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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트리거 - 넛지에서 AI까지 당신의 선택을 결정짓는 행동 유도 디자인
윤재영 지음 / 안그라픽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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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식적으로 행동하든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든 결국 행동은 어떤 개입을 통해 촉발된다. 그리고 그 개입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행동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바로 여기에 디자인의 힘이 있다. 14p


💬 토스 만보기에서 걸음 수를 채우고 획득한 복권을 두근두근 긁어보기, 연속 달성 기록이 깨질 예정이라는 듀오링고 알림창을 확인한 뒤 부랴부랴 일일 학습 미션을 완수하기, 인터넷 서점 출석 체크와 일일 미션을 수행하기, 그리고 주말에만 지급하는 1000원 적립금을 사용하기 위해 2만 원짜리 책 한 권을 주문하기, 잘 사용하지 않는 서비스의 해지 버튼을 누르니 우는 얼굴 이모지가 불쑥 나와 잠깐 망설이기. 이런 선택과 경험들은 사실 작은 개입으로 사용자의 경험을 유도하기 위해 설계된 넛지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보상, 손실 회피, 감정을 건드는 정교한 전략들인 것입니다.


《디자인 트리거》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서비스에 어떤 개입이, 어떤 의도로 설계되어 있는지를 친절하게 소개하는 책입니다.


셀프 트래킹, 보상, 가치 연결, 커뮤니티, 재미, 권위, 비교, 캐릭터, 손실 회피의 다양한 사용자 경험 디자인 전략을 폭넓게 다룹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내용을 소개해보자면,


1. 데이터 기록을 넘어 성찰을 이끌어주는 앱이 필요하다.

디지털 웨어 기기의 발전으로 데이터를 기록하고 분석하기, 즉 셀프 트래킹을 하기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행동 설계는 행동의 방향을 왜곡시키고 기록이 과제로 느껴져 불안, 강박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는 사용자의 내적 동기와 만족감을 떨어뜨릴 수 있기에 유의해야 합니다.


한편 생체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건강 관리해 주는 오라링, 인지 편향이나 사고의 왜곡을 바로 잡아 사용자의 성찰을 돕는 AI 일기 앱 서비스 마인드세라처럼 개인 맞춤형 조언자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판단력이 약해지고 의존성이 생길 수 있기에 고민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저자는 AI 기반 기록 시스템을 설계할 때 중요한 원칙은 사용자가 주도성을 뺏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가령 일기를 분석해 태그를 확정하는 게 아닌 '제안'하는 형태로, 최종 선택권은 사용자에게 넘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나 했는가?'를 넘어 '왜 했는가?', '기록하면서 어떤 변화를 발견했나?' 같은 질문을 통해 의미의 발견과 성찰을 도와야 AI 기반의 기록 앱이 진정한 가치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결국 기록이 삶을 대체하지 않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작은 단위의 목표와 즉각적 피드백의 결합이 보상 설계의 원리다.

서울시의 '손목닥터 9988'은 하루 8,000보를 걸으면 200포인트를 지급해주는 혜택으로 많은 사용자의 참여를 이끌어냈습니다. 200원으로 어떻게 참여를 유도하고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빅터 브룸'의 기대이론에 따르면 사람의 행동 동기는 '노력하면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 '성과를 내면 보상을 받을 거라는 기대', '그 보상이 자신에게 가치가 있으리라는 기대'입니다.


보상은 이렇게 행동, 시점과 간격, 기대 등이 복합적으로 적용하는 과정이므로 최적의 보상 방식을 설계해야 합니다.

한편 역설적으로 외적 보상이 주어지는 순간 행동의 자발성이 떨어지고 내적 동기를 약화시킵니다. 확률성 보상은 강박으로 이어지고 현금과 상품권 같은 금전적 보상은 보상이 사라지면 동기가 줄어들어 행동도 함께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납니다.칭찬, 격려와 같이 자율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보상이 주어졌을 때 동기를 강화합니다. 비금전적 보상이 오히려 더 강한 동기를 줄 수 있는 거죠.


