깝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입에 달고 사는 혁신, 대부분 앞으로의 일을 시작하는데 초점을 맞추는데 오히려 지금까지의 방식을 잊는 것, 이전 방식에 종지부를 찍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말에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까지 나 역시는 새로운 마음을 가져야 할 때면 지나온 경험과 시간을 끌어안은 채 내일을 새로운 출발로 삼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변화를 위해 가장 기본적인 지금까지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을 바꿔야 한다는 현실을 자각하고 변화를 준비하는 과정인 행동에 집중해 보기로 한다.

저자의 이야기 중 권력거리는 흥미를 갖게 했다. 기장이 조종할 때 사고 발생확률이 더 높은 예를 들었는데 권력의 거리가 큰 문화권에서는 부하직원과 상사가 대등할 수 없고 결국은 부조종사가 상사의 잘못된 부분에 의견을 제시하지 못해 사고가 나는 것이다. 비교적 권력의 거리가 큰 일본처럼 우리나라도 비슷한 분위기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권력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 리더나 상사는 자신에게 반대하는 의견을 찾아 나서고 수용하는 무기를 써야한다. 나에 대해, 인간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부분을 해부하듯 떨쳐 보고 나니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날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에 얼굴이 홧홧해졌다.

저자를 통해 얻게 된 삶의 무기를 장착해가며 중심이 잡혀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자리에 사회에 관한 핵심 콘셉트는 아직 사회생활에 직접적인 경험이 없어 더 많은 집중을 기울여야 했다. 반면 막연하게만 여겼던 사회분위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에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시작으로 머리로만 생각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최적의 접근법으로 찾으려만 하지 말고 만족할 수 있는 해답을 휴리스틱으로 추구하는 유연성을 무기로, 페미니스트의 선구자인 시몬드 보부아르의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말은 격한 공감을 갖게 한다.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는 압력이 가장 강하게 작용하는 문화를 가진 일본과 우리나라도 비슷할 것이다. 예전에 비하면 양성평등이나 여성 진출이 많아졌다고 하지만 뿌리 깊은 남아선호 사상의 존재감을 실감하는 부분도 많다. 우리가 굉장히 강한 성 편견에 지배된 국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은 성 편견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무지각에서 벗어나는 한다는 무기를 파라노어아와 스키조프게니아를 비유하여 행선지가 정해져 있지 않더라도 위험할 것 같은 판단이 서면 재빨리 도망쳐야 하는데 시선을 응시하고 귀를 기울여 주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확인함으로써 도망칠 수 있는 용기를 무기로 사고에 관한 핵심 콘셉트는 지금의 나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마음을 바로 잡았다.

시니피앙과 시나피에를 중심으로 사고의 촉을 넓혀 한층 더 세상의 현실과 이치를 파악하려면 어휘력을 길러 무기로 우리가 갖고 있는 직관적인 세계관을 애초에 주관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 세계관을 확인하지도 말고 버리지도 않는, 일단 잠시 판단을 멈춰 보는 중용의 자세를 무기로 삼으라는 말에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고 코끝이 싸아해졌다. 지금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우등생에 모범생으로 자란 나에게 공부는 자존감을 세워주는 길이었는데 수능 때부터 공부로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원하는 대학교에 들어가야 한다는 의지로 네 번의 수능을 치르고 대학생이 되었다. 재수, 삼수, 사수까지 네 번의 수능을 치르고 대학생이 되고 보니 남들보다 늦었다는 조바심을 달고 살았다. 그래서 대학생활도 조기졸업을 목표로 학업이외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그동안 모른척 하고 있었던 내 꿈이 조금씩 되살아났고, 급기야 나는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시공부를 시작했다.

나는 올해 30세로 대학교 3학년 때 휴학을 하고 외무고시 공부를 하고 있다. 이렇게 결심하기까지 나도 쉽지 않았지만 주변에서는 나보다 더 걱정을 하고 있어 부담이 되곤 한다. 다시 외무고시 시험을 준비하면 적어도 2년은 걸리기 때문에 다시 또 늦어진다는 사실이, 또 수능 때처럼 한 번에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함에 망설이기도 했지만 지금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 용기를 냈다. 젊음을 오롯이 책상 앞에 앉아 보내면서도 꿈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곤 했었다. 그렇게 4년을 보내면서 손에 쥐어지지 않는 결과에 나는 조금씩 지쳐갔고 몸은 물론 마음까지 지쳐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에 짐을 싸게 된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려보았던 미래, 내가 바라는 미래는 어쩌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함은 자신을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도구로 막연하고 불안하던 내일을 마주하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틀을 구축하려면 이분법을 넘어서는, 예측에 의존하는 것에서 벗어나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한다는 방법이라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자신감도 갖게 되었다.

 

가슴 한 쪽에서 무엇인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나는 다시 짐을 풀기 시작했다. 무심했던 손길에 힘을 주어 그동안 널브러져있던 시간을 정리하며 막연한 불안함 대신 새롭게 시작할 힘이 느껴졌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내가 바라는 미래는 스스로 내가 미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또 다른 나를 만나기 위해 당당한 발걸음을 내딛는다. 자신감으로 중무장한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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