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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12 -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 비세 (시즌 2) ㅣ 미생 12
윤태호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직장인들의 교과서라 불리는 만화, <미생>.
tvn에서 방영되었던 드라마 <미생> 기억하시죠?
직장인들의 애환에 같이 공감하고 장그래의 성장을 응원하며 드라마를 참 재밌게 봤었어요.
최대 관심사였던 장그래의 정규직 전환이 결국 이뤄지지 않은 것이 안타까웠으나, 바둑밖에 몰랐던 장그래가 ‘원 인터’에서 직장인으로서 성장해가는 것을 보았기에, 그 성장분을 밑거름 삼아 포기하지 않고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길 바랐어요. 결국은 오상식 차장과 김동식 대리와 다시 함께 뭉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마무리를 보면서 그 뒷이야기가 무척 궁금했어요.
주옥 같은 명언들도 많았죠.
보이는 것이 보여지기 위해 보이지 않는 영역의 희생이 필요한 것이다.
남들한테 보이는 건 상관없어. 화려하지 않는 일이라도 우린 ‘필요한’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넘어져선 상처를 보며 속상해하거나 울고 있는 것은 어떤 해결도 될 수 없다. 후회하고 자괴감에 빠져 또 다른 후회를 만들지 말자.
이밖에도 공감 가는 대사들이 많았던 명품 드라마 <미생>. 자연스레 원작인 윤태호 만화가의 <미생>이 궁금해져, 1-9권 박스본을 구입해 감명 깊게 읽었던 게 2년 전쯤이었어요.

그 뒷이야기가 궁금해 오매불망 <미생> 시즌2를 기다렸고, 반갑게도 카카오페이지에서 <미생> 시즌2의 연재가 시작되면서 지금까지 열심히 따라가고 있는 중이네요. 현재까지 총 57수까지 업로드 되었는데, 제가 리뷰할 <미생> 12권은 35수부터 54수까지의 스토리가 담겨있어요.
아래는 미생 시즌2의 배경을 간단하게 요약한 3분 영상이에요.
10, 11권의 내용이 잘 기억이 안 나거나 시즌2를 아직 보지 못한 분들이라면 아래의 영상을 통해 12권 이전의 내용을 한 눈에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https://youtu.be/VrYB3fDX27A
영상을 보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시즌2 핵심배경 및 줄거리를 요약할게요.
접힌 부분 펼치기 ▼
‘원 인터’에서 20년간 근무하다가 상사와의 갈등 때문에 명퇴를 당했던 김동수 부장. 퇴직 후 4년 동안 개인 사업을 연달아 실패하고 좌절하던 김동수는 어느 날 ‘원 인터’ 시절 거래처였던 중국 바이어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돼요. 중국에서 남아도는 ‘일반 강판’의 수출처를 찾고 있던 바이어에게, 김동수는 수출처를 만들어 주는 대신 자신이 높은 마진을 챙길 수 있는 국산 ‘특수 강판’을 중국으로 수입해 가는 조건의 딜을 제시했고, 거래가 성사되어 이를 실행할 회사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대학후배이자 ‘원 인터’ 후배였던 오상식 차장에게 동업을 제안해요.
돈 되는 사업임에도 분명하지만 경험과 인맥을 중시하는 김동수의 ‘주먹구구식 업무 스타일’에 불안감을 느꼈던 오상식은 김동수와는 정반대 캐릭터인, ‘서류와 데이터를 중시하는 업무 스타일’을 가진, ‘원 인터’ 시절 직속 상사인 김부련 부장에게 3자 동업을 제안하죠. 나아가서는 김동수를 설득해 김부련을 대표이사로 올리기까지 해요. 그렇게 ‘온길 인터내셔널’을 창업하게 되지만, 창업 직후 김부련 사장과 오상식 부장은 김동수 전무가 바이어에게 만들어준 수출처가 ‘원 인터’의 기존 거래처였으며 ‘원 인터’가 2년간 김동수에게 자신의 거래처를 내주는 대신 사업 마진의 30%를 먹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난제를 마주하게 돼요. 2년 뒤 ‘원 인터’가 계약을 종료해 버릴 경우 사업 자체가 끝나 버리게 되는 것인 만큼 세 사람은 유일한 수입원인 철강 사업을 대체할 신규 사업 아이템을 개발해야만 했죠. 갓 창업한 상태이기에 여러모로 자금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은 신규 사업 아이템 개발을 백업해줄 경력직원을 충원하기로 결정해요. 바로 그 자리에, 과거 오상식의 팀원이었던 ‘원 인터’ 김동식 대리와 장그래가 합류하고, 경리 조아영까지 합세하면서 총 6명이 한 배를 탄 주식회사 ‘온길 인터내셔널’이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게 돼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원 인터’ 1년 선후배 사이인 김부련 사장(후배)과 김동수 전무(선배)의 인간관계가 업무 방식 차이로 인해 점점 악화되어 가던 상황에서 중국 내 철강회사들의 연쇄 도산 소식과 맞물려 김 전무가 전담하고 있던 중국 업체와의 연락이 두절되고 선적해 보낸 ‘특수 강판’의 대금까지 미결제되는 비상사태를 맞이하게 돼요. 다행히도 11권에서 중국 업체의 단순 해프닝으로 결론 나고 특수 강판 대금 결제도 이뤄지면서 상황은 수습되지만 김동수 전무에 대한 오상식 부장과 김부련 사장의 신뢰는 완전히 무너져 버리고 말아요. 그런 두 사람의 태도에 반발한 김 전무는 업무상 결정적인 사고까지 쳐 회사를 위기로 몰아넣게 말죠.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단 한 번의 실수만으로 모든 걸 잃을 수 있는데요, 더군다나 신생 회사인 ‘온길 인터’는 한 번의 실수에 회사의 생존 여부가 결정될 수도 있는 상황! 이 위기를 ‘온길 인터’가 어떻게 극복하고, 그 속에서 장그래가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12권을 통해 확인할 수 있어요.
펼친 부분 접기 ▲