이런 내용을 종합해 봤을 때 200원을 주는 손목닥터 9988은 금액이 크지 않아도 목표를 달성했다는 만족감과 지속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 것이죠.

'작은 단위의 목표'와 '즉각적 피드백'을 결합한 보상 설계 원리입니다.


책에는 이외에도 인간의 행동을 유발하고 유지할 수 있는 아주 다양한 정보와 사례를 담고 있습니다.


AI 시대에는 기술 자체만큼이나 그 기술을 경험하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분야가 바로 UX 디자인일 것입니다.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와 행동을 이해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사람마다 선호와 동기가 모두 다르기에 AI를 활용한 개인 맞춤형 데이터 분석은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개인정보 보호와 사용자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문제는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죠.


바로 그런 이유에서 《디자인 트리거》는 더욱 의미 있는 책입니다. 사용자 경험 디자인의 다양한 사례와 인간 심리에 대한 통찰은 물론, AI 시대에 디자이너가 고민해야 할 윤리적 문제까지 균형 있게 담아냅니다.


이 시대의 모든 디자이너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별생각 없이 서비스를 이용하던 사용자라면 이 책을 읽고 난 뒤에는 그 뒤에 숨겨진 디자인의 의도와 시스템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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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습관 - 작은 시작으로 압도적 변화를 만드는 행동 공식
로버트 마우어 지음, 장원철 옮김 / 북모먼트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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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변화에 실패하는가? 실패를 자주 맛본 사람일수록 조급한 마음에 본인에게는 혁신에 가까운 목표를 설정했을 수도 있다. 가령, 내일부터 당장 탄수화물을 끊고 건강식으로 바꾸겠다거나, 일주일에 3번은 헬스장에 들러 1시간 이상 운동을 하겠다거나, 일주일에 책 1권은 꼭 완독을 하겠다는 식의 이상적인 목표들 말이다. 하지만 언제나 작심삼일, 그리고 이어지는 내 의지 부족을 탓하기... 조악한 의지 말고 변화에 도움이 될만한 무언가는 없을까?

<최소한의 습관>의 저자 로버트 마우어는 변화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도구로 ‘스몰 스텝’전략을 소개한다. 저자는 목표가 클수록 뇌의 편도체가 활성화되어 두려움을 느끼고, 절제력과 실행력 같은 대뇌피질 기능이 저하되어 목표 달성에 실패하는 것이라 말한다. 여기에 대응하는 스몰 스텝은 작은 목표를 세워 두려움을 우회하고 대뇌피질 기능을 정상화하여 성공의 확률을 높이는 시스템이다. 즉 스몰 스텝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식이자, 사자를 토끼로 만드는 전략이다. 초콜렛을 먹되 마지막 한 입을 떼어놓기, TV를 보며 하루에 30초라도 운동하기, 책상에 앉아 책을 한 번 펼쳐보기처럼 도저히 실패할 수 없고 당장 개선할 수 있는 행동을 실행하면서 천천히 변화의 길로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스몰스텝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작은 질문’이다.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거창한 질문이 아닌, 마치 놀이처럼 느껴질 정도로,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작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작은 질문을 자주 반복하면 뇌는 자연스럽게 관심을 쏟게 되고 창의적인 답변을 할 준비를 갖춘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사소한 행동은 무엇일까?’, ‘건강(혹은 인간관계, 경력, 또 다른 어떤 것들)을 조금이라도 향상시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은 무엇일까?’ 같은 질문들을 몇 날 며칠을 반복해야 한다. 조바심은 금물이다.

그리고 행동에 나설 때는 ‘마음 조각하기’를 권한다. 방법은 이렇다. 하기 싫거나 불편한 일을 하기 전 적어도 한 달의 시간을 준다. 그리고 편안한 장소와 몇 초만이라도 시간을 마련해 그 일을 하는 상황을 모든 감각을 동원해 상상하는 것이다. 무엇이 보이는가? 거기에 누가 있는가? 주변에서 느껴지는 소리, 냄새, 맛, 감촉은 어떤가? 그리고 그들 앞에서 일을 해내는 나는 무슨 단어를 사용하는가? 몸에는 어떤 반응이 오는가?. 그 후 내 행동에 긍정적인 반응이 오는 상황을 상상하고 여기에 적응하면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한다. 이제 진짜 행동에 몰입할 수 있겠다고 여겨지면 작은 것부터 시작한다.

