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한 연구 - 상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1
박상륭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박상륭 선생님의 글을 접했던 때가 20살의 무더운 여름.하루에 한페이지도 넘기기 어렵던 그의 낯설은 언어들. 한참동안을 심한 언어적 열패감에 시달려가며, 인내의 극을
향해 달려가던 나의 20살 시절의 무더운 여름날. 아~ 지금도 생각난다.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들고야 마는. 깊은 수렁속에서 빠져나오려 거칠은 몸부림을 쳐대었던 자신이.

죽음의 한 연구는 예수형의 인물인 육조 혜능의 구도적 해탈에 관한 이야기이다. 예수의 40일간의 수행과 혜능의 40일간의 유리 체험. 그리고 그 속에서 40일간의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죽여가는 혜능의 모습에서 장엄한 한편의 대서사시를 보는것만 같았다. 5번을 반복하여서 읽었다.읽으면 읽을수록, 박상륭을 알면 알수록 말할수 없다는 것에 내 자신에게 심한 분노를 느꼈다.그의 글을 읽으면서 내 자신에게 일어나는 '폭발적 갈등'과 끝없이 분열 되어버리는 나의 나약한 정신.

수도부의 '임자 오씨요, 임자 오씨요' 하는 글을 읽을때 나도 모르게 눈물방울들이, 마치 구름이 뭉글뭉글 피어오르듯이 솟아나왔다. 가슴 저린 수도부의 이야기들. 그리고 혜능의 어머니에 관한 기억들과 어린시절의 기억들을 보면서 수없는 가슴저림을 맛보았다. 내 감히 이런 글 같지도 않는 글을 씀으로서 박상륭 선생께 누를 끼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차가운 달빛에, 껄끄러운 바람에 전신이 찢겨지는 듯한 아픔을 느낀다. 감히 내가 박상륭 선생님을 이야기 한다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운 일일지나, 그 수치스러움을 무릎쓰고서라도 꼭 한번은 죽음의 한 연구에 관한 글을 쓰고 싶었다.

죽음의 한연구는 반전이 뛰어난 소설이다. 육조가 칠조가 되는 혜능에게 침과 해골을 전수해줌으로써 의발전수를 하지 않았던들 이 소설이 주는 깊이는 덜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육조에게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그의 침과 해골을 받음으로써 유리의 칠조가 되는 촛불승의 아름다움과 혜능의 깨달음. 자기 자신을 죽임으로써 우주와 하나가 되는 혜능의 깨달음.

이 소설에서는 무수한 관념들의 대립이 엿보인다. 바다와 늪. 즉 바다는 생명을 잉태하는 장소로서 존재하고 늪은 생명이 없는 모든것이 사멸한 장소라는 인식이 내게 전하져 왔다. 마른늪에서의 낚시라함은 死에서 生을 창조하려는 그의 의지가 엿보인다. 죽음속에서의 생의 창조. 아~~~ 죽음이 생과 다르지 않고 생이 죽음과 다르지 않다하다니...죽음속에 생이 있고 생속에 죽음이 있다하다니....

죽음의 한 연구 속에는 박상륭 선생님의 모든 사상이 담겨있다. 주역과 불교와 기독교...등등..모든 그의 사상의 집대성을 담아놓은 것이 이 책이요. 이 담아놓은 것을 풀어놓은것이 칠조어론이라는 책이다. 겉으로는 불교적 관념의 종교적 형태의 구도행각을 제시하는듯 하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혜능의 구도행각은 예수의 구도행각과 엇비슷함을 느낄수 있다. 예수 또한 40일간의 명상을 하고 세상으로 나간반면, 혜능또한 40일의 기한으로 유리를 찾아오는 것이 이를 대변해준다.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은가? 생에 더이상 집착하고 싶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는 감히 일독권장을 한다. 죽음의 한연구처럼 우리 문학사에 뛰어난 소설은 존재치 않을 것이라는것을 말이다. 장편의 글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흐트러지지 않는 그의 문체의 아름다움...지금도 가슴이 울렁거린다. 아~~박상륭이여!!!죽음의 한연구여!!! 죽음의 한연구를 연구하는 연구....박상륭 선생님과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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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브리티 2004-11-11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 주인공은 혜능이 아니라 "유리"라고 통칭됩니다. 중국 선조의 6대조사인 혜능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지 주인공이 혜능은 아니거든요. 아마..사막에서 촛불중이 주인공의 눈을 멀게하는 장면쯤에서 장부(?)에 이름을 적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에 "유리"라고 적거든요...(음..기억이 가물가물...-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