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있었던 곳
정찬 지음 / 말하는나무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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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ane『그들이 있었던 곳』
정찬
말하는 나무

『그들이 있었던 곳』을 “인간이 짐승이 되지 않기 위해 무엇을 선책하야 하는가”란 근원적 물음에 대한 응답이라고 말한 철학자 박구용교수의 추천자가 첫 문단을 채운다.
인간과 짐승의 가름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살기를 선택하는 짐승은 있으나 죽기를 선택하는 짐승은 없듯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있음이 인간과 짐승의 또 다른 점이 아닐까.
‘저항함으로서 실존적 자유를 느낀 노동자 김선욱’을 보며 저항할 수 있는 사유가 있는 자,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선택 할 수 있는 자,
소리를 들었던 자와 귀를 막았던 자,
외치는 자와 숨죽인 자,
목도한 자와 눈감은 자.
2024년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시적인 문체로 엮어주신 데에 깊이 감사했다. 그 소설에는 슬픔은 있었으나 피비린내는 없었으므로. 피로 기록될 수밖에 없는 폭력을 다시 읽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으므로.
『그들이 있었던 곳』 은 1980년 5월 광주에 ‘산 자’로 있었던 자들의 죽기를 선택한 저항의 기록이다. 그 자리에서 ‘인간’으로서 살기로 선택한 삶의 기록이다.
배제고야구부의 사과방문이 광주일고와 5.18기념묘역에서 이어질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고 『그들이 있었던 곳』을 읽으니 더더욱 우리는 너무 5.18을 광주 안에 가두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 안에 머물게만 둔 게 아닌가. 그로 인한 현재를 누리를 대한민국의 모두가 함께 ‘내 것-내 자유’로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물음이 올랐다. 그랬다면 지역혐오가 아닌 나자신을 혐오하는 것이란 걸 느끼지 않았을까.
『그들이 있었던 곳』은 5.18의 시작부터 간명하게 이야기한다. 그것은 광주만의 일이 아니었고 모두의 일이었지만 광주는 그만두기를 선택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 책은 그들의 선택의 기록이다.
1980년 5월의 봄은 따뜻했으나 엄혹했고 죽은 자들이 산자를 살렸던 지난 2024년 12월은 추웠으나 꽃이 피었다.
‘5.18? 난 아는 게 별로 없어.’란 생각이 든다면 이 책을 읽으시라. 그들의 선택 앞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지, 같이 생각할 수 있었으면 한다.

P198. “이 죽음들이 무슨 뜻인지 저에게 가르쳐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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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팅 - 유령화 시대의 사랑
도미닉 페트먼 지음, 최리외 옮김 / 동녘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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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고스팅한 삼촌 가브리엘에 대한 기억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다양한 형태의 고스팅에 대해 이야기한다. 흥미로운 주제였다. 우린 이런 행위에 대해 흔히 용기없는 사람들이 택하는 회피형 선택이라고 말한곤 한다.
고스팅한 인간이 남긴 자리를 ‘부재하는 검은 양’이라 표현한 것에 웃음이 났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겪는 사회활동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연인, 가족, 우정, 자기자신에 이르기 포괄적으로 나타나는 고스팅에 대해 다루고 있다.
마음가는대로 새로운 길을 나아가고 싶다는 욕망을 실현하고 누군가에 유령으로 남는, 효용이 다한 사회적 관계가 그러하고 접점이 닿지 않아 소원해진 친구가 그러하다. ‘자기돌봄’보다 외부에 눈을 돌리는 사람도 자기자신을 유령화하는게 아닐까.
작가는 sns문화에 대해서도 꼬집는다. “친구가 되는 의무는 생략하고 친구갖지만을 바라는 사람”되어 있지는 않는지, 내 일상에서 유령화된 누군가를 떠올리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가 유령화되었는지 혹은 내가 유령화되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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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열두 가지 얼굴 - 당신의 행복을 위한 돈의 인문학
류상철 외 지음 / 한길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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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열두가지 얼굴 – 당신의 행복을 위한 돈의 인문학
류상철, 박종호, 정태관
한길사