이 방법은 우리가 자주 시도하는 ‘일단 저지르기’, ‘Just Do it’과는 상충하는 전략으로, 변화를 가로막는 두려움을 우회하는 데 큰 목적이 있다. 책에는 이 외에도 적절하게 보상하는 방법, 부정적인 자기 인식에 빠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질문 등 복잡하지 않으면서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내용들이 담겨있다.

SNS 시대와 숨가쁘게 변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마음이 급해지고 불안해진다. 지금 이 시점에 목표를 작게 설정하라는 말이 더 유의미하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변화에 자주 실패하는 사람, 쉽게 두려움에 빠지는 사람, 목표를 설정할 때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막막한 사람, 긍정적인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조바심을 내려놓고 소소하지만 확실한 변화를 도모할 수 있는 책이기에 일독을 추천한다.

📌 매일 조금씩 바꿔 나가라. 종국에는 큰 변화가 일어난다. 내일도 아니고 모레도 아니지만 결국에는 큰 것을 얻게 된다. 크고 빠르게 변하려고 하지 마라. 하루에 하나씩 작은 것부터 바꿔 나가라. 그것만이 변화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게 해야 지속할 수 있다. 24p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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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자리에 태워줘
애덤 마스-존스 지음, 최리외 옮김 / 에이유앤씨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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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장난이긴 하지만, 이 이야기는 두 가지 의미에서 '상호 일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주인공 콜린과 레이 사이의 지배/복종 관계에서 비롯되는 일방성이다. 이 종속 관계는 첫 만남부터 형성된다. 나무에 기댄 채 발을 쭉 뻗고 누워 있던 레이, 그리고 그의 발에 걸려 넘어진 콜린. 콜린은 레이의 조각 같은 외모에 감탄하면서도 곧 다른 부위로 시선을 옮긴다. 레이는 자신만만한 비웃음과 함께 범상치 않은 일체형 가죽 슈트의 지퍼를 부욱 내리고, 어리둥절한 콜린에게 그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를 연달아 보여준다.



그렇게 콜린은 레이에게 빠진(fall for) 것이 아니라 넘어졌다(fall over). 파도처럼 밀려와 풍덩 빠진 사랑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낭떠러지로 떨어져 상대를 우러러보게 된 관계가 발생한 것이다. 원래 BDSM은 명확한 동의와 협상, 상호 존중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6년 동안 경험 많은 성인이 순진한 소년에게 보인 행동에서는 그런 절차를 찾아보기 어렵다.



다른 의미의 일방성은 이야기의 서술 방식에서 나타난다. 소설이든 영화든 둘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하나 있다. 레이는 바이크 클럽의 리더답게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자신의 바이크를 빈틈없이 세차한다. 2층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콜린. 레이 역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 눈치챘을 테지만, 한 시간 내내 단 한 번도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지 않는다. 콜린은 그 의도적인 무시에 서운함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안도감과 묘한 흥분을 느낀다.



그 거리감과 수치심이 콜린에게는 관계의 핵심이다. 그는 레이의 마음이 궁금하면서도, 정작 알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근위병처럼 흔들림 없는 그가 윙크라도 한다면, 직업이나 가정환경 같은 사적인 면을 알게 된다면, 미천하고 못생긴 자신을 선택해 준 레이라는 황홀한 존재감이 무너질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실을 알지 못하는 화자 콜린은 레이의 심리를 끝없이 추측하고, 자신의 자기연민을 끊임없이 해설한다. 그 과정 자체가 그의 존재감을 유지하는 방식처럼 보인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홀로 나이 든 그는 비로소 둘의 관계를 다른 방향에서 내려다볼 수 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이야기는 마지막에 이르러 역전까지 이루는, '상호 일방적인' 관계처럼 읽혔다.



저자는 이 작품을 진실된 러브스토리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사랑과 진실은 무엇일까.



