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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은둔자 - 완벽하게 자기 자신에게 진실한 사람
마이클 핀클 지음, 손성화 옮김 / 살림 / 2018년 10월
평점 :
우연히 읽게 된 <숲속의 은둔자> 는 나처럼 불혹의 나이에 세상살이가 지겨워져 떠난 사람이 아니라 갓 스물의 어린 남자가 자신의 인생을 '은둔' 하기로 결정하고 무려 27년간을 좀도둑질로 연명하며 살다 붙잡힌 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공개한다.
그의 이름은 크리스토퍼 나이트.
집안 자체가 조용하고 책 읽는 것을 중시하고 가난해서 생활력의 중요성을 어릴 때부터 체득하며 자랐던 사람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보안업체에 입사하며 일도 잘 했고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았다고 한다. 다만 그에게 부족한건 사회성이었다.
그 마저도 혼자 있기를 병적으로 좋아했던 게 아니라 단지 친한 몇명과만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던 중, 그는 갑자기 모든 걸 버리고 숲속으로 사라진다.
자신을 위해 차량구입할 때 연대보증을 서준 형도 잊어버리고 회사에 반납할 장비도 그대로 들고 간 탓에 가족들이 장비값까지 물어줘야 했지만 뒷일은 생각도 하지 않기로 한다.
현대사회에서 사라지지 못할 이유는 이렇게 겹겹으로 에워싼 관계와 의무들 때문이다.
오죽하면 '나는 내일도 출근한다, 왜냐면 내게 빚이 있기 때문에.' 라는 우스갯소리가 다 나왔겠는가.
그런데 현대사회는 조용히 빚 갚고 할 일하며 살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끊임없이 소비를 부추기고 뭔가를 사야할 것 같고 '남들도 다 빚지고 살아.' 라며 공통된 유대감을 요구한다.
생존을 위해 1000번의 좀도둑질을 했던 그는 7개월간의 감옥생활 후 오히려 더한 감옥을 맞닥뜨리게 된다. 겉으로는 자유로울지 모르지만 27년간 인연 끊고 살았던 가족의 집으로 돌아가야 했고 형이 주선해준, 차의 엔진을 분해하는 일을 혼자 창고에 틀어박혀 해야 했으며 매달마다 연방 법원에 출석하고 마약류 검사까지 받아야 했다.
저자 마이클 핀클이 그를 찾아갔을 때 그는 대뜸 묻는다. '내가 미쳤나요?'
7개월간 그를 만나러 교도소를 들락거렸던 저자 마이클 핀클에게 언뜻 교만하고 설교하는 어조로 귀찮다는 듯 대화를 했던 그는 다시 갇히지 않기 위해 사람들에게 가면을 쓴 채 살아야 한다는 걸 털어놓으며 '언젠가 숲으로 가 숲의 여인을 만나겠다' 고 한다. 그가 말한 '숲의 여인'은 자살을 암시한다는 걸 저자는 깨닫는다.
결론적으로 그가 자살하게 저자는 내버려두지 않았다. 크리스토퍼 나이트는 무사히 연방법원의 명령을 이행하며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되었다. 다시 보았을 때 그는 반항적인 기질을 버리고 온순하고 순종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완전한 고립이라는 것을.
가석방되어 나올 때 혼자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알선하려는 그에게 크리스토 나이트는 말한다.
'제발 나를 혼자 놔둬요.'
저자는 감옥에서 그가 한 말들 중 핵심을 알고 있었다.
'왜 사회를 떠났는지가 아니라, 왜 사회에 머무르고 싶어하는지가 중요한 질문일 수 있다.' 고.
이에 대해서도 저자는 이미 고찰했다.
"지옥, 그것은 타인이다." 라는 사르트르의 말을 빌어서.
애초에 그와 관계를 맺게 된 것도 결혼생활과 곤경에 빠진 커리어로 괴로울 때, 홀로 고립되어 숲에 가는 것을 좋아했던 에피소드를 편지에 풀어내어 크리스토퍼 나이트의 환심을 샀기 때문이었으니까.
그런데 책의 마지막으로 갈수록 은둔자였던 크리스토퍼 나이트가 싫어할 행동들을 하는 저자가 마음에 안들었다. 책을 낸다는 것도 오히려 그를 팔아 자신의 명성을 회복하려 했던 게 아닐까 했을 정도였다.
저널리스트들의 집요함은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의 결론을 맺기 위해 가족들이 싫어한다는데도 집요하게 전화하고 집까지 찾아가서 그를 난처하게 만든 행동과, 애써 겨우겨우 마지막 희망(숲의 여인을 만난다는 건 생의 끝을 의미하기도, 고귀하게 살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을 수도 있다)을 털어놓았는데 도움을 구한다며 여기저기 말하고 다녀서 그를 우습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 그의 이야기로 책을 썼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지막 선고를 받을 때의 크리스토퍼 나이트를 보고 저자가 '그는 항복한 것처럼 보였다. 이해는 갔지만 가슴이 미어졌다'고 할만큼 그는 유순하게 자신의 생을 받아들이고 살게 되었을까?
뭔가를 다시 시작하기에는 50대의 나이가 그의 발목을 잡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관계를 맺기 싫어하는 그를 억지로 관계의 최전방인 가족들 품으로 돌려보냈으니까.
그래도 나는 그가 사회에 적응하며 숲에서 홀로 지냈을 때 스스로 깨달았던 삶의 고귀함과 품위를 잃지 않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