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집은 이제 그만. 소속감 강조하며 자기들 배만 채우는 회사도 이제 그만. 이 나이에 공부해 어디 지원하는 것도 무리. 혹여라도 남자 덕 보고 살아갈 생각도 금물. 그렇다면 내게 남은 것은 그나마 방송 프로듀서 경력과 경험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오래 할 수 있고, 오래 해야 숙달되어 잘할 수 있다던 말이 떠올랐다. 그 오지 섬들과 중구난방 축제를 돌아다니면서도 흥미를 잃지 않았던 것, 나만의 기획으로 업계에 한 획을 그은 프로그램을 만들던 때의 설렘도 기억났다. 그렇다면 나는 결국 방송 일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혼자. - P20

노래는 타임머신처럼 이곳을 그 시절 비디오 가게로 돌려놓고있었다. 아저씨가 즐겨 듣던 이 노래를 따라 부르던 그때처럼, 어느새 나는 가사를 음미하고 있었다.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불렀던 노래의 가사가 이렇게 곱씹을만큼 아름다운지 이제야 깨달았다. 후렴부의 경쾌한 선율과 힘찬클라이맥스가 이어지자 내 심장도 뜨겁게 뛰는 게 느껴졌다.
어쩌면 아저씨가 되고 싶었던 건 방랑자가 아니었을까? 돈키호테처럼 ‘상념의 방랑자가 되어 세상의 정의를 목청껏 노래하고싶었던 게 아닐까? 하지만 우리 곁에서 사라진 ‘말 없는 방랑자‘
가 되어 어딘가에서 돌처럼 굳어버린 건 아닐까?
노래가 끝났다. 돈 아저씨가 몹시 보고 싶어졌다. - P39

민주영 피디를 보낸 뒤 한동안 소파에 몸을 묻은 채 꼼짝할 수없었다. 목표가 사라진 기분이었다. 변한 돈 아저씨의 모습과 그에 못지않은 충격적인 고백은 그동안 내가 그려왔던, 찾고자 했던돈키호테 장영수와는 달라도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아저씨는 변했다.
스스로를 산초라고 하며 돈키호테를 부정했다는 것이야말로그가 변했다는 사실을 대변했다. 짧지 않은 서른 살 인생을 통해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내게 아저씨의 변신 아닌 변신은 뭐랄까, 묘한 배신감을 느끼게 했다. 돈키호테를 찾아 나섰는데...... 산초라니, 스스로를 돈키호테로 착각했던 산초라니, 도무지 이 상황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P250

"엄마 말이 맞아. 돈 번다고 일이 아니잖아. 보람도 있고 가치도있어야지. 맞아. 내 인생에 그 아저씨 찾는 게 보람이고 가치야. 엄마가 이해 못할 수도 있지만 나 중학교 시절 외로울 때 그 아저씨가 보여준 영화며 같이 감상 나눈 책이며 그런 게 날 견디게 해줬어. 서울 가서도 그런 취미로 살았고 결국 직장도 그쪽으로 잡게됐잖아. 엄마도 내가 방송 피디 된 거 좋아했잖아." - P253

"솔아. 사람은 평생 자기를 알기 위해 애써야 해. 그래. 나는 스스로를 돈키호테라 이름 짓고 살아왔지. 하지만 『돈키호테』를 받아쓰면 받아쓸수록, 세상에 맞설 내 이야기를 쓰면 쓸수록, 나는돈키호테가 아니란 걸 깨닫게 되었어. 돈키호테라면 벌써 그 모든 불의와 부패를 향해 몸을 던지지 않았겠니? 그런데 나는 한순간도 온전히 몸을 던지지 못했어. 그저 시늉만 한 거야. 나는 범접할 수 없는 돈키호테를 따라다니며 그를 흉내 낸 산초일 뿐이더라고."
"그럼 산초였던 나는, 나는 어떡하란 말이에요?"
"내 생각엔, 솔이 네가 돈키호테다. 나는 네가 비디오 가게에서늘 TV 프로그램 보며 깔깔 웃던 게 기억이 나거든. 마치 브라운관으로 들어갈 것처럼 몰두했지. 그런데 나중에 네가 그런 TV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 됐다는 얘길 듣고 정말 깜짝 놀랐어. 저렇게 솔이는 자기 꿈을 이루며 사는구나. 그때 나는 이미 널 돈키호테라고 생각했단다." -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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