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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슈트
장하연 지음 / 봄출판사(봄미디어) / 2018년 8월
평점 :
그 남자, 강도하. 표면적으로는 거대 마켓 체인인 제로켓의 기획부서 실장이지만, 제로켓에서 3년째 잠입 임무를 수행 중인 비밀조직 ‘블랙 슈트’ 팀장.
“이 더러운 세상을 바로잡을 지도자에게는 아주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
그리고 너희들이 바로 그 힘의 근원이지.”
“이 나라는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다 썩어 빠졌어.
우리가 그 썩은 것들을 뿌리부터 도려내는 거다. 이제부터 모든 것이 너희들의 손에 달려 있다.”
국민의 신뢰를 한 몸에 받는 사회 운동가이자 국회의원인 양부 조양순의 이상과 말을 믿었다. 그렇기에 대의라고 믿고 양부의 명에 따라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기도 했었다. 하지만 양부의 추악한 면모를 조금씩 알아차리게 된 도하는 회의감을 느끼고 헤어나지 못할 수렁에 빠졌음을 알게 된다. 우연의 연속과 뜻밖의 사건들은 부서 직원인 유미가 뜻하지 않게 그의 삶의 한 자락에 스며들게 만들었고, 그녀를 위험으로 몰고 간다. 그렇게 도하는 양부에게 등을 돌리고 유미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데…….
그 여자, 서유미. 제로켓 기획부서 공헌팀 대리.
무단결근 중이던 영업부 고인수 부장 실종 후 평범하던 그녀의 일상이 격변하기 시작한다. 그녀를 지키고자 사직을 종용하는 도하의 말을 한 귀로 흘러듣고, 고 부장의 실종에 얽힌 비밀을 시작으로 알고자 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알게 되어 위험을 감지했을 때는 이미 발을 빼기에는 늦어버렸다. 그리고 그녀를 지켜주는 도하에게 점점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 그녀의 삶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는데…….
장하연 작가님의 소설 <블랙 슈트>는 비밀조직 ‘블랙 슈트’를 둘러싼 음모와 추악한 비밀에 마주한 킬러 도하와 평범한 여자 유미의 이야기에요. 스릴러 로맨스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의지할 것 없던 때 손을 내민 이에 의해 세뇌 당하다시피 컸던 도하에게 양부란 흑백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였을 거예요. 그렇기에 점점 드러나는 양부의 추악한 면모에 배신감을 느끼고, 대의라고 믿고 행했던 것들의 진실에 좌절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양부를 떠날 수 없던 거겠죠. 그런 진창에 유미가 발을 딛게 되고, 위험에 빠진 유미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옳은 길을 향해 나아가는 유미의 신념이 도하가 결단할 수 있는 촉매제로 작용한 것 같아요.
유미를 지키기 위해 몸을 불사르는 도하도 멋있었지만, 평범하기만 했던 자신의 삶이 깨져버리고,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 되어버렸음에도 도하를 믿고, 용기 있게 나아가는 유미의 긍정적인 모습도 보기 좋았어요. 어떻게 보면 무모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당차게 느껴졌어요. 좋아하는 마음을 확실히 표현하는 솔직한 모습도 답답하지 않아 마음에 들었어요.
빛과 어둠, 도하는 유미와 자신을 그렇게 표현하죠. 그에게 유미가 가진 평범함은 갖고 싶지만 죽었다 깨어나도 가질 수 없는 반짝이는 빛이고, 그는 양부로 인해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진, 어둠에 잠식된 존재라고 생각하죠. 그렇기에 유미와 감히 어울릴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며 유미를 향한 마음을 애써 묶어두죠. 그런 도하가 안쓰러웠고 도하가 빛과 같은 존재인 유미로 인해 어둠에서 나올 수 있기를 바랐어요.
블랙 슈트라는 요원의 설정, 특히 킬러라는 소재가 딱 와닿진 않았어요. 선입견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를 배경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면이 없진 않으니……. 그래서 공감이 덜 됐어요. 로맨스가 상대적으로 약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
고 부장 실종 사건을 시작으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도 개연성 있게 다가오지 않더라고요. 좀 더 세밀한 짜임과 묘사가 이루어졌더라면 다이내믹하고 흥미로웠을 텐데 싶기도 했고요. 캐릭터나 글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좋았는데, 그걸 풀어내는 스토리와 인물의 심리 묘사가 약했던 게 아쉬웠어요.
뭐랄까 조양순의 이름도 그렇고 결말에서 나온 뉴스도 그렇고, 특정 인물이 떠오르더라고요. 완전한 권선징악이 아니라 씁쓸하긴 한데 그게 현실적이었어요. 나쁜 사람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바로 현실이니까요. 그럼에도 도하와 유미가 위험을 무릅쓰고 바꾸고자 했던 것처럼, 두 사람의 재회처럼, 멀고 험한 길 끝에는 빛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희망을 주고자 하는 작가님의 희망적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