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시공간을 사이에 둔 두 여성작가를 이어 놓은 책. 작가정신의 [잇다]를 두번째 만났다. 시대적 아픔에 가려진 여성문학과 시각을 만나는 것은 100년 후의 독자에겐 새로운 지평을 여는 선물이 될 것이다. 100년 전 여성작가들이 부여잡고 써내려간 현실을 다른 얼굴의 미래로 써내려가는 흐름을 읽자면 '소설'의 본질이 쓰는 자에게 읽는 자에게 무엇인지 질문을 남긴다. 지금의 소설이 100년 후 독자에게 읽혀진다면 무엇을 남길까. 이번 소설집을 읽으며 동시대 일본의 여성작가들은 누가 있었을까 궁금해졌다. 일본도 한국도 주로 남성 작가들의 작품이 꼽히는걸 별다른게 생각해오지 않았는데 이번 작품집을 읽으면서 이데올로기와 전쟁이 가해자와 피해자를 떠나 여성작가들의 글에 어떻게 담겼을지 알고 싶어졌다.흔히 읽었다고 생각하는 근대소설에 대한 선입견?을 현대의 독자들이 환기해야함을.작가정신의 [잇다]가 여러방면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버지니아 울프의 대표작은 지금까지 단연 <자기만의 방>이라고 굳건히 믿어왔다. 하지만 이제 그 자리를 <올랜도>로 바꾸려 한다.<올랜도>는 무려 30년 전에 영화로 처음 접했다. 그때의 나에게 올랜도는 그저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과 다를 바 없는 판타지 영화 중 하나였고, 그렇게 기억 속에서 잊혀 갔다. 얼마 전 찾아보니 영화 <올랜도>가 재개봉을 하기도 했던데, 사실 영화보다는 책을 먼저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올랜도가 거쳐온 사회적 양식의 변화와 그에 발맞춰 변모하는 삶의 태도, 그리고 성별의 전환까지. 이 끝없는 확장성과 자유로움이 주는 인지적 해방감은, 그동안 내가 얼마나 갇힌 틀 속에서 책을 읽어왔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버지니아 울프'라는 하나의 틀에 다 담아내기에는 그녀의 영혼이 얼마나 다채롭고 자유로운가.책을 읽는 내내 '우리는 왜 단 하나의 성으로만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다. 작품 안에 올랜도의 변화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진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변화하는 육체적 성별 속에서도 '올랜도'라는 단 하나의 자아, 변하지 않는 내면의 본질을 정교하게 다듬어가는 그의 삶을 보며 깨닫는다. 우리가 지켜내야 할 본질적인 정체성은 젠더가 아니라 오롯이 '자아' 그 자체라는 것을.어떠한 변화 속에서도 해체되거나 변형되지 않는 '자아'를 위해,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누구라도 책을 통해 올랜도를 만나기를.
어릴때의 나에게 그리스로마신화 속들은 지금의 피카츄와 하츄핑이 아니었던가. 수많은 신들과 요정 영웅 미녀들이 엮어낸 이야기들과 확실한 캐릭터 폭발. 그때의 나란 아이는 몇 되지 않은 출판사들이 내놓은 그리스로마신화의 차이를 비교하는 재미에 빠져있었다. 몇 안되는 도서관에서 이미 케케한 책들을 빼 읽곤 했고 꽤 크고나서도 소소한 즐길거리였다. 어릴때 오디세우스가 돌아오지 못한 20년의 시간적 개념이 어느정도였는지는 남아있지 않다. 이제보니 그 시간을 기다린 페넬로페가 눈에 들어온것은 그 시간의 깊이를 알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번책을 읽으면서는 글쓴이의 의도와 상관없이 오디세우스보다 페넬로페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했다. 그녀가 풀어내린 실들이 굽이쳤다. 파랑새 출판사의 오디세우스는 그리스로마신화로 입장하기 딱 좋은 개방성이 있다. 가로세로앞뒤 만듦새가 미려하다. 삽화 또한 잘 어울린다. 가독성 또한 명쾌하다. 오디세우스가 이렇게 명쾌한 흐름으로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면 20년까지는 걸리지 않았을텐데.
'내 보물을 찾아가는 빛나는 시간' 나의 돌을 찾아가는 시간이 돌고 돌아 이 책을 통해 내게 왔다. 머무름보다 떠도는 삶을 선택한 산티아고.p39. '꿈이 실현될 거라고 믿으면 인생이 살맛 나는 법이지'이 희망의 시기는 누구에게나 있었다는 것을 먼 발치에 선 지금은 알 수 있다. 분명 나에게도 말을 거는 바람이 있었을 것이다. 여러 표지들이 다른 모양으로 나를 스쳐갔을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연금술사는 희망을 주는 책이었던 것 같다. 그때 이 책의 화력은 읽지 않았으나 각인될만큼 강력했다. '자아의 신화', 쓰임을 다한 납이 금으로 태어날 수 있는 연금술. 바닥에 내리꽂힌 대한민국에서 개인이 일어날 수 있는 의지를 이 책은 주었을 것 같다. 유명짜하게 들어왔던 제목이라서 쉽게 생각했다가 큰코 다쳤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어린 양치기 하나 따라가는데 무슨 힘이 들겠는가 싶었다. 양치기가 정련되어 과정에서 만나는 누군가에 나를 투영해보며 읽었다. 나는 어느 정도의 정련을 거치고 있는가. 양에게서 배우고 크리스탈에게서 배우고 사막에서도 배울수 있을거라고 말하는 산티아고의 자세에서 나의 용해도는 어느정도일까 생각해본다. 배움이란 나를 녹여내는 것이 아닐까. 펼쳐진 모든것을 기의로서 수렴해내는 힘에 복잡한 여정에서 무화과나무아래 결국 세움으로서 관통의 시원함을 준다. 마지막까지도 읽는 이를 가만히 두지 않는 책이다. 이렇게 읽게 되어 기쁘다.
SF장편소설로 유명한 허버트 조지 웰스의 세편의 단편이 묶인 책이다. SF와 환상이 곁들여진 이 작품집은 현실을 초월한 소재의 작품들이 어느쪽으로 가야하는가를 내게 가르쳐 주었다. 네비게이션을 통해 길을 찾을 때에도 적어도 3개의 예시를 제시하듯 가장 추천할만한 경로를 제시받은 느낌이 들었다. SF나 환상문학은 뭔가 막연한 기분을 주었다. 대중적 요소 정도로 느껴질때가 대다수였다면 백여년의 시간을 둔 이 단편들은 지극히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란 답을 준다. 작가의 세계관 앞에서 독자가 발붙인 현실을 느끼면서도 특히 매력적인것은 증오가 없다는 것이다. 미움과 오해, 증오의 대상이 없으면서도 '문'을 발견하기도 하고 '눈이 멀기도'하며 '거대한 충돌'을 목도하며 나와 주위를 환기한다. 짧지만 강렬한 감각을 주는 작품집이었다. 세편의 작품들이 서로 다른 격통을 남겼다.