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은 책상이다
페터 빅셀 지음, 이용숙 옮김 / 예담 / 200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페터 빅셀의 '책상은 책상이다'는 흔히 '아웃사이더'의 이야기로 해석이 된다. 하지만, 난 이 소설을 가지고 소쉬르의 '일반 언어학 강의'의 일부분을 설명해 보고자 한다. 이 소설에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작중화자의 말대로 그를 묘사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그는 단지 '너무나 평범해 자기 자신조차도 그런 자신이 지겨워지는 그런 남자'이다. 어느 날 그는 소쉬르가 말한 '기표(시니피앙)'와 '기의(시니피에)'간의 恣意的(arbitrary)인 결합에 대해서 깨닫는다.

'나는 책상을 책상이라고 부르고 사진을 사진이라고 하고, 침대를 침대라고 부르지. 또 의자는 의자라고 한단 말이야. 도대체 왜 그렇게 불러야 하는 거지?' 프랑스 사람들은 침대를 '리'라고 하고 책상을 '타블', 그림을 '타블로' 그리고 의자는 '쉐즈'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서로 다 알아듣는다.

그래서 이 남자는 '시니피앙'과 '시니피에'가 '필연적'으로 결합된 것이 아니라 '자의적'으로 결합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해보기 위해서 '침대'를 '사진'이라고 부르고 '책상'을 양탄자라고 부르고 '의자'를 '시간'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그런 식으로 모든 사물의 이름을 자신의 마음대로 바꾸고 나서 그 남자는 만족스럽게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어찌 보면 매우 어처구니없는 이 일은 우스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작중화자의 말대로 이건 전혀 우스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 이야기는 슬프게 시작되었고 슬프게 끝이 난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그 남자의 말대로, 그리고 소쉬르의 말대로 '기표'와 '기의'는 자의적으로 결합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말이다. 예를 들어서 'horse'가 굳이 말을 가리키는 말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것에 대한 증명으로 프랑스에서는 그것을 'cheval'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한 언어 내에서도 여러 가지 사투리를 통해 다른 이름으로 불릴 수가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그것은 이 남자가 '시니피에'와 '시니피앙' 간의 관계가 자의적이라는 말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 말뜻은 그 두 가지의 결합이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지 그 남자가 마음대로 그 언어 기호를 마음대로 붙여도 된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시니피에'와 '시니피앙'간의 관계는 자의적이지만, 그 것을 연결시키는 것은 언중(言衆)들 간에 협약이 필요하다. 결국 '언어는 협약이며, 합의된 협약은 기호의 성격과는 무관하다.'는 말이다. 이 남자는 그러한 개념에까지 이르지 못하였고, 결국 아무하고도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그런 불행한 사람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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