사랑은 달콤한 감정보다 어떤 사건에서 촉발되는 것에 가깝다.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욕망은 타인을 통해 발견되고, 학습되며, 어느새 삶의 방식이 된다. 그리고 레이의 가죽 옷들처럼 가장 솔직하다고 믿었던 욕망조차, 사실은 자신의 못남을 감추기 위한 껍데기일 수도 있다. 그럼 껍데기 욕망이 더 진실에 가까운 게 아닐까. 레이에게는 그 가죽 재킷을 더욱 빛나게 해 줄 존재가 필요했고, 콜린은 바로 그 역할에서 만족을 느꼈다. 그렇다면 6년간 이어진 그들의 관계를 사랑이 아니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한편 우리는 기꺼이 거짓된 모습에 현혹되고, 자신과 타인에게 끊임없이 서사를 부여하는 존재다. 그렇기에 진실은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진실은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정원처럼 꾸준히 관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 사랑과 희생이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지는 행동들은 어느새 상호 의존적인 관계로 변해 서로에게 독성 짙은 뿌리를 내리기도 한다. 그 결과 인생의 한 부분은 존재론적 불안으로 물든다. 콜린의 부모처럼 말이다. 그 불안을 인정하고, 밑동까지 한 번 잘라내는 경험을 거쳐야 비로소 삶의 다른 부분들이 새롭게 자라고 피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것이 사랑이 하는 역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주절주절 여러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어쨌든 수치심에서 흥분을 찾는 서브미시브처럼, 가장 못난 러브스토리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이 작품은 내게 여전히 새롭고 흥미로웠다. 물론 윤리적으로 뜨악하는 장면들도 있다. 하지만 권력과 복종을 다루는 이야기에 회초리를 들이대며 재단하는 것 역시 우스운 일처럼 느껴져, 판단을 잠시 내려놓고 읽었다.



영화의 팬이라면 원작과 영화 사이의 차이점을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일반 독자 역시 자존감 낮은 화자의 구구절절한 자기연민과 상대를 숭배하는 주접에 피식 웃다가, 어느 순간 뜻밖의 공감을 느끼게 될지 모른다. 흔히 접하기 어려운 대담한 러브스토리를 찾는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뒷자리에태워줘 #뒷자리에태워줘원작



말장난이긴 하지만, 이 이야기는 두 가지 의미에서 '상호 일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주인공 콜린과 레이 사이의 지배/복종 관계에서 비롯되는 일방성이다. 이 종속 관계는 첫 만남부터 형성된다. 나무에 기댄 채 발을 쭉 뻗고 누워 있던 레이, 그리고 그의 발에 걸려 넘어진 콜린. 콜린은 레이의 조각 같은 외모에 감탄하면서도 곧 다른 부위로 시선을 옮긴다. 레이는 자신만만한 비웃음과 함께 범상치 않은 일체형 가죽 슈트의 지퍼를 부욱 내리고, 어리둥절한 콜린에게 그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를 연달아 보여준다.



그렇게 콜린은 레이에게 빠진(fall for) 것이 아니라 넘어졌다(fall over). 파도처럼 밀려와 풍덩 빠진 사랑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낭떠러지로 떨어져 상대를 우러러보게 된 관계가 발생한 것이다. 원래 BDSM은 명확한 동의와 협상, 상호 존중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6년 동안 경험 많은 성인이 순진한 소년에게 보인 행동에서는 그런 절차를 찾아보기 어렵다.



다른 의미의 일방성은 이야기의 서술 방식에서 나타난다. 소설이든 영화든 둘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하나 있다. 레이는 바이크 클럽의 리더답게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자신의 바이크를 빈틈없이 세차한다. 2층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콜린. 레이 역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 눈치챘을 테지만, 한 시간 내내 단 한 번도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지 않는다. 콜린은 그 의도적인 무시에 서운함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안도감과 묘한 흥분을 느낀다.



