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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 용산 ㅣ 걸어본다 1
이광호 지음 / 난다 / 2014년 6월
평점 :
이광호,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는 가볍게 읽고 넘기기에는 좀 어려운 책이다.
사실 나같은 범인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사유가 곳곳에 녹아있고 일상적인 의미의 산책이라 하기에는 묵직한 걸음걸음이 족족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 이 책은 용산이라는 장소의 특정성에 글쓰는 산책자인 '나'라는 익명의 실존이 돌아다닌 흔적이다.
- 용산과 세월호 사이의 서로를 마주보는 비극의 연대기와 '국가'의 참혹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만 했다. 무력감과 죄의식은 오래고 익숙한 것이나, 한 시대의 애도는 한 개인의 애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어떤 글쓰기는 피할 수 없이 애도의 제의가 될 수밖에 없다. 예정된 망각과 마비와 자기기만으로부터 끈질긴 애도를 지키는 것은 문학적인 동시에 정치적인 기다림의 문제이다.
고등학생 시절, 어쩌다 보니 경기도 부천에서 명동까지 학교를 다녔다. 그때는 급행전철이 없었기 때문에 스무개가 넘는 역을 일일이 정차했다가 서울역에서 내리는 완행열차를 탔었다.
그 때, 1년에 한번 꼴로 있었던 철도청 파업 때문에 간간이 다니던 전철에서 거의 초주검이 되어 서울역까지 향하고 있을 때 남영역 광고판에 붙어있던 농심 라면 봉지들을 보며 한숨을 쉬던 기억이 있다.
또 어떤 겨울 밤. 전철을 타고 가다 속이 안 좋아서 남영역에 내려 토한 적이 있었다. 스크린 도어도 없었던 그때, 한밤중에 양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적막을 견디던 기억이 난다.
- 철길 옆에 서 있는 광고판에는 광고라고 쓴 한자 밑에 시골 사람들로 보이는 한 쌍의 중년 남녀의 그림이 있다. 그 뒤에 무섭게 올라가고 있는 거대한 주상복합 빌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70년대풍의 광고판은 남영역이 내재한 어색한 농담과 같다.
얼마전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에 묘사된 광고판을 찾으려고 가봤더니 광고판은 전부 흰색으로 덧칠되어 있었다. 다만, 중고등학생 시절 몇번씩 보며 지나치던 농심 라면의 봉지모양은 들뜬 페인트를 뒤집어쓴 채 흔적만 내보이고 있었다.
아이가 발레수업을 받는 50여분동안 나는 바깥에서 기다리는 일이 잦았다. 다른 엄마들처럼 나도 4인치짜리 스마트폰 화면에 코를 박고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다 TV를 잘 보지 않게 되면서 인터넷 정보도 금방 흥미를 잃었다. TV가 줄 수 있는 호기심은 TV와 소원해지는 순간 사그라들었다. 그 자리를 다행스럽게도 책을 보며 채울 수 있었다.
한 글자, 한 문단을 허투루 읽을 수 없었던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설탕이 안 들어간 줄 알고 샀던 커피에서 단 맛이 나 당황스러웠지만 그런대로 마시면서 읽어내려 갔다.
- 어떤 장소가 제의적인 공간이 되는 것은 우연에 기댄 것이다. 스쳐지나가던 골목길과 육교와 작은 공원과 카페가 어느 순간 가벼운 마음으로 지나치지 못하는 장소가 되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이 만들어지는 것은 오로지 사람의 의지는 아니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만드는 것은 우연이라는 이름의 사소한 운명들이다. 그 우연들에 운명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겠지만, 어떤 우연들은 삶을 일거에 다른 시간으로 돌려놓고 되돌아오지 못하게 만든다. 그 우연들의 의미를 찾아낸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삶은 피할 수 없이 잔혹해 보인다.
원치 않게 단 커피를 마셔야 하는 지금, 아이의 발레교습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지금. 거듭된 우연을 찾아야 할 필요를 원래 느끼지 못했으나 왜 되는 일이 없냐고 갑자기 한탄하고 싶어졌다. 이 더운 날 왜 나는 에어컨도 안 나오는 이곳에서 살 찔까봐 설탕을 줄이고 있으면서도 버리지 못하고 단 커피를 마셔야 하는가? 같은.
그 의미를 찾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자기 신념대로 전쟁터에 나가 이슬처럼 사라져버린 젊은 목숨들이 '전쟁기념관'이라는 거대한 비석 안에 봉인되어야 하는지 그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것처럼.
- 삶이 갖고 있는 악의에는 치유법이 없었다. 다만 '돌이킬 수 없음'을 이해하는 것만이 유일한 지혜였다.
초등학교 때 나는 시골에서 살다가 서울로 전학을 왔다. 초등학교야 고만고만하게 사는 아이들이 모여 학교를 다니던 시기였으니 그런 걸 몰랐는데 중학교에 들어가니까 문득 깨닫게 된 게 있었다. 바로 '빈부격차'.
부모님은 원래 시골 사람들이었고 현금이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 분들이라 중학생 여자 아이 둘에게 늘 회수권만 두장씩 쥐어 학교에 보냈다.
