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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피, 열
단시엘 W. 모니즈 지음, 박경선 옮김 / 모모 / 2023년 2월
평점 :
단편이지만, 장편 같은 소설.
11편의 여주인공들이 둥그렇게 모여 각자 사연이 담긴 이야기를 시시콜콜하게 주고받는 현장에 독자인 나도 동참해보는 상상을 한다.
소녀부터 20대 여성, 중년 여성 등 나이, 이름은 뭔지, 어디 사는 누구인지 통성명 하지 않는다. 그저 너나 할 것 없이 여성이라면 겪을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얘기하고 싶어 안달 난 모습과도 같다.
문장과 단어는 다소 첨예하다.
하지만, 선명하고 기운차고 발랄하기도 하다.
여성이 지니고 있는 무수한 이미지를 하나의 책 속에 녹여낸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때론 무겁게, 때론 밝게, 때론 날카롭게, 때론 뜨겁게.
여자들이라는 공감할 수 감성들을 신인작가인 단시엘 W.모니즈가 한 권의 책으로 함축해 놓았으니, 이 사람은 과연 신인작가라 할 수 있겠는가?
문체에서 오는 무거움과 오랜 된 작가만이 표현해 낼 수 있는 농염함까지 담아냈으니 이 사람은 과연 신인작가라고 말 할 수 있겠는가?
가장 인상 깊었던 단편을 꼽아보면,
11편 중 이 소설의 제목으로도 쓰인 <우유, 피, 열>이다.
“옥상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어렸을 때 한 번쯤은 호기심으로 가져보았을 궁금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두 소녀 키라와 에바의 끈끈한 우정 사이에 찾아오는 한 친구의 죽음.
“공기가 거세게 밀려나고, 뼈가 부러지고, 덩어리들이 시뻘겋게 철퍼덕. 끔찍해.
키라에게 이 말을 하려고 몸을 돌리는데 눈앞에는 그 흉측한 건물들 뒤로 파랗게 펼쳐진 하늘뿐이다. 진정한 신의 파랑“
필터 없는 직관적인 단어로 표현되는 문장.
친구를 지키지 못했다는 두려움과 자괴감.
고통은 나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기에, 죽음 너머에 또 다른 삶의 활기도 있듯이 친구는 죽었어도 산 사람은 살기를 바란다고 “생명력”을 불어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