그 거리감과 수치심이 콜린에게는 관계의 핵심이다. 그는 레이의 마음이 궁금하면서도, 정작 알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근위병처럼 흔들림 없는 그가 윙크라도 한다면, 직업이나 가정환경 같은 사적인 면을 알게 된다면, 미천하고 못생긴 자신을 선택해 준 레이라는 황홀한 존재감이 무너질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실을 알지 못하는 화자 콜린은 레이의 심리를 끝없이 추측하고, 자신의 자기연민을 끊임없이 해설한다. 그 과정 자체가 그의 존재감을 유지하는 방식처럼 보인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홀로 나이 든 그는 비로소 둘의 관계를 다른 방향에서 내려다볼 수 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이야기는 마지막에 이르러 역전까지 이루는, '상호 일방적인' 관계처럼 읽혔다.



저자는 이 작품을 진실된 러브스토리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사랑과 진실은 무엇일까.



사랑은 달콤한 감정보다 어떤 사건에서 촉발되는 것에 가깝다.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욕망은 타인을 통해 발견되고, 학습되며, 어느새 삶의 방식이 된다. 그리고 레이의 가죽 옷들처럼 가장 솔직하다고 믿었던 욕망조차, 사실은 자신의 못남을 감추기 위한 껍데기일 수도 있다. 그럼 껍데기 욕망이 더 진실에 가까운 게 아닐까. 레이에게는 그 가죽 재킷을 더욱 빛나게 해 줄 존재가 필요했고, 콜린은 바로 그 역할에서 만족을 느꼈다. 그렇다면 6년간 이어진 그들의 관계를 사랑이 아니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한편 우리는 기꺼이 거짓된 모습에 현혹되고, 자신과 타인에게 끊임없이 서사를 부여하는 존재다. 그렇기에 진실은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진실은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정원처럼 꾸준히 관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 사랑과 희생이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지는 행동들은 어느새 상호 의존적인 관계로 변해 서로에게 독성 짙은 뿌리를 내리기도 한다. 그 결과 인생의 한 부분은 존재론적 불안으로 물든다. 콜린의 부모처럼 말이다. 그 불안을 인정하고, 밑동까지 한 번 잘라내는 경험을 거쳐야 비로소 삶의 다른 부분들이 새롭게 자라고 피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것이 사랑이 하는 역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주절주절 여러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어쨌든 수치심에서 흥분을 찾는 서브미시브처럼, 가장 못난 러브스토리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이 작품은 내게 여전히 새롭고 흥미로웠다. 물론 윤리적으로 뜨악하는 장면들도 있다. 하지만 권력과 복종을 다루는 이야기에 회초리를 들이대며 재단하는 것 역시 우스운 일처럼 느껴져, 판단을 잠시 내려놓고 읽었다.



영화의 팬이라면 원작과 영화 사이의 차이점을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일반 독자 역시 자존감 낮은 화자의 구구절절한 자기연민과 상대를 숭배하는 주접에 피식 웃다가, 어느 순간 뜻밖의 공감을 느끼게 될지 모른다. 흔히 접하기 어려운 대담한 러브스토리를 찾는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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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와의 안전 이별 - 보복 없이 손해 없이 나르시시스트와 멀어지는 법
레베카 정 지음, 고영훈 옮김 / 생각정거장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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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 나르시시스트의 개념이 대중적인 상식으로 급부상하면서 이제 서로를 나르로 의심하며, 간혹 내 이야기인가..? 뜨끔 하기도 한다.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최대 15%가 자기애성 성격장애 혹은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 대부분은 나르시시스트를 생각보다 자주 만났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나르시시스트에게 감정적, 신체적으로 착취를 당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 또한 마찬가지다. 저자 ‘레베카 정’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변호사 중 한 명으로 20년 이상 가정법 전문 변호사로 활동해온 인물이다. 어느 날, 이런 그에게 솔깃한 제안과 부드러운 매력을 한 가득 안은 채 비즈니스 파트너를 제안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저자는 왜 이제 나타났나! 싶을 정도로 끌렸다고 한다. 비록 예상보다 빠르게 추진하려는 느낌이 들었지만 저자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는 비즈니스의 파트너를 맺게 된다. 이게 수동형 나르시시스트와의 만남의 시작이다. 점점 연락의 빈도가 늦어지고, 거짓말을 하며, 어느새 ‘내 탓’이 되어버린 상황이 벌어진다. 그렇게 영혼이 갉아 먹히고 삶의 에너지를 뺏긴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말한다. ‘지옥 클럽’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우리도 지옥 클럽의 명예 회원이 되기 전에 나르시시스트와 안전하게 이별해야 한다. 그러나 항간에 떠도는 말로는 나르시시스트와의 협상은 시간 낭비라고, 절대 이길 수 없다고들 한다. 하긴 나르들은 어떻게든 상대방을 들쑤시고, 괴로워하는 모습에서 만족을 느끼는 성향을 가진 자들이라 말문이 턱 막히고 일단 뒷걸음질 치고 싶다. 그러나 저자는 다르게 말한다. 올바른 협상 프레임워크와 나르시시스트의 사고방식에 대한 정확한 이해만 있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그래서 책에는 나르시시스트들의 특징과 저자가 설계한 프레임워크를 소개한다.