어느날 어찌하다 같이 다니던 친구가 물주라며 어떤 여자아이를 잡더니 여덟이나 되는 친구들의 밥을 사게 했다.
그 친구는 너무나 호기롭게 지갑을 열었고 아무렇지 않게 밥값을 계산했다. 그 아이는 부자구나, 생각한 것도 잠시. 다른 아이들의 지갑에도 만원짜리 지폐가 여러장씩 들어있다는 걸 그 날 알게 되었다.
- 어떤 장소에서 벗어난다 하더라도 그곳의 시간으로부터는 벗어날 수 없다. 너의 장소를 벗어난다 해도 너의 부재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원래부터 돈 쓰는 규모나 사는 방식을 다르게 배워온 아이들 속에 시골에서 자랐고 회수권만 달랑 두 장 들고 다니면서 지갑도 없는 나같은 아이는 동떨어진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최근에 집안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재택업무를 알아보고 면접을 보던 날, 공사 건물이라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대기실에 앉아 책을 읽었다. 결핍이라는 주제는 용산에 내재되어 있는 빠른 속도만큼이나 존재감이 커지는 부분일 것이다.
- 이 유서 깊은 달동네는 단기 체류하는 젊은 외국인들과 제3세계로부터 온 비정규직 이주 노동자들이 함께 거주해왔다. 한남동의 '장기 체류자들'과 비교한다면, 해방촌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단기 체류자들'은 이 동네가 오래 머물 수 없는 시간의 이름이었음을 말해준다.
- 사람은 어디서든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가파른 골목 위에 세워진 '의식주'의 공간들. 이 계단이 식민지 시대 일본의 전쟁 군인들을 기리던 호국 신사로 올라가는 길이었다는 것은, 이 거리의 잊힌 비밀에 속한다. 희미하고 좁은 골목에서 나온 등이 굽은 할머니가 폐지를 줍는 시간, 데이트하는 젊은 연인들이 손을 잡고 계단을 오르내린다.
- 폐허는 공간 너머의 시간이 있다는 것, 공간이 될 수 없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서울, 특히 용산구와 중구(내가 살던 곳이다) 일대는 시간의 흐름이 촘촘하다는 느낌이 든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도 좁고 집과 집 사이의 간격도 좁다. 넒은 운동장은 고등학교나 가야 볼 수 있고 한적한 곳은 잘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 살고 있는 인천의 택지개발지구는 그에 비하면 좀 느슨한 느낌이 든다. 이제 막 개발이 되고 있어서 유입되는 사람들도 적고 이른 아침에 출근하는 일군의 사람들이 빠져나가면 한낮에는 도로에 다니는 차량도 적은 편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인천의 한 타운의 거리와 용산의 거리는 간격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이곳으로 이사 온 뒤 무언가를 키우는 일의 평범한 위로를 포기할 수 없어 작은 화분을 사들인 적이 있다. 죽은 식물을 화분에서 뽑아내고 새로운 식물을 옮겨 심는 일이 반복 될 때마다, 생명의 사소함과 죽음의 평범함에 대해 무감해졌다.
푸석한 흙밖에 남지 않게 되는 빈 화분들의 무덤과 잘 일궈진 땅을 임대해 간간이 나오는 소작물로 여름을 날 수 있는 우리 동네. 용산과 우리 동네는 아마 그 정도의 간격이 있을 것이다. 시간의 느슨함 또한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일 것이므로.
그러나 내가 살던 곳도 결국은 사람의 손을 탈 준비를 하고 있다. 올해 임대했던 텃밭은 점점 좁혀오는 포크레인과 개발의 바람을 타고 내년에는 임대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햇빛 뜨거운 날 조그마한 풀뱀이 토마토 잎사귀 밑 그늘에 쉬러 들어갈 만큼 깨끗한 환경도 조금 있으면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풀뱀의 안위 따위 다 잊힐 것이다.
용산에서는 고작 그늘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투쟁하던 사람도 죽인 일이 있었으니까..
- 사람들은 왜 망루에 오르고 타워크레인에 올라가는가? 혹은 왜 망루에서 불타 죽어가거나 타워크레인 위의 칼날 같은 바람 속에 혼자 서 있어야 할까? 이곳은 말을 박탈당한 사람들의 장소이다.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다만 작은 한식당과 호프집과 복집을 생계의 수단으로 삼았던 사람들과, 의식주의 공간을 빼앗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도 잘 아는 철거민들이었다.
이리 보면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는 비장함마저 감도는 느낌이 든다. 해방촌과 청파동, 서부이촌동과 남일당 터, 후암동과 이태원 등. 어쩔 수 없이 세월의 풍파를 겪어야 했고 거기서부터 출발해 한남동과 동부이촌동의 부촌을 형성했던 사람들의 기록이 나오지만 아직까지 현재진행형인 사람들도 그곳에 남아 있다는 걸 끊임없이 상기시켜 준다.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작가는 이리 얘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애도는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기다림이다. 나는 너라는 부재 속에 대기한다.
산책이란 사유하는 것이고 일상이란 살아가는 문제일 것이다. 사유가 빠진 일상은 껍데기만 남기 마련이겠지만 가볍지 않은 일상에서도 다행스런 부분을 찾아내기 위해 산책을 한다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