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히지 않는 나비 시작시인선 26
김상미 지음 / 천년의시작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김상미는 최근 내가 이해할 수 있고, 또 긴장하고 공감할 수 있는 시를 쓰는 몇 사람 안 되는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의 시는 허황된 포즈를 취하지도 않고, 경박한 재치에 빠지지도 않고, 자기만 아는 소리를 지껄이지도 않는다. - 문학평론가, 이남호

 

맞는 말이다.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세계사), 고 <검은 소나기떼>(세계사)를 몰고 왔던 완숙한 한 여인의 세 번째 시집을 내가 은연중에 기다리고 있던 이유를 저렇게 명쾌한 문장으로 풀어내다니. 과연 평론가는 대단하다. 1997년 봄에 그녀의 두 번째 시집이 나왔으니 김상미 시인은 6년 만에 얼굴을 내민 셈이다. 아무리 시집 한 권을 추려내기에 몇 년씩 걸린다고 하지만 그로선 6년은 좀 긴 듯하다.

 

공백 기간 동안 시인은 사랑을 한 것일까. <잡히지 않는 나비>의 테마는 온통 사랑이었다. 그래서 읽으면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사랑이란 주제는 시나 소설에서 흔할 뿐더러 해피앤딩이 아니면 비극의 양상으로 귀결지어지는 상투성이 염려되는 소재이므로. 그래서 사랑 때문에 詩作에서 경계해야 할 ‘감정의 범람’을 혹시나 시인이 저지르고 있지는 않을까 하고 말이다.

확실히 내 생각은 기우였다. 숱하게 떠도는 사랑 얘기와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 건 사랑과 그 실패 속에서 발버둥치는 시적화자의 모습이었다. 이것은 훌륭한 시의 조건이라고 내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는 작가의 성숙한 문제의식과 그 문제에 대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작가 스스로 단련한 내공이 시집의 바탕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인이 자신의 모든 갈등과 슬픔 혹은 분노를 수십 편의 시들로 승화시켰다는 것에 나는 기쁘고 안도한다. 사랑의 실패, 즉 실연은 인간에 대한 배신감이므로 우리의 의지와는 달리 자칫 자기비하나 냉소, 타인에 대한 비난 등 미성숙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는데 비록 나비가 잡히지 않더라도 그것에 절망하는 시적자아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내 몸에 흐르는 깊은 물줄기.

이름 서로 다른 대양들이 만나 아름다운 해협을 만들고 있다.

계속해서 너는 흰 조약돌을 내게 던져라.

이는 모두 백년 후의 일.

눈뜨고 눈감고 다시 눈뜨는

나는 네가 더 아프다!

-나는 네가 더 아프다! 중에서

 

성숙한 자아와 그렇지 못한 자아 사이에서 우리가 늘 우왕좌왕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어쩔 수 없는, 사람의 모양새다. 그러나 화자는 오히려 내면의 물줄기로 “아름다운 해협”을 만들어 조약돌을 던지라고 한다.

다양한 소재에 대해 명랑하고 거침이 없었던, 앞선 그녀의 시집들에 비해 <잡히지 않는 나비>는 다소 예민함과 날카로움이 사라진 듯하나, 여운은 길다. 또 하나의 성숙한 결과물에 나의 한쪽 가슴이 세게 저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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