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내 목에는 17년째 가시가 걸려 있다. 모두가 그럴리 없다 하지만 나에게는 느껴진다. 하얗고 긴 가시. 그것은 기도로 넘어가기 직전의 통로에 단단히박혀 있다. - P7

그때의 나는 늘 목의 이물감에 시달렸다. 크게 거슬리는 정도는 아니었고, 잊고 있다가 침을 삼킬 때면 한두 번씩 따끔 하는 정도였다. 너무 사소해서 남에게 말하기조차 민망하지만 확실히 나의 신경을자극하는 것. 존재하지 않지만 나에겐 느껴지는 것.
그런 걸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 P17

심장이 빠르게 요동쳤다. 전단지가 꼭 초대장처럼 느껴졌다. 혹시는 확신으로 크기를 키웠다. 그여자가 나를 부르는 게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주위를 맴돌며 내 신경을 바싹바싹 갉아 댈 이유가 없다. 얼굴 없는 여자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리버뷰 리조트로.

...(중략)...

리조트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그래서 유일하게불이 켜진 4층 객실이 더욱 눈에 띄었다. 나는 은은하게 빛나는 노란 불빛을 바라보았다. 발코니 문이열리고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걸어 나왔다.
여자는 난간에 양팔을 기대고 서서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빼다 박은 것처럼 사진과 똑같은 자세였다. 순간, 내가 저화질의 세상으로 들어온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일었다. 나는여자의얼굴을보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했다. 주변이 어두워 얼굴은보일 듯 보이지 않았다. 목구멍이 간질거려서, 꼭기침이 나올 것 같아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여자가 그사이에 발코니에서 몸을 떼고 곧게 섰다.
여자의 얼굴은 또다시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객실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에 여자의 얼굴 위로 짙은 그림자가 졌다. 허나 나를 향한 시선만은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 여자는 마치 이리로 오라는듯이, 천천히 뒷걸음질 치더니 방 안으로 사라졌다.
나는 확신했다. 이건 초대였다. 이 방문은 허락받은 것이다. 나는 큰 보폭으로 리조트를 향해 뛰었다. 로비는 어두웠고, 엘리베이터는 작동하지 않았다. 나는 계단을 달렸다. - P31

[습지의 사랑]

"여울."
이영의 목소리.
"널 만나러 왔어."
이영이 손을 뻗어 왔다. 물은 이영의 손을 붙잡았다. 앙상하고 앙상한 것들이 엉키니 그 연결은 꼭작은 나무의 뿌리처럼 보였다. 흙에 반쯤 파묻혔던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물은 이영의 가슴팍에 박힌낯선 것을 바라봤다. 명찰이었다. 노란색 플라스틱에 이영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영은 그것을 빼내서 물에게로 내밀었다.
"네 거야."
물은 이영의 눈을 바라봤다. 그리고 이영이 건넨이름을 받아 들었다. 이영도 물의 눈을 바라봤다.
흙과 비는 끝없이 쏟아졌다. 그것은 마을을, 하천을, 소나무 숲을, 물과 숲의 세상을, 물과 숲의 울타리를 모조리 뒤덮었다. 나무는 하천으로 구르고 하천은 마을을 침범했다. 지붕이 가라앉고 벽과 바닥에 붙어 있던 집기들이 물 위로 떠올랐다. 물은 세상이 뒤집히는 걸 보았다. 그리고 또다시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이영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물은 있는 힘껏, 이영을 껴안았다. 이영도 여울을껴안았다.
"보고 싶었어, 이영."
서로의 이름을 부르자 세상이 암전되는 듯했다.
소음이 가시고 평온한 침묵이 찾아왔다. 이제 하천도 없고, 숲도 없고, 마을도 없었다. 뒤집히고 뒤섞인 세상에서 여울과 이영은 서로밖에 남지 않았다는 듯이 몸을 붙였다. 세상이 어떻게 되든 말든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들은 젖은 흙냄새에 파묻힌 채로 눈을 감았다. - P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