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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끝났고 여자는 탈무드를 들었다
일라나 쿠르샨 지음, 공경희 옮김 / 살림 / 2018년 6월
평점 :

최근 페미니즘 이슈가 대두되면서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칭하는 여인의 탈무드 공략기(?)가 흥미로웠어요. 탈무드는 지극히 남성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진 성경의 '구약' 편을 바탕으로 랍비들의 문답이 기록되어 있다고 알고 있었거든요.
작가는 유대인 집안의 미국시민으로 엘리트 교육을 받고 출판사 편집인으로 일하던 커리어우먼이었어요. 유년시절 유대인학교에서 교육을 받아 유대절기를 지키고 풍습을 따르는 게 익숙하지만 결혼후 이주한 이스라엘에서는 새로 시작한 '다프 요미'와 회당에서의 강독 등이 모두 남성위주였고 여성도 자신 혼자였다고 해요. 또 탈무드 안에서 등장하는 여성들의 이미지는 '부정한 여성이거나 곧 부정을 저지를 여성'으로 묘사하는 데에도 당황하죠. 공부하는 것을 좋아해 해외출장후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공항에서도 탈무드를 펼치고 한참 보고 있으면 남성들과 나이든 여성들의 못마땅한 시선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매일 한장씩 탈무드를 공부하는 '다프 요미'를 계속해 나갑니다. 짧은 결혼생활을 끝내고 미국으로 돌아갈지 여부도 결정하지 않은 채 시작한 일이었는데 지적인 추구와 지금껏 몸에 밴 유대인식 습관들에 대해 명확히 알고자 하는 마음이 공부를 계속하게 한 것이죠.
여성의 눈으로 탈무드를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서두에 언급한 여성차별적인 시선에 대해 작가는 탈무드의 여성상이 아닌 경제활동으로 인한 수입창출이 가능한 남성과 대등하게 놓습니다. 여성, 남성의 생물학적 특성이 아닌 사회적 특성으로 이해하게 된 것이죠.
- 곧 확실해졌다. 탈무드의 기준으로 보면 난 여자가 아닌 남자였다. '남자'는 독립적이고 자립 가능한 성인인 반면 '여자'는 아버지나 남편의 집에 살지 않으면 의지처가 없는 비독립적인 사람으로 정의되는 경우, 난 후자에 속한다. (중략)
또 난 탈무드에 분개하지 않았다. 탈무드식의 분류를 거부하고 내가 직접 텍스트를 접했으니까. 전통적인 탈무드 해석들에는 남녀에 대한 가설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니 텍스트를 여성의 눈으로 보면 전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가능성이 짙다. p.019
탈무드를 전부 다 읽으며 공부하는 데는 무려 7년반이라는 시간이 걸린다고 해요. 공부를 좋아하고 이스라엘에서는 이방인으로 살면서 아직 이혼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작가는 7년 반후의 인생이 지금처럼 우울하면 어떡하지? 하는 고민도 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말 그대로 '다프 요미'!
한장, 한장 탈무드를 공부하면서 스스로를 대면하게 됩니다. 전 남편은 늘 구체적으로 만나는 신을 원했다면 작가는 모든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그림자 속에 신이 있다고 믿었죠.
- 타인에게 손을 내미는 누군가를 보면서, 모르던 능력을 발휘하는 친구를 지켜보면서, 신의 빛이 인간의 존재를 비춘다고 상상했다. 폴은 사람들이 태양을 올려다보는 식으로 신을 바라봤고, 그 빛을 못 보는 사람을 맹인으로 취급했다. p.93
- 폴이 결혼 생활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의사를 비친 것도 그럴 법했다. 폴에게 그것은 이혼을 의미할 터였다. 반면 나는 한동안 그림자 속에서 그의 존재를 느꼈다. p.97
남편과 이혼 후 '개미만한' 크기여도 남편이 있어야 좋다는 탈무드를 공부하며 작가는 여성들에 대한 온갖 부정적인 시선이 나열된 중에서도 직접 배우자를 선택한 용기있는 여인들을 찾아내요. 라브 히스다의 딸이 주요인물로 등장하는데 두 남자를 놓고 누가 좋으냐는 아버지의 질문에 둘 다 좋다고 당돌하게 말하고 실제로도 두 사람과 결혼합니다. 누가 먼저였고 누가 두번째였느냐가 달랐지요.
이젠 평생 사랑할 수 없을 거라던 작가에게도 탈무드를 공부하며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 사랑이 로맨틱한 것은 독특하고 평생 한 번뿐이 아니라, 잦아들고 다시 나타난다는 보장이 있기 때문이다. p.207
작가는 탈무드의 해석을 쓰며 결혼생활이 파탄났던 상황들에 대해 덤덤히 이야기합니다. 공부하기를 좋아하고 생활력은 약하며 트랜드에 둔감한 너드(Nerd) 성향의 자신과 강박적으로 완벽을 추구하던 전남편이 부조화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에 대해서요. 각자 완성된 성인으로 만나 결혼했기 때문에 부족한 점을 지적만 해대고 맞서지 못한다면 서로 행복하지 못한 게 결혼생활일 거에요. 이혼은 두 사람에게 모두 상처를 남겼지만 작가는 다른 방법으로 극복해내기를 바랬고 탈무드의 예언대로 잦아들고 다시 나타나는 사랑을 찾게 되었지요.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과의 접점은 요란스런 기도나 찬송에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오히려 묵음으로 기도하고 예배에 정상적으로 참석하는 것, 할 수 있는 봉사를 하는 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했었는데요.
탈무드가 이론으로 삼는 '구약'편을 통해 다시금 신의 존재에 대해 정의 내려준 여성 작가는 저와 같은 관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 생의 가장 기쁘고 경이로운 순간들 속에서 신이 없는 세상은 상상되지 않는다. 이 정도 믿음이면 내세에 자리를 얻기에 충분할지 모르겠지만, 이 세상에서 매일 새롭게 신의 자리를 만들려는 마음을 내기에는 충분하다.
내세를 생각하기에는 아직 살날이 많이 남았고 직접 신을 보는 엄청난 일은 감당이 안 되니 달빛이 비친 달그림자 안에 있을 신을 매일 만나는 일이 더 중요할지 모르겠다 싶어요. 또한 탈무드의 여성상에 대해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다른 사회적 존재로 탈바꿈해 이해한 작가의 기발한 생각도 앞으로 내가 해나갈 신앙생활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