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안시내 지음 / 푸른향기 / 202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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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20대를 회상해 봅니다.

산을 참 좋아했습니다. 아니 걷기를 좋아했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면서 사람을, 만남을, 술도 빠질 수 없군요. 신나게 보내다가 반려자 덕분에 멈춘 방황들.

국내에선 잘도 싸돌아다녔지만, 타국 땅에서 다닐 용기는 없었습니다.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비슷합니다. 여행은 가까운 곳부터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우세합니다. :)

그래서! 여기 안시내 작가를 매우 부러워합니다. 좋아하는 선배가 인도에 다녀와서 좋았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떠난 인도 여행.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작은 덩치에, 생각은 타워팰리스만큼이나 커다랗게 들어있는 안시내 작가.

그녀만이 가진 글의 예쁨은 소리 내어 읽을 때 더 빛이 나더군요. 알고 싶은 작가 안시내.

이 책을 통해서 그녀의 삶을 통째로 만나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원래 알고 있던 사람처럼 말이죠.

Prologue

여전히 나는 작고 유약하기에

여행과 사랑과 떠남의 굴레 속에서 혼란스러운 20대를 마치며 그간 써내린 글을 정리했다. 투박하고 초라한 광택이 묻어 있는 삶. 여러 번 넘어졌지만, 그래도 다시 일어나고 마는, 아마 누구나의 삶의 귀퉁이가 이곳에 있을 것이다. 무언가를 이루라고, 이것이 맞다고 말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바다 소년, 칸

p59

풍경이 그림처럼 흘러간다. 너의 머리칼에 코를 파묻는다. 머리칼에는 연약한 햇빛의 냄새와 오래도록 얽힌 푸른 바다의 향이 난다. 숨을 크게 쉰다. 너의 냄새와 바람의 향이 뒤섞여 난다. 낯설고 익숙한 향이 너에게로 나를 이끈다. 가느다란 길을 달린다. 짠바람과 당신의 머리칼이 나의 얼굴을 때린다. 내 머리칼에 입을 맞춘다. 입속으로 바다의 태양에 노랗게 타버린 네 머리칼이 씹히고, 모든 것들이 괜찮아진다.

p63

태국의 꼬 따오라는 작은 섬에서 나고 자랐다. 이름은 칸. 21살. 아빠는 영국과 터키인. 엄마는 태국인, 그는 스스로를 리스녀라고 칭할 만큼,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좋다고 했지만, 나는 네가 너무 궁금했다. 난생처음 보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는 인도라고 헀다. 본인의 아빠가 인도에서 요가와 명상을 배워 꼬따오에서 가르친다고 했다. 자신은 다이빙을 가르친다고 했다. 다이빙은 일종의 명상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p67

칸과 나는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같이했지만, 여전히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끊임없는 그를 탐구하던 걸 멈추고, 조용히 한 발짝 떨어져 그를 지켜보았다. 그는 끝없이 자신을 공부했으며, 자신을 삶을 생각했다. 내게는 아름답고도 외로운 시간이었다. 꼬 따오는 내가 머물렀던 섬 중에서도 가장 노을이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놀랍도록 공허하고 평온했다.

잘 가. 그래 잘 가. 잘 지내. 내년 샴발라에서 만나.

아니면 인도에서. 응 그래. 모든 게 고마워. 나도야.

내년 샴발라 후에는 다른 섬으로 초대할게.

응. 종종 연락해.

 


 

*때굴짱 왈

-8년 동안 살아오면서 특별한 내용을 담았다고 한다. 오랫동안 옥탑방에서 자취했던 이야기,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 이른 나이에 겪은 친구의 죽음과 극복기, 그리고 엄마 이야기.

나보다 20년은 더 살은 사람처럼 경험이 많고, 또한 그 경험들은 내 경험도 되어 본다.


요즘은 읽기 시작한 책은 그날 읽기를 마치는데, 이틀이나 걸렸다. 이 책은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야 했다. 그래야 내 것이 되었다. 예쁜 문장은 소리 내어 읽었다. 그러면서 나는 잠시 안시내가 되어봤다.


고맙다. 바다를 보여줘서. 칸을 보여줘서. 긴 여행이라는 예쁨과 용기를 보여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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