<미생> 시즌1(1-9권)이 대기업 ‘원 인터내셔널’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면, 시즌2(10권~)는 대기업 ‘원 인터내셔널’에서 나온 김부련 사장, 김동수 전무, 오상식 부장이 합심해 설립한 중소기업 ‘온길 인터내셔널’을 중심으로 장그래의 성장 및 중소기업 직장인의 생존기 및 애환을 엿볼 수 있답니다. <미생>에서 인상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단행본 매 권마다 바둑용어로 부제가 따라붙는다는 거죠. 12권읜 부제는 ‘비세非勢’로, ‘그르친 형세, 불리한 국면’을 뜻해요. 부제처럼 12권에서는 중국 업무에서의 김 전무 배제로 인한 갈등, 거래처와의 수금 문제, 김 전무가 타 회사에 거래를 터 준 일로 인한 갈등 등의 여러 고비가 등장해요.
12권은 장그래와 반가운 원 인터의 동기들 간의 술자리로 이야기로 시작돼요. 시즌2에서 ‘원 인터’에서 ‘온길 인터’로 배경은 넘어왔지만 그럼에도 종종 안영이, 장백기, 한석율을 만날 수 있어 좋네요. 안영이는 또 선배에게 아이템을 뺏기고 말았네요. 능력, 실적 위주의 대기업일지라도 안영이가 아무리 잘해도 승진이라는 게 쉬운 게 아니네요. 앞에서 막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그 앞이 나아가게 하기 위해 아이템이 뺏기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니... 장백기는 부서 팀장이 전무에게 찍혀서, 한석율은 점수를 채우지 못해서... 그렇게 셋 다 대리 승진에서 물먹고 마네요. <미생>에서 좋은 건 주인공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도 다루면서 다양한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거예요. ‘평범한 게 싫다는’ 경리 조아영의 고뇌도 엿볼 수 있어요.
큰소리치며, 일부터 저지르고 보는 주먹구구식의 김동수 전무를 신뢰하기 어려운 오상식 부장은 김 전무가 맡고 있던 업무에서 그를 배제시키고 말죠. 그에 마음이 상한 김동수 전무는 회사를 나오지 않게 돼요. 그에 오 부장은 장그래더러 김 전무의 집으로 가서 회계를 배우라고 하죠.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쉽게 사람을 포기했을 때 그랬을 때… 데미지는 오히려 자신에게 온다는 걸. 회한과 한탄이 뒤섞여 스스로를 괴롭힌다는 걸. 누군가를 포기하고자 한다면 미련이 남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선택에 책임질 수 있고 자신을 괴롭히지 않게 된다. 장그래는 오상식 부장이 김동수 전무에게 보낸 최후통첩이다.
오상식 부장이 장그래를 김 전무에게 보낸 건 단순히 회계를 배우게 하기 위함이 아니에요. 김 전무를 믿고 싶은 마음,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의 발로이죠. 처음엔 술에 취한 채 무기력하기만 하던 김 전무도 장그래의 열정에 차츰 변화를 보이게 돼요. 물론 그를 응원하는 아내의 역할도 컸죠. 김 전무의 아내가 참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남의 집 살림을 사는 게 쉽지 않은 일일 텐데, 그런 고생을 시키는 남편에게 싫은 소리 한 번 안 하고, 술 취해 단골집에서 난동 부리는 가게 주인에게 돈을 맡기며 남편을 내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은 가슴 찡했어요.
12권을 읽는 내내 든 생각은 확실히 장그래가 많이 성장했다는 거예요. ‘원 인터’에서는 뭐든지 열심히 하려고 노력을 했었다면, ‘온길 인터’에서는 시나브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가며 제 몫을 해내려고 하죠. 아직 경험이 미비한 만큼 회사에서 큰 역할을 한다거나 업무에서 큰 역량을 드러내진 못하지만 크든 작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노력하는 게 보기 좋았어요. 김동수 전무에게 회계를 배우는 것도 그 일환 중 하나죠. 회계를 배우며 재무재표를 가정경제에 대입해보던 장면도 인상적이었어요. 그러한 장그래의 성실함과 색다르게 보는 법이 김 전무가 자신을 되돌아보고 다시금 열심히 하려고 결심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죠.

