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의 세계 - 사랑한 만큼 상처 주고, 가까운 만큼 원망스러운
김지윤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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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남매의 둘째딸로 태어났는데, 아무래도 샌드위치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먹고 살기 바쁜 부모님 밑에서 이도 저도 아닌 것 같은 느낌으로 자란 것 같아 늘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고 사랑을 받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충분히 사랑해 주셨는데도, 언니한테 치이는 거 같고 동생들한테 치이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우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딸을 낳으면 친구 같은 딸, 친구 같은 엄마이고 싶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친구 같은 딸이란 엄마의 사랑이라는 외피를 입은 채 여성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딸의 감정에 너무 깊이 스며들며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어찌 보면 친구 같은 딸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얼핏 든다.

 

이 책은 애증, 조율, 독립이라는 3개의 챕터로 나누어서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점을 제시해준다. 챕터 글마다 뼈를 때리면서도, 나와 딸의 정서 상태를 진단할 수 있었고,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할 수 있다는 죄의식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다.

 

나는 아침에 내 한 몸 일어나기 바빠 딸들한테 아침밥도 못 주는 엄마(사실 날밤 까면서 책을 안 읽으면 그만인 것을, 그것을 포기 못함), 주말에 일 나가는 엄마, 저녁에는 배달음식으로 한 끼를 대체하는 엄마인 난 항상 좋지 않은 엄마라는 죄책감을 갖고 있다.

일 하는 엄마라서 미안해라는 수식어를 늘 달고 살았던 내게, 모녀의 세계는 당연히 해야 할 노동을 할 뿐이며, 오늘의 모성을 싣고 회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음에 하루를 버티는 힘을 얻게 되었다.

 

K-장녀, 집안의 가정사 모두를 도맡아 하던 시대에 태어난 우리네 엄마들은 딸에서 딸로, 또 딸에서 딸로 엄마의 정서적 보호자 역할을 되물림 받으며 살아왔다. 나도 어렸을 때는 늘 듣던 얘기가 부모님이 없으면 언니가 이 집의 가장이다.’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첫째가 맡았던 책임감이 얼마나 무겁고 고통스러웠을까.

어렸을 땐 독재자로 군림하는 거 같은 언니가 귀찮고 미웠는데, 커서 보니 언니가 장녀로써 부모를 대신하는 무거운 마음이 느껴져 미안해지기도 한다.

 

아들은 남의 딸 남편이면서 딸은 친구 같은 딸이고 싶은 이기적인 엄마들.

딸이 더 만만하니깐, 더 편하니깐 이라는 이유는 이제 그만~ 엄마의 사랑과 헌신에 감사한 마음과 별개로 각자의 한 발 치 멀리 바라봐 주는 것이 건강한 관계에 중요한 포인트일 듯.

 

아이들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어떤 모습으로 우리 곁에 존재하고 안기든지 간에 이들을 독촉하고 가르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은 그저 안아주고 담아주는 엄마가 수용체로서의 역할을 해내는 훌륭한 엄마다. ‘눈 맞춤과 담아주기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19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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