‘나르시시스트와의 협상에서 이기는 안전 이별’ 공식이라는 명칭으로 ‘안전이별’의 각 앞 글자를 딴 전략적 방법론이다. ‘안’은 ‘안전 이별을 위한 전략’을 세우는 단계다. 협상의 나침반이 되어줄 목표와 비전을 만들고, 구체적인 실행 단계와 조사 항목을 정한다. ‘전’은 ‘전황을 뒤집을 협상 카드’를 의미한다. 나르시시스트는 건강한 사람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한다. 타고난 심리적 싸움꾼이자 도굴꾼인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는 승산이 없다. 평화로운 합의로 이끌고 유인책을 만든 뒤 협상 카드를 제안해야 한다. ‘이’는 이면까지 꿰뚫는 상황 예측이다. 상대 나르가 어떤 유형에 속하는 지 파악하고 그의 행동, 주장, 동기를 미리 내다보고 예측하는 단계다. ‘별’은 ‘별것 아닌 것처럼 털어내는 당신과 당신의 입장’이다. 탈탈 착취 당하는 상황에 익숙해졌다면 이젠 전술을 손에 쥔 공격적인 태도 그리고 피해자라는 자기 인식에서 벗어나는 마인드셋이 필요하다. 저자는 나르시시스트와 벌이는 협상 전 마인드셋이 승부의 99%를 좌우한다고 강조한다.

나르시시스트는 수치심으로 가득 찬 움직이는 동상이다. 자기 자신이라는 감각이 없다. 스스로가 누군지조차 불분명하니 다른 사람들의 말과 비판에 쉽게 흔들린다. 이들의 먹잇감으로 살아온 이들은 그들의 딱딱함과 거짓 웅장함에 속아 너무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뺏겼을 지 모른다. 탈곡당한 영혼과 새하얘지는 머리를 붙잡고 이제는 전술을 배워 유턴을 할 때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경험으로 거듭난 ‘나르시시스트 전문 변호사’만이 제시할 수 있는 인사이트와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적절하다. 나르시시스트에 관심이 있거나 안전하게 이별을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나르시시스트와의 싸움은 결국 그냥 싸움일 뿐이다.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부인이자 인권운동가 엘리너 루스벨트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동의하지 않는 한, 누구도 당신을 열등하게 만들 수 없다.” 이 말을 진짜 이해하는 순간, 변화는 시작된다. 276p

#나르시시스트 #가스라이팅 #X와의안전이별 #매경출판 #매일경제신문사 #매일경제신문 #매일경제 #심리 #심리학도서 #심리학 #심리회복 #안전이별 #협상 #인간관계 #인문 #심리학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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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을 위한 행동활성화 워크북 - 기분을 향상시키고 더 나은 삶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강력한 전략들
니나 요제포비츠.스티븐 R. 스왈로우 지음, 구훈정 외 옮김 / 하나의학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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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에 걸리면 무기력해지고, 즐기던 일에도 흥미를 잃으며,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게 됩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반추하면서 우울은 더욱 깊어지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죠. 이런 증상들로 책을 찾아 보는 독자들도 많으실텐데요.