표지와 제목을 봤을 때 당신의 첫 느낌은 어땠을까? 직관적이지만 매력적이지는 않은 제목. 땡기지 않는 제목이란 생각을 난 했다. 내가 이런 말을 먼저하고마는 이유는 페이지를 열자마다 반전 매력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장 아쉬운 부분역시 제목이었다. “호모머니페이스”나 “호모머니데우스”는 안되나, 이 책은 국내에만 머물기엔 좀 아깝다. 이런 욕심 '하인'마인든가 싶지만 이 책을 읽고 생긴 애정이라고 정리해 본다.
서평을 쓰다보면 이런게 재미있다. 아는 거라곤 출판사정도가 익숙해서랄까. 경제학관련 학자의 책인가 큰 기대없이 열었다. 정말 경제에 무지한 나는 큰 기대가 없었다. 그런데 프롤로그에서 이 책을 쓰기 시작한 배경, 저자의 위치가 호기심을 키워나갔다.
돈이라면 눈이 짓무르도록 봐왔을 은행근무 36년의 경력자인 저자가 정년퇴직을 하면서 남긴 질문이 “그래서, 돈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 자신에게 던진 이 물음이 어디로 향할지 더 궁금해지는 것이다.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36년이 지나고서도 남는 혹은 그제야 남은 이 질문을 이 정년의 저자는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말이다. 거기에 더 흥미로운 것은 그와 함께 독서모임 트레비스의 회원들이 동참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조합이 주는 흥미로움은 이 책 전반에 거쳐 녹아들어 있다. 돈의 또 다른 고찰과 예시에 대해 저자가 풀어내는 이야기를 하나씩 주워가자면 『헨델과 그레텔』의 조약돌을 줍는 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역사, 영화, 고전 등에 이르기까지 독서의 다층적 눈높이를 다시한번 실감하기도 했다. 그는 뻐기지 않고 꾸며대지 않으며 천천히 말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이렇게 적절할까. 내 눈높이 ‘끌어올려~~~’ 저자가 열어놓은 창을 보여준다. 이 책은 이런 점에서도 정말 아이들에게도 추천할만한 책이다. 저자의 어깨에 무등을 타고 보는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다. 어려운 경제서적보다 먼저 읽었으면 좋겠다. 나의 청소년기 아이들에게도 이 이야기를 해주었고 기말고사가 끝나면 읽어보라 권했다. 또다른 세상을 열어 보여준 저자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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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하여 ㅣ 불멸의 연애 6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이상원 옮김 / 니케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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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흰 바탕에 초록의 반짝임이 더해진 귀엽고 작은 책이다. 설렘을 표현한다면 이런 분위기일까. 뒷표지의 초록색 부채 역시 체호프 시대의 사랑을 담아낸 듯하다. 체호프의 단편 네 편이 묶인 이 책은 읽는 내내 내게 조용한 질문을 던졌다.
​처음 읽을 때는 그 질문이 뭔지 몰랐다. 그저 나와는 먼 그들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네 편의 사랑 이야기를 다 읽었을 때도, 난 그들 곁에 온전히 서 있었던 것 같지 않다. 그저 시대 배경이 달라서 생긴 거리감일까 싶었는데, 책장을 덮으며 비로소 알았다. 아, 우리 시대와는 전혀 다른 사랑의 유형이라서 그랬구나, 하고.
​직설적이고 즉각적인 사랑이 익숙한 지금의 시선에서 보면 체호프의 사랑은 답답하고 막막하다. 체호프 시대의 사랑이 '부채'라면, 지금 우리의 사랑은 '에어컨'이고 '서큘레이터'이지 않나. 사람들은 가끔 얇고 작은 책들을 우스워하기도 한다. '벽돌책 읽기'처럼 두껍고 무거운 책을 읽는 것만이 지성의 무게인 양 생각하기도 하지만, 내게는 오히려 이 얇고 작은 책이 더 무겁게 느껴진다. 인공적인 바람에 익숙해져 자연 바람을 잊고 살던 내게, 이 작은 책은 묵직한 질문 하나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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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조지 오웰 지음, 이기한 옮김, 벤 핌롯 해설 / 펭귄클래식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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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를 다시 읽었다. 블랙으로 블러처리된 “1984”는 빛에 따라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다. 세 번째 독서를 또다른 출판사로 접할수 있다는건 다른 결의 설레임을 준다. 이미 좋은 걸 아는 책의 경우 더 그렇다. 고전을 다시 출판하는데 있어서의 편집자의 고뇌를 내가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소풍날의 ‘보물찾기’ 같은 기대랄까.
내가 읽었던 다른 출판사의 버전들도 나름의 매력이 있었는데 펭귄의 귤색 1984는 술술 읽히는 편안함이 있었다. 내용을 알고 있음과는 다른 것이었다. 1984를 처음 읽는 누군가라면 펭귄출판사로 시작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몇 년 전 읽었을 때도 충분히 느꼈다고 생각했는데 재독의 즐거움을 느낀 기회였다. AI와 AGI의 발전이 상업화되면서 조지오웰이 고발하던 사회상은 변이를 거듭하며 개인을 가두고 있는게 아닐까. 빅브라더, 골드스타인, 오브라이언의 변형을 뛰어넘는 다른 색과 질감의 빅브라더를 생각게 했다. 윈스턴의 눈물의 의미, 각자의 101호 읽을 때마다 다가오는 속도도 머무는 시간의 무게도 달랐다. 밖에서 안으로, 세계에서 개인으로 수렴되는 책읽기의 향유는 읽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읽지 않은 이들에게 1984의 줄거리나 주제의식은 툭하고 나올만큼 익숙할 수 있다. 그 주제의식이 냉전시대에 머물기만 했던 카테고리에서 이 시간과 미래로 가져와도 좋을 것 같다. AI발전과 윤리적 딜레마에서 고민하며 읽는 비문학과도 함께 읽을 만한 병행도서로도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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