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 최후의 19일 1
김탁환 지음 / 푸른숲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내게 특별한 수확이 된 작품이다. 먼저 허균과 광해군을 알게 해주고 임진왜란 이후의 격동기를 알게 해주고 허균과 함께 혁명을 꿈꾸었던 인물들의 군상에서 여러 가지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물론 주인공이 가졌던 구체적 생각들은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것이겠지만 시에 대한 허균의 생각들은 시를 쓰겠다는 내게 스승의 가르침처럼 다가왔다. 열심히 시를 쓰되 시보다 더 중요한 일이 생기면 주저하지 말고 그 일에 뛰어들라는 허균의 말은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시보다 삶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허균의 거사는 실패했다. 적서차별을 없애고 외척을 몰아내어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려는 그의 이상은 실패로써 반역과 쿠데타라는 죄가 되었고 결국 그는 죽임을 당하였다. 왕이 없는 나라를 생각할 정도로 의식이 앞섰던 그가 동료들을 제치고 너무 달렸던 것일까. 만약 허균의 계획이 성공하여 쿠데타가 아닌 혁명으로 기록되었다고 해도 인조반정 이후의 역사가 증명해 주듯 그 시대는 정녕 태평성대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누가 미래를 알겠는가. 목숨을 바쳐 새 세상을 창조하려는 그의 의지와 욕심은 순수했을 따름에 죽을 때까지 그가 가졌던 고뇌와 열정은 오히려 현대를 사는 우리가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같지 않다. 작가도 말했듯이 지식인이란 무엇인가가 이 소설의 화두이며 개인적 결함이나 인간성, 개성이나 논리에서 답을 찾지는 말아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러지 못하는 나는 한계가 많은 인간인가 보다. 자신의 시를 지키기 위해 감옥에 간 친구를 배신한 이재영이나 교묘한 말로 상대방의 헛점을 노리는 보수파 이이첨 등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악역의 인물들로 보인다. 그래서 허균의 강경한 혁명 동지였던 박치의라는 인물을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인물로 쉽게 꼽을 수도 있겠다. 내 자신을 돌아본다. 혁명의 근처도 어슬렁거리지 못한 내 자신의 인생이 보잘것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소설 속 인물들의 열정과 고민의 태도는 배워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이 자극 투성이다.

 

홍길동전이 그랬듯 이 소설의 의의도 크다고 여긴다. 철저한 자료 조사에 근거한 작가정신 덕분에 허균이라는 인물을 통해 지식인에 대한 화두를 던져 과거와 현재를 잇는 고민과 통찰력에 내 나름대로 굉장한 점수를 주고 싶다. 더 열심히 역사 공부를 해야 한다는 내 스스로의 자책 또한 가슴 아프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학교 다닐 때 뭘 배우고 공부했는지 모르겠다.

 

<허균, 최후의 19일>은 출간된 지 10년도 채 안 되었는데 벌써 품절인지 절판인지 되어 버려 구하기가 어려웠다(물론 10년은 책 하나 묻히기에 충분한 시간이긴 하다). 그래서 온라인 헌책방에서 정말 우연하게도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이 책은 <방각본 살인사건>과 <열녀문의 비밀>에 이어 세 번째로 읽은 김탁환의 소설이지만 시대를 바라보는 작가의 진지한 시선과 절제된 허구성 덕분에 가장 의미 있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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