많은 우울증 관련 서적은 대부분 생각과 감정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는데요. 『우울증을 위한 행동활성화 워크북』은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주목합니다. 저자는 이를 ‘행동활성화(Behavior Activation)’라 부르며, 수많은 사람들의 회복을 이끈 치료법이라고 설명합니다. 핵심은 단순합니다. ‘기분을 바꾸기 위해 행동을 바꿔라.’ 즉, 더 많이 활동할수록 기분이 나아지고, 그 긍정적인 감정이 다시 행동의 동기를 만들어낸다는 원리입니다.

『우울증을 위한 행동활성화 워크북』은 먼저 우울증이 내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생각, 감정, 행동이 서로 얽혀 있다는 점을 짚어주고, 독자가 직접 자신의 증상과 하루를 기록하며 우울을 강화하는 패턴을 발견하게 합니다.

이후엔 ‘우울-저항적 삶(depression-resistant life)’으로 나아가기 위한 다양한 워크시트를 제공합니다. 내 기분을 좋게 하는 목록을 살펴본 뒤 개인적인 핵심 가치와 성취감과 연관 지으며 다시 실천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 동기와 좋은 기분을 유지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 안으로 독자를 이끕니다.

책이 제시하는 모든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계획의 '구체성'입니다. 당연하지만,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망각할 수 있는 지점 입니다. 예를 들어 ‘공부하기’, ‘운동하기’처럼 추상적인 목표가 아니라 무엇을, 누구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할 것인지 그리고 실천 가능한지를 명확히 설정하도록 합니다. 즉, 추상적인 '의도'가 아니라 실제로 움직이게 만드는 ‘행동 계획’이 핵심이죠.

책에는 이 외에도 회피 대신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책을 찾는 법, 동기를 떨어뜨리는 생각을 다루는 기술 등 다양한 기법과 실습 자료가 담겨 있어 굉장히 유용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5장의 ‘가치 기반 활동’이었습니다. 저는 어떤 활동을 할 때 개인적인 의미나 목표 의식이 분명하지 않으면 쉽게 동기를 잃는 편인데, 이 장은 나의 핵심 가치를 탐색하고 이를 행동과 연결하도록 돕습니다. 존경하는 사람을 떠올리거나,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를 질문하며 가치 목록에 점수를 매기는 과정, 그리고 구체적인 활동 계획과 연결하는 점이 특히 유익했습니다.

예를 들어 ‘독서’는 제게 성취와 성장, 나아가 건강을 추구하는 활동이 될 수 있습니다. ‘달리기’도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성취와 자기관리의 가치와 연결될 수 있죠. 이렇게 활동에 의미를 부여하니 자연스럽게 동기가 생기고, 기분도 한결 밝아졌습니다.

그렇다고 저자가 우울증 극복이 단지 ‘행동’에만 달렸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부정적인 생각을 강화하는 인지왜곡들을 살펴 보면서 마음챙김, HUMP, 3N 등의 기법을 통해 부정적인 생각, 감정이 미치는 영향을 '약화'시키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부정하거나 없애는 게 아니라요.)그리고 이에 휘둘리지 않고 ‘우울-저항적 삶’을 유지하도록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책을 읽고나니, 지금까지 무력하게 우울증의 '결과'로만 보았던 (게으른)행동들을 생각·감정·행동의 순환 구조 속 한 과정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습니다. 무기력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 하거나, 꼬리를 무는 생각에 골몰하는 대신 행동에 나설 수 있는 든든한 동기가 생긴 기분입니다. 그리고 우울감에 무심코 흘려 보내던 하루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자율성을 가지고 기분 좋은 활동을 선택할 수 있게 됐습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분들, 행동할 힘과 의미를 찾지 못해 막막한 분들께 이 책을 강력 추천합니다. 나아가 부정적인 감정을 건강하게 다루고, 삶의 구체적인 방향을 설계하고 싶은 모든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책입니다.

+ 책의 부록에는 본문에서 다룬 모든 워크시트가 수록되어 있어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분량도 부담스럽지 않고, 번역도 매끄러우니 꼭 읽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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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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