장그래의 세심한 행동이 쉽지 않았던 수금을 거두는 데 영향을 주는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꼿꼿한 김부련 사장이 직접 나서 수금 결제를 독촉했지만 쉽지만은 않았던 거래처와의 만남, 장그래의 섬세한 일련의 행동이 거래처 사장의 마음을 움직이고 말죠.

허리는 숙일수록 돈으로 돌아온다.
한 고비를 넘기면 또 고비가 찾아오죠. 역시나 김 전무가 불안 불안한, 심상찮은 거동을 보이면서 새로운 갈등이 생겨나게 돼요. ‘온길 인터’의 소속이면서도 사업 아이템을 다른 회사에다가 넘겼다는 것이 드러나게 되는데요... 과연 어떻게 된 일일까요?
오 부장은 게임에 들어섰다. 접기로 마음먹으면 뒤돌아보는 법이 없기에 접기 전 최대한의 인내력으로 김 전무를 읽으려 한다.
어떻게든 김 전무를 믿고 싶지만 돌아가는 상황으로만 봐선 ‘온길 인터’를 제쳐둔 것만 같은 김 전무의 행보... 오상식 부장은 김 전무가 아이템을 넘긴 회사와의 술자리를 갖는 자리에 나타나는데요...
바둑 격언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 뭔지 알아? 미생마는 동행하라. 난… 옆에 있어주기 위해 가는 거야.

울먹거리는 오 부장의 표정과 대사로 봐선 김 전무가 ‘온길 인터’를 배신한 건 아닌 것 같죠. 과연 김 전무의 속내는 무엇이었을까요?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를 읽은 저로서는 그 뒷이야기를 알고 있는데요, 일련의 위기와 갈등을 긴장감 넘치게 전개하신 윤태호 만화가님 덕분에 조마조마해하며 읽었다가, 그 뒷이야기를 알고 나선 무릎을 탁 치며 감탄하고 말았어요.
이번 12권도 주옥같은 명대사 명장면들이 많았어요. 늘 그렇듯 바둑 용어를 상황과 적절하게 녹여 내며 심금을 울리더군요. <미생>은 직장인의 애환, 직장인들의 삶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다양한 인간들의 심정을 엿볼 수 있다는 매력도 있지만, 바둑의 매력에 빠지게도 하죠. 언제 한번 바둑 제대로 배워야 할 텐데... <미생> 13권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를 보여줄지... 믿고 보는 <미생>인 만큼 벌써 기다려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