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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긋난 휴가
김경미 지음 / 로코코 / 2009년 11월
평점 :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 명인 김경미 작가의 신작, <어긋난 휴가>.
‘휴가 시리즈’로서 특무국 비밀요원인 화랑 요선, 하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어긋난 휴가>같은 경우 연재의 초반부를 본 적이 있었다. 살짝 보았었지만 여주인 하빈이나 남주인 산의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기에 출간을 기다렸고 출간 소식과 함께 많이 기대를 했었다. 기대가 높았던 것일까, <어긋난 휴가>는 읽으면서 좀체 몰입이 어려워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중국을 배경으로 한 것도 그렇지만, 명소나 명칭, 용어들이 생소해서 난해한 감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많은 자료를 보고 공부하고 연구한 듯한 작가의 노력이 보이는 작품이었지만 내 이해력이 부족했는지 좀 난해하게 다가왔다.
이 소설의 설정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하빈과 산, 두 주인공에서 찾을 수 있다. 요즘 국정원을 소재로 한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가 꽤 되기에 국정원에서는 다들 어느 정도 알 것이다. 하빈은 국정원과 비슷한,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국정원을 대체해 더 비밀적이고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는 특무국의 비밀요원으로 요원명은 요선이다. 특무국에서 임무를 수행 중 산과 짧은 조우를 했었고, 임무가 끝난 후 휴가차 중국에 계속 머물다가 산과 연이 닿게 되고 결국 그의 여인이 된다. 하빈은 독특하다. 어느 것 하나에도 관심을 두지 않고 무관심하고 무료한 듯한, 마치 삶에 대한 세상에 대한 애정이 하나도 없는 듯한 모습을 보일 뿐만 아니라 그녀가 직접 드러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여자이다.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뿜어내는 듯한, 신비한 여자이다. 남자들 앞에서 마치 요부처럼 강한 척을 하는 그녀이지만 혼자 남겨진 그녀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불안한 존재였다. 한시라도 눈을 떼면 사라질 것처럼 연약하고 나약해 보였다. 그렇기에 산도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잠들어도 악몽에 시달리거나 울부짖으며 고통스러워하는 그녀를 보면서 그녀가 어떤 아픔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숨기고 있는 과거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했다. 그녀의 반응이 내심 어떠한 사건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헤이싱, 검은 별이라는 별호가 너무도 잘 어울리는 류산. 그는 미국과 아시아 시장을 아우르며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떨치는 화롄 그룹의 실질적인 총수이다. 탕가, 리가, 진가와 함께 상하의 4대 가문의 하나이자 가장 높은 영향력과 위세를 떨치는 류가의 후계자이자 그의 태생과 지위만큼이나 독보적인 행보를 하는 수완가이다. 신사적인 겉모습과 달리 누구든 그의 앞에서는 기세가 꺾이고 마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풍긴다. 어느 여자 앞에서도 초연할 것만 같은 그. 하지만 하빈에게만은 달랐다. 욕망과 소유욕, 그리고 어느덧 그 안에 자리잡은 사랑의 감정. 여자 앞에서 차가울 것만 같은 그가 하빈에게만은 뜨거운 눈빛을 보낼 뿐 아니라 하나하나 챙기며 배려하는 것을 보면서 역시 완벽한 남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절제된 카리스마를 가졌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는 한없이 따뜻하고 자상한 남자.
이렇게 매력적인 두 주인공의 이야기인데, 여주와 남주 모두 내가 너무 좋아하는 캐릭터인데 왜 이리 몰입을 할 수 없었던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공감이 부족했던 것 같다. 글을 읽을 때 난 캐릭터와의 공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마치 내가 직접 그들의 세상을 느끼고 마주하는 듯한 느낌으로 책을 읽는데 이번 캐릭터와의 공감이 부족한 글이 아니었는지 싶다. 강한 척 하지만 상처가 많아 끝없는 애정을 주고 보듬어 안아야만 할 것 같은 하빈, 그녀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그녀의 아픔이 안타깝게 다가왔고 자신에 대한 경멸과 남자를 믿지 못하는 그녀가 이해되었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모두 담기에는 스토리가 너무 부족했던 것 같다. 단편적으로 비춰지고 설명되어지는 부분은 있지만 확실히 와 닿는 부분은 없었던 것 같아서 공감하기가 쉽지 않았고 아쉬움이 남았다. 류산 또한 마찬가지였다. 캐릭터 자체는 매력적이었지만 하빈이 그의 집에서 생활하게 되고 그녀에게 욕망을 느끼며 소유욕을 넘어 사랑의 감정을 갖게 되는 과정이 너무 급작스러웠다고 할까! 하빈을 향한 산의 감정을 쫓아가는 것이 힘들었다. 첫눈에도 반한다고는 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끌리는 과정이 좀 더 자연스럽게 그려졌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빈과 산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고 특수한 배경을 지니고 있는만큼 두 사람를 둘러싼 분위기는 범상치 않다. 위험스럽고 아슬아슬한……. 류가와 산을 견제하기 위해 펼쳐지는 리가와 진가의 반격과 하빈에게 앙갚음을 하려는 장팅펑. 캐릭터의 무게, 초반의 심상찮은 분위기를 보면서 뭔가 급박하고 긴장감을 고조하는 사건이 벌어질 거라고 예상했는데 솔직히 다뤄진 이야기나 너무 쉽게 마무리되어진 느낌이 들기도 했고,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전개와 스케일이어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 많았던 하빈이 산으로 인해 행복해지는 모습은 만족스러웠지만 전개나 인물의 감정 변화가 세심하고 치밀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좀 더 생동감 넘치게!
물론 주변 배경이나 인물의 묘사는 마치 지금 어느 곳에서 어떤 차림으로 있는지, 어떤 포즈에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등이 떠오를 정도로 매우 뛰어났었다. 심리묘사와 스토리만 더 보강이 되어졌더라면 정말 완소하는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쉽게 몰입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대물부터 시작해서 현대물까지, 다양한 배경과 인물을 대상으로 작품의 세계를 넓혀가는 김경미 작가. 비록 이번 작품이 아쉬움이 남기는 했지만 보여지는 설정이나 배경 묘사등을 보면서 확실히 작가의 기량과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에는 좀 더 만족스런 작품으로, 호흡이 긴